업황 부진에 신성장사업 투자 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 새판 짜기 돌입

[비즈니스 포커스]
LG화학 여수 석유화학 공장 용성단지. 사진=LG화학 제공
LG화학 여수 석유화학 공장 용성단지. 사진=LG화학 제공
한국의 올해 1분기 석유화학 빅4(LG화학·한화솔루션·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 가운데 태양광 사업 호조로 나 홀로 실적을 개선한 한화솔루션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극심한 불황을 겪는 석유화학업계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계가 보이는 공장을 정리하고 신성장 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2022년 4분기 166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508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영업 손실 262억원을 기록하며 4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총차입금도 지난 3월 말 기준 8조원을 넘어섰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 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낮췄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7213억원, 영업이익 13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1.7%, 영업이익은 71% 줄었다.

중국 기초 유분 공급 과잉·수요 위축 겹쳐…실적 비상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과 중국발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 업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의 최대 시장이지만 2016년 전체 석유화학 수출에서 46.3%의 비율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 왔다. 2022년에는 38%까지 떨어졌다.

중국은 2014년 기존의 양적 성장 기조에서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시장에 집중하며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신창타이(新常態)’로 경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이에 따라 중국 석유화학 산업도 자급률이 높아져 중국 수출 비율이 높은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혼합 자일렌·톨루엔 등 6대 기초 유분의 세계 공급 과잉은 2억1800만 톤이다.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규제에 맞서 내수 진작, 자립형 공급망 구축, 고부가 가치 제조업 강화를 꾀하는 중국의 공격적인 석유화학 투자가 주된 배경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 유분 확보 수준을 대폭 상향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대규모 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설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중국이 석유화학 기초 유분의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이유는 석유화학 산업을 산업망의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기간산업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기초 유분, 중간 원료의 자급률이 2025년 10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시황에 민감하고 중국 석유화학 회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한 범용 제품 사업을 정리하거나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SKC는 2022년 필름 사업 매각에 이어 폴리우레탄 원료 사업 자회사인 SK피유코어, 반도체 소재·부품 자회사인 SK엔펄스의 파인세라믹스 사업부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재편을 통해 반도체·2차전지·친환경 소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정밀화학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1600억원 규모의 질산유도품(DNT) 신설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금호석유화학 연구원이 대전 화암동 중앙연구소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금호석유화학그룹 제공
금호석유화학 연구원이 대전 화암동 중앙연구소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금호석유화학그룹 제공
LG화학, 여수 NCC 2공장 매각 검토

LG화학도 사업 구조 재편 등 비주력 사업 정리에 나섰다. LG화학은 6월 9일 생명과학 부문 체외진단용의료기기사업부를 1500억원에 글랜우드PE에 매각하기로 한 데 이어 6월 19일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 명의로 석유화학사업본부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한계 사업에 대한 구조 개혁을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전북 익산공장의 고부가 합성수지(ABS)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했고 인력을 여수공장으로 이전 배치했다. 가동이 중단된 전남 여수 나프타 분해 설비(NCC) 제2공장 매각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NCC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제조하는 핵심 시설이다.

주요 NCC 공장 가동률은 2021년 90% 이상이었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70~80% 이하로 떨어졌다. 여수 NCC 제2공장을 포함한 LG화학의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은 2020년 92%에서 2022년 81.4%로 하락했고 올해 1분기엔 77.4%로 떨어졌다.

상횡이 이렇게 흐르자 석유화학업계는 주력 사업 의존도를 낮추면서 신성장 분야로의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발맞춰 전기차·배터리 소재 분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친환경 소재·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성장 동력을 기반으로 석유화학 중심에서 글로벌 과학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특히 양극재·분리막·탄소나노튜브(CNT) 등 배터리 소재 매출액을 2030년 30조원으로 6배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성장 동력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LG에너지솔루션 주식 1.6%를 활용해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외화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도 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 제품. 사진=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제공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 제품. 사진=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제공
한계 사업 정리·전기차 소재 등 체질 개선 본격화

롯데케미칼은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며 배터리·수소 분야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 기업에서 수소·배터리·고부가 가치 소재 등을 아우르는 종합 화학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2030년까지 수소·배터리 사업에 총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수소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120만 톤 규모의 청정 수소를 생산·판매한다는 목표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본격화했다. 배터리 소재 부문은 올해 3월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구 일진머티리얼즈)를 통해 2028년까지 초극박·고강도·고연신 등 초격차 기술이 적용된 하이엔드 동박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할 계획이다.

금호석유화학도 전기차 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CNT와 전기차의 고성능 타이어에 들어가는 합성 고무인 솔루션 스티렌 부타디엔 고무(SSBR)가 대표적이다.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충남 아산 신창에 연 120톤 규모의 CNT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전남 순천 율촌산업단지에도 CNT 생산 라인을 짓고 있다.

CNT는 전기와 열 전도율이 구리·다이아몬드와 동일하고 강도는 철강의 100배에 달하는 차세대 신소재다. 기존의 소재를 훨씬 뛰어넘는 특성 때문에 배터리·반도체·자동차 부품·항공기 동체 등에 폭넓게 쓰인다.

글로벌 CNT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고 2030년 7만 톤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SSBR은 타이어의 내마모성과 연비 성능을 향상시킨 고기능성 합성 고무다. 2022년 말 SSBR의 연간 생산 능력을 기존 6만3000MT(메트릭톤·1000㎏)에서 12만3000MT까지 확대했다.

금호석유화학은 SSBR의 원료 스티렌을 재활용 스티렌(RSM)으로 대체한 친환경 타이어 소재인 친환경 고기능성 합성 고무(Eco-SSBR)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공급하기로 했다. 자회사 금호폴리켐을 통해서는 범퍼 등 자동차 부품과 전선 절연 피복 소재, 타이어 튜브 등에 활용되는 기능성 합성 고무(EPDM)의 수요 증가에 대비해 2024년까지 7만 톤 증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