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 "배당금 낮춰 주주가치 훼손"
고려아연 "주주환원 96% 내놓으라니" 발끈
영풍이 고려아연 주총 안건으로 상정된 배당결의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표 대결을 예고한 가운데 고려아연이 영풍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한 지붕 두 가족' 사상 첫 표 대결…주총 앞두고 신경전 가열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의 결산 배당을 결정했다. 중간배당 1만원을 합하면 1만5000원으로, 전년(2만원)과 비교하면 5000원 줄어든다.
이와 관련해 영풍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이익잉여금이 약 7조3000억원으로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배당금을 줄인다면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회사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돼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풍은 "작년(2022년)과 같은 수준의 이익배당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통주 1주당 1만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수정동의 안건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배당결의안에 대해 "2023년 기말배당 5000원에 더해 중간배당 1만원과 1000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율은 76.3%로 지난해(50.9%)에 비해서도 훨씬 높아진 상황"이라며 "환원액만 보더라도 2022년 3979억원에서 2023년 4027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대로 배당금을 높이면 주주환원율이 96%에 육박하는데, 기업이 모든 이익금을 투자나 기업환경 개선에 할애하지 않고 주주 환원에 쓰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영풍이 자사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매년 약 172억 수준이며, 영풍이 자사주 소각을 한적이 없기에 영풍의 총주주환원율은 5년 평균 약 10%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특히 가장 최근인 2022년 주주환원율은 4.68%에 불과하다"며 "결국 주주환원율이 5%도 안 되는 영풍이 고려아연에게는 주주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96%에 육박하는 주주환원율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 25.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영풍이 최근 5년간 고려아연으로부터 수령한 배당금 누적액은 3576억원이다. 장 고문 측은 고려아연이 배당금을 늘려야 매년 1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려아연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최윤범 회장, 현대차·한화 등 우군 끌어들여 지분율 역전
75년 동업 관계를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이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이게 된 배경에는 두 집안의 지분 경쟁이 있다.
고려아연은 재계 30위 영풍그룹의 주력사다. 영풍그룹은 재계에서 유일한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자가 공동 창업해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3대째 공동 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장 씨 일가는 (주)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을, 최 씨 일가는 세계 1위 아연 제련업체 고려아연을 포함한 비전자 계열을 맡고 있다.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는 3세 경영인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사업 등 신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이견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2022년부터 공격적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늘리면서 장 고문 측도 지분 희석에 대응해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며 대주주 간 지분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지분율은 장 씨 일가가 더 높았지만 매출은 최 씨 일가가 맡은 고려아연이 압도적으로 높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영업이익의 80%이상을 내는 알짜 계열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고려아연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매출 9조7045억원, 영업이익을 6591억원을 올렸다.
최 회장이 지난해 현대차, 한화의 외국법인 등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지분율을 높이면서 최근 양측의 지분율이 역전됐다. 지난해 말 기준 최 씨 일가가 약 33%, 장 씨 일가가 32% 수준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양측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약 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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