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등하는 물가로 생활고 겪는 미국인들 늘어나…9월에 금리 동결 여부 ‘주목’

[글로벌 현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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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언스퀘어에서 8월 5일(현지 시간) 수천 명이 난투극을 벌였다. 미국 유명 게임 인플루언서인 카이 세낫이 유니언스퀘어에서 공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다. 뉴욕경찰국(NYPD)은 소셜 미디어의 악영향이라고 분석했지만 일각에선 다른 의견도 나온다. 폭등하는 물가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늘면서 전례를 찾기 힘든 여러 사회적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을 돌아가며 터는 떼강도가 등장하는가 하면 노숙자 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궁핍함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美 대도시에서 떼강도 잇따라…백화점에서 수십 명 명품 약탈

뉴욕타임스는 8월 5일(현지 시간) NYPD가 카이 세낫(21)을 폭동 선동과 불법 회합 등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세낫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팔로워만 2000만 명에 달하는 유명 인사다. 혼란은 세낫이 라이브 방송에서 인기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5(PS5)’를 맨해튼의 공원인 유니언스퀘어에서 나눠 주겠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오후 1시 30분쯤 유니언스퀘어에는 약 300명의 팬들이 모여들었다. 인파는 몇 시간 만에 6000명 수준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세낫의 선물을 받기 힘든 상황을 알게 된 인파는 가로등 기둥과 교통 표지판을 기어오르고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거나 경찰관에게 물건을 던졌다. 몇몇은 폭죽을 터뜨리면서 총성으로 착각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일각에선 고공 행진을 이어 가는 물가가 게임기의 주요 고객층인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미국은 가을 학기 시작을 앞둔 ‘백 투 스쿨(back to school)’ 시즌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5세에서 18세 사이의 자녀를 둔 미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학생 1인당 지출이 작년의 661달러에서 평균 597달러로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학부모들은 필수 학용품에 대한 지출이 전년 대비 20% 증가하지만 의류와 액세서리는 14%, 전자 제품은 13%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어려워진 가계 경제로 학용품은 사더라도 게임기를 구매하기엔 힘든 환경이 된 것이다. 딜로이트는 재정적 피로감이 올해 신학기 쇼핑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설문에 응답한 학부모 중 약 3분의 1이 작년에 비해 가계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응잡자의 51%는 향후 6개월 동안 경제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고 고소득 가구의 46%도 이처럼 예상했다.


미국 주요 대도시에서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명품 매장을 습격하는 떼강도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8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서부 지역 웨스트필드 토팡가 쇼핑몰에 있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30∼50명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한꺼번에 몰려와 최대 10만 달러 상당의 명품 가방과 의류 등을 훔쳐 달아났다. 이들은 매장에서 명품을 쓸어 담은 뒤 차를 타고 도주했다.

여러 명이 집단으로 백화점 등을 급습해 물건을 훔쳐 가는 사건이 최근 들어 미국 대도시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30일에는 시카고 관광 명소 ‘뮤지엄 캠퍼스’ 인근 루스벨트 전철역 주변에 400명에 달하는 청소년이 모여 집단 난동을 피우다 40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은 SNS를 통해 대규모 모임을 계획하고 인근 상점에 떼로 몰려 들어가 물건을 약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하게 늘고 있는 미국 홈리스

미국 인플레이션의 그늘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미국 전역의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사라지면서 올해 미국 노숙자 수가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약 11% 증가했는데 이는 정부가 데이터를 축적한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연말까지 이어지면 증가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노숙자 수만 57만7000명 이상이다.

실제 미 노동부에 따르면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는데 주요 요인은 렌트비였다. 집 주인들이 주택 담보 대출 이자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한 것이다. 렌트비를 포함한 주거비는 전월보다 0.4% 올라 7월 물가 상승에 대한 기여도가 90%에 달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7월 금리 인상도 미국 가계에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 미국 CNBC방송은 이날 “작년 3월 이후 11회째인 이번 금리 인상은 여러 형태의 가계 대출과 관련한 자금 조달 비용을 높여 가계에 더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NBC는 우선 20% 이상으로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인 신용카드 평균 이자율도 조만간 더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정 정보 업체 월렛허브는 이번 금리 인상으로 신용카드 사용자는 앞으로 12달 동안 17억2000만 달러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모기지(주택 담보 대출)로 새롭게 주택을 구매하려는 이들은 현재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Fed의 금리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구매력을 상당히 잃어버릴 것으로 분석됐다. 30년 고정 금리 모기지론의 평균 금리는 현재 7%에 육박한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다가구 주택 대출액의 절반가량인 9807억 달러의 만기가 도래한다. 만기가 되면 아파트 담보 대출자는 새 대출 금리를 적용받아 물어야 할 이자가 확 늘어난다. 아파트 담보 대출은 대부분 장기 고정금리를 적용받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은행들이 금리 상승 부담을 덜기 위해 단기 변동 금리 대출 비율을 높였다.

늘어난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아파트 투자자가 증가하면서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 30억 달러 규모의 다가구 주택을 보유한 니티아캐피털은 지난 3월 투자자들에게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기대 수익치를 낮췄다고 알리기도 했다.

다행히 미국의 7월 CPI 상승률이 전망치보다 밑돌면서 9월 연방시장공개회의(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해 시장을 위축시켰다. 데일리 총재는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체로 예상대로 나왔고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아직 데이터상으로 승리를 알리는 것은 아니고 “아직 할 일이 더 있다”고 말했다.

Fed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려 한쪽에서는 지난 1년 반 동안의 금리 인상이 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빨리 중단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미국)=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