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횡령 여파 가시기 전 경남·대구은행도 금융 사고…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선되나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은행권에서는 잇따라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에서 일어난 횡령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작년 11월 은행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의 준법 감시 부서 인력 확충과 전문성 확보, 장기 근무자 감축, 사고 예방 조치 운영 기준의 재설계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후 은행들은 올 1분기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앞다퉈 각 사 내규에 반영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무색하게 은행권의 횡령 등 다양한 사고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날이 갈수록 그 규모와 수법이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허위 계좌부터 700억원대 횡령까지

33년 만에 시중 은행 전환을 시도 중인 대구은행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고객의 동의 없이 허위 계좌를 개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금융감독원은 대구은행 직원들이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는 협의를 인지하고 8월 9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대구은행 사건을 지난 8일 인지하고 자체 감사를 진행했고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즉시 검사를 개시했다”고 말했다.

대구은행 직원 수십 명은 지난해 1000여 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들은 내점한 고객을 상대로 증권사 연계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뒤 해당 계좌 신청서를 복사해 고객의 동의 없이 같은 증권사의 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이는 증권 계좌 개설 실적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금감원이 밝힌 사고의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이 실제로 영업점에서 작성한 A증권사 계좌 개설 신청서를 복사한 후 이를 수정해 B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개설하는 데 활용했다. 또 임의 개설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 개설 안내 문자(SMS)를 차단하는 방식까지 동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고가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상 금융회사는 고객 실명임을 확인한 후에만 금융 거래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고 신청서를 위조해 계좌를 개설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경남은행에서 횡령 사건이 터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담당했던 경남은행 직원이 약 60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다. 이 직원은 2007년부터 약 15년간 PF 대출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족 계좌로 대출 상환금을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 서류를 위조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증권 업무 대행을 맡은 KB국민은행 직원들이 고객사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0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겼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이들은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들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이 700억원대를 횡령하는 사건이 금융계에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역대급 횡령 규모였다.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횡령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사건 사고로 지난 7년간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의 규모는 1800억원대로 알려졌다. 횡령에 가담한 임직원 202명 중 은행이 113명(56.0%)으로 가장 많았다.

횡령 사고로 인해 은행을 향한 불신이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에서 반복되는 횡령의 원인을 짚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한 명의 직원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업무를 도맡는 장기 근무의 문제점이다. 앞서 ‘역대급’ 횡령 사고를 일으킨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은 문제의 직원들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업무를 맡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들을 견제할 만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제도 개선 나선 금융 당국

물론 은행이 순환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13년 KB국민은행의 국민주택기금 채권 횡령과 도쿄 지점 부당 대출이 연달아 터지면서 은행들은 ‘순환 근무제’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당시 ‘순환 배치 인사 운영 관련 유의 사항 통보’를 통해 직원 순환 근무 적용 대상, 예외 인정 기준 등을 내규에 담으라고 지도했다.

하지만 이는 ‘권고’일 뿐이다. 특히 전문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기업금융(IB)이나 프라이뱃 뱅커(PB) 등은 근무 기간을 예외적으로 둘 수 있다. 업무의 연계성을 고려해 한 보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을 권장하는 내부의 분위기도 있다. 특히 IB 등은 고객과의 신뢰와 전문성을 이유로 직무를 쉽사리 교체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횡령 사고로 특정 보직에서 장기간 근무한 임직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장기 근무자의 업무를 모니터링하지 않았고 내부에서도 눈치를 못 챘다는 것은 은행의 내부적인 통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계기로 그해 11월 한국 은행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통해 장기 근무자에 대한 인사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명령 휴가 대상자에 동일 부서 장기 근무자, 동일 직무 2년 이상 근무자도 포함하기로 했다.

횡령이 계속 발생하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낮은 회수율이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은행권 횡령액은 1509억8010만원에 달하지만 환수율은 7.6%(114억9820만원) 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회수율은 반복되는 횡령 사고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은행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다. 이 교수는 “금전을 다루는 리스크에서 자유롭기 위해 은행권이 고액 연봉을 주는 것인데 이러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은행권 자체의 도덕적 의식이 낮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연일 발생한 은행권의 금융 사고에도 나아진 것이 없자 금융 당국은 보다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전체의 ‘모럴 해저드’를 없애는 것에 앞서 금융권의 내부 통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내부 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통상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이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고 시행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내부 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해 두는 ‘책무 구조도’ 도입이다. 특히 책무 구조도에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임도 명시된다. 대형 금융 사고나 횡령 같은 조직적·반복적 사고 시 CEO도 문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명시돼 있고 임원별 구체적 책무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개정안에는 임원별 책무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문서화하도록 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