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 파산 직전까지 몰렸으나 팬덤이 기업 살려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 특유 기능·감성으로 찐팬 만들어
도넛 브랜드 노티드, 자체 캐릭터 만들고 굿즈 선보이며 팬덤 형성

[커버스토리-팬덤의 경제학]
할리 데이비슨 팬덤 '호그'의 모습. (사진=할리 데이비슨 네이버 포스트 갈무리)
할리 데이비슨 팬덤 '호그'의 모습. (사진=할리 데이비슨 네이버 포스트 갈무리)
팬덤을 거느리는 것은 아이돌뿐만이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정 회사에서 출시하는 제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다른 회사 제품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심지어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상관하지 않는다. 충성도 강한 ‘팬’을 보유한 기업들, 이들은 어떻게 팬덤을 구축했을까.파산도 막아낸 할리데이비슨 팬덤 ‘호그’1903년 설립된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데이비슨은 ‘미국의 상징’으로 불렸다. 자유·개성·저항의 이미지에 미국의 강력한 파워를 상징한다는 의미였다. 이 상징이란 단어에 따라 할리데이비슨은 ‘팬덤 브랜드의 시초’로 평가받기도 했다. 고객의 재구매율이 95%에 이르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할리데이비슨의 전성기는 1950년대까지였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수 물자 납품을 통해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할리데이비슨은 한때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50년대 영국 업체들이 저가로 오토바이를 생산, 점유율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1960년대 일본 브랜드의 공습이 시작됐다. 혼다·스즈키·야마하 등이 경쟁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의 매출은 감소했다. 점유율은 20%대로 추락했다.
결국 1969년 미국 레저 용품 회사 AMF에 할리데이비슨의 경영권이 넘어갔다. 부활은 쉽지 않았다. AMF는 인력 감축, 생산 공정 단순화 등으로 비용 절감을 시도했지만 이로 인해 품질 논란까지 발생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시장점유율이 10%대까지 떨어졌다.

1982년 AMF의 경영 방식에 반기를 든 할리데이비슨 임원 13명이 씨티은행을 앞세워 회사를 다시 찾아왔다. 이들은 1983년 글로벌 팬클럽 ‘호그(HOG)’를 창단했다. 호그는 ‘할리 오너스 그룹(Harley Owners Group)’의 영문 앞글자를 딴 말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브랜드를 지키고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할리데이비슨은 호그만의 라이딩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경영진과 사용자들 모두 비슷한 디자인의 의류를 착용하면서 회사와 고객은 ‘한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새 경영진의 노력에도 1984년 위기가 찾아왔다. 씨티뱅크가 경기 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향후 몇 년간 과도한 선지급 또는 한도를 초과하는 대출은 금지하겠다고 통보한 것. 경영진은 다른 대출 기관을 모색했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다. 파산 위기에 처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이때 호그 멤버가 등장했다. 당시 헬러파이낸셜의 2인자였던 밥 코(Bob Koe)가 호그의 멤버였다. 할리데이비슨을 사랑한 밥 코는 헬러파이낸셜 이사회를 설득, 할리데이비슨에 4900만 달러를 공급했다. 업계에서는 “밥 코가 할리데이비슨을 사랑한 광팬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할리데이비슨은 현재도 호그를 “우리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라고 칭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팬덤은 이후 회사 재기에 밑거름이 됐다. 회사가 위기에서 탈출한 후 호그 멤버와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1986년부터 2006년까지 21년 연속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했고 2000년에는 일본의 혼다와 야마하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아 왔다. 할리데이슨은 이렇게 팬덤이 기업을 위기에서 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게 됐다.
브롬톤. (사진=브롬톤 홈페이지 갈무리)
브롬톤. (사진=브롬톤 홈페이지 갈무리)
‘감성’으로 그러모은 브롬톤 팬덤1976년 영국에서 설립된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도 팬덤이 막강하기로 유명하다. 한국 브롬톤 동호회 회원 수만 해도 6만 명이 넘는다.

브롬톤은 구매가 까다롭고 가격대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온라인으로 제품 라인별 특징을 살펴보고 원하는 모델을 정하면 전 세계 1400개 매장 중 한 곳에 가서 체험해야 한다. 만족한다면 온라인에서 다시 원하는 부품 옵션을 선택하고 매장에서 완성품을 찾아야 한다. 어려운 구매 방식 때문에 유튜브에는 ‘브롬톤 구매 방법’, ‘구매 가이드’ 등의 영상도 많다. 가격대는 200만~800만원대다.

그럼에도 팬덤을 모을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브롬톤이 자사 제품을 ‘도시를 위한 양탄자’라고 칭하고 모토를 ‘도시를 위해, 당신을 위해, 런던에서 만들다(Made for cities. Made for you. Made in London)’라고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롬톤 소유자들은 브롬톤을 ‘감성으로 타는 자전거’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 브롬톤 소유자들의 일상도 공유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딸과 함께 출근하는 고객, 교통 체증이 심한 푸트라자야에서 브롬톤을 선택한 고객, 남아프리카에서 브롬톤을 이용해 장기 휴가를 즐기는 고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브롬톤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공통점을 앞세워 소유자 간 연대를 지원하기 위한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이컨설턴시는 브롬톤의 전략에 대해 “전 세계 브롬톤 사용자들 또는 예비 사용자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처럼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브롬톤이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품질(가격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각 기능의 역할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롬톤의 기능과 디자인은 부수적인 요소다. 브롬톤 자전거는 1200개의 부품으로 이뤄진다. 부품의 대부분은 브롬톤 전용으로, 경쟁사 제품에 들어가지 않는다. 차별화를 위한 결정이다. 디자인의 변화는 거의 없다. 40년 전 제품과 최근 제품이 유사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는 브롬톤을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인 제품으로 꼽기도 했다.

브롬톤은 강력한 팬덤으로 리셀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제품이다. 중고 제품과 신제품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자전거 브랜드 중 하나다.
노티드. (사진=노티드 인스타그램 갈무리)
노티드. (사진=노티드 인스타그램 갈무리)
‘1시간 웨이팅’도 즐기는 노티드 팬덤한국에는 도넛 브랜드 노티드가 있다. 노티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팬덤을 형성했다. 노티드를 먹기 위해 웨이팅을 하고 사진을 찍어 SNS 계정에 공유하는 행위는 팬덤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가 됐다.

노티드 팬덤은 철저하게 계획된 결과다. 노티드는 2017년 도산공원 인근에서 ‘디저트 전문 카페’로 1호점을 오픈했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노티드를 운영하는 이준범 GFFG 대표는 고민 끝에 도넛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매장도 화려한 원색으로 리뉴얼했다.

이 대표는 리뉴얼 이후 노티드의 팬덤 형성에 주력했다. 캐릭터도 팬덤 구축을 위한 시도다. 이슬로 작가와 협업해 선보인 ‘슈가베어’ 캐릭터와 산업 디자이너 출신 이 대표의 부인이 구상한 ‘스마일리’ 캐릭터는 노티드의 굿즈 판매와 세계관 확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매장은 ‘인스타그램용’으로 만들었다. 고객들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결정이다. 노티드를 대표하는 색을 ‘노란색’으로 설정하고 파스텔톤의 밝은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매장 곳곳에는 스마일리와 슈가베어 굿즈가 있다. 그 결과 매장은 팬덤 사이에서 ‘인증 샷 성지’로 유명해졌다. 한때 도넛을 구매한 뒤 매장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SNS 유행이었다. 고객들은 노티드 매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장시간 웨이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것도 팬덤 형성을 위한 전략이다. 노티드는 전국 1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본사 직영이다. 가맹점은 없다.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회사가 추구하는 위생과 품질, 브랜드 가치를 개인이 맞추는 것은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팬덤은 지금도 노티드의 중요한 사업 전략이다. 최근 들어서는 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팬덤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티드는 마켓컬리·무신사·삼성전자 갤럭시·신한카드·신세계푸드·롯데제과·이니스프리·스파오·GS25 등 한국의 여러 기업들과 손잡고 노티드 전용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