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스터디]
5월 29일 대만 야시장에서 젠슨 황. 대만에서 황의 인기는 톱스타와 가깝다. '젠세니티'란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5월 29일 대만 야시장에서 젠슨 황. 대만에서 황의 인기는 톱스타와 가깝다. '젠세니티'란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기술 업계의 테일러 스위프트예요.”

최근 메타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SNS에서 한 인물소개가 화제를 모았다.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을 묻는 질문에 당대의 최고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빗댄 건데 저커버그도 팀 쿡도 갖지 못한 칭호다.

‘젠세니티(Jensanity)’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젠슨 황의 영향력과 인기를 반영하는 표현으로 젠슨 황의 젠과 ‘광기’를 뜻하는 영어 ‘인새너티(insanity)’를 합친 신조어다. 그의 등장과 활동이 팬덤 현상을 일으키며 대중과 산업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뜻한다.

엔비디아 주가가 하늘을 치솟더니, 결국 6월 18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시총 1위 기업에 등극했다. 미국 증시는 물론 세계 증시에 영향을 떨치다보니 그의 한마디에 관련 기업의 주가가 널을 뛰기도 하고, 그의 한마디에 국가 위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주식시장을 넘어 전방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열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1993년 그래픽의 시대
엔비디아는 1993년 3인의 엔지니어가 미국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의기투합하며 시작했다. 데니스에서 젠슨 황이 데니스의 CEO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엔비디아
엔비디아는 1993년 3인의 엔지니어가 미국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의기투합하며 시작했다. 데니스에서 젠슨 황이 데니스의 CEO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엔비디아
“앞으로 그래픽과 비주얼 컴퓨팅의 시대가 열릴 거야.”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24시간 레스토랑. 젠슨 황과 그의 친구인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커티스 프림은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실적인 3D 그래픽을 가능하게 하는 칩을 만들기로 다짐한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고 PC 그래픽 산업이 태동할 때였다.

젠슨 황을 비롯한 3인의 엔지니어는 그래픽 산업을 혁신할 회사를 구상하며 창업 자금을 모으기 위해 4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1993년 4월 5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라틴어 INVIDIA) 것’이란 뜻의 사명을 담아 회사를 설립한다. AI 시대의 최고 수혜자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시작이다.

지금이야 창대한 기업이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그래픽 산업을 혁실할 회사를 꿈꾼 게 젠슨 황만은 아니었다. 경쟁자도 여럿, 당시 대기업이었던 인텔 역시 이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 누구도 엔비디아를 주목하지 않았다. 기업의 방향성을 고민한던 때 마침 3차원 그래픽을 앞세운 PC게임 ‘둠’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전문 시각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었다. 젠슨 황은 ‘게임시장’을 잡기로 결심한다. 게임 그래픽 성능을 개선하면 그래픽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1998년 TSMC와의 만남
반도체 거물의 회동. 5월 29일 대만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모리스 창 TSMC CEO와 젠슨 황 CEO.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거물의 회동. 5월 29일 대만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모리스 창 TSMC CEO와 젠슨 황 CEO. 사진=연합뉴스
‘NV1’, ‘NV2’, ‘리바’ 등 제품은 그럴듯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사업을 성장시키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창업 3년 차 파산의 기로에서 젠슨 황은 한 장의 편지를 쓴다. “저희는 신생기업인 엔비디아입니다. 혹시 저희의 첫 반도체를 만들어줄 수 있나요?” 그는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 측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문의했다. 당시만 해도 스타트업에 지나지 않았던 엔비디아의 제안이 대기업 TSMC에 닿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의 편지는 끝내 TSMC를 이끄는 CEO 모리스 창을 울렸다. 1998년 당시 64세 모리스 창은 32세의 젠슨 황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TSMC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대만 증시의 강력한 상관관계(커플링)를 한 방에 설명하는 장면이다.

1998년 TSMC와 손잡은 엔비디아는 이듬해 세계를 놀라게 한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지포스 256’, 세계 최초의 GPU다. 엔비디아가 설계하고 TSMC가 제작한 이 제품은 복잡한 그래픽 작업을 처리할 때 성능 병목현상 없이 데이터를 칩에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엔비디아만의 독자적 기술이었다. 2D와 3D를 분리해 처리한 기존의 그래픽카드와 달리 지포스는 3D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기술이었기 때문에 게임과 같은 3D 그래픽이 끊김없이 화려하고 부드럽게 표현될 수 있었다. 순차적으로 하나씩 연산작업하는 CPU보다 훨씬 더 많은 코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픽셀이나 그래픽 작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센세이션으로 평가받았다. 한때 엔비디아를 파산 위기에 빠뜨린 경쟁사 3DFX의 패배를 결정지은 마지막 한 방이기도 했다.

지포스 시리즈는 빠른 속도로 대중화됐다. 당시 최고 인기 게임인 ‘디아블로2’의 인기와 맞물리면서 “그래픽카드는 지포스”란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1999년엔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리즈의 단점이 있었다. 압도적인 성능이 아니라면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없다는 문제다. 2003년 등장한 지포스 시리즈 ‘지포스 FX’는 성능과 발열, 전력소모 모두 경쟁사 ATI의 ‘라데온’에 밀린다는 평을 받았다. 독보적이었던 엔비디아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여진으로 테크 기업들의 조정이 급격한 시기였다. 엔비디아 주가는 2002년 말 연초 대비 90% 폭락했고, 업계에선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까지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안에선 칩 내부결함이, 밖에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7월 3일 하루 만에 주가가 30% 하락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려야 했다. 소비자들은 사치품으로 여겨진 GPU의 수요를 줄였다. 엔비디아, 제2 파산의 위기였다. 2010년 암호화폐와 AI 젠슨 황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사업을 접는 대신에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책정했다. 이렇게 줄인 돈은 인재를 영입하는 데 썼다. 제2, 제3의 3DFX와 ATI에 대한 불안도 컸다. 게임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그래픽카드에 매진했는데 단일 사업만으로는 언제든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신사업을 고민하던 무렵 젠슨 황의 눈에 포착된 것은 ‘딥러닝’이었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인 딥러닝은 상당한 양의 행렬 곱셈이 필요했고, 여기에 엔비디아의 GPU가 활용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2010년 아직까지는 딥러닝의 연구개발이 한창인 때로 수익까지는 머나먼 미래로 보였다. 그때 예상치 못한 호재가 등장했다. 2009년 비트코인이 탄생한 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비트코인 채굴에 CPU보다 GPU가 효율적이란 인증 글들이 게재되면서 엔비디아의 GPU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예상치 못한 호재이자 위기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다. 암호화폐 값이 ‘떡상’한 2017년부터는 PC 시장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그래픽카드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졌고 엔비디아도 ‘떡상코인’을 제대로 탔다. 회사도 이를 기회로 삼아 암호화폐 채굴 전용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돼 암호화폐 규제가 시행되면서 ‘역작’으로 여겨진 엔비디아의 전용 프로세서도 과잉 재고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예전의 엔비디아가 아니었다. 지난 위기에 대비해 신사업으로 준비한 딥러닝에서 유전이 터졌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로 AI 시대가 문을 열자 엔비디아는 그간 준비해둔 딥러닝용 GPU에 실탄을 쏟아부었다. 2017년엔 엔비디아가 자체 개발한 딥러닝용 GPU인 ‘테슬라 V100’을 발표하고 관련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AI 시장의 빠른 발전을 도왔다. AI의 발전이 곧 엔비디아의 GPU 사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한다. 챗GPT를 훈련시킨 도구가 엔비디아의 ‘테슬라 V100’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AI의 수혜주로 엔비디아는 다시금 ‘떡상코인’에 오른다. 그가 예견한 미래였다.
지난 3월 22일 젠슨 황이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남긴 친필 서명에 삼성전자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한국경제 DB
지난 3월 22일 젠슨 황이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남긴 친필 서명에 삼성전자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한국경제 DB
2023년 5월 30일 엔비디아는 처음으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다. 6월 13일엔 종가 기준으로 시총 1조 달러에 돌파하며 미국 기업 중 일곱 번째로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한다. 8개월 후인 올해 2월에는 2조 달러를 돌파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만인 6월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시총 3조 달러를 돌파한 기업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엔비디아가 세 번째다.

애플을 가볍게 제친 그는 6월 18일(현지시간) 종가 기준으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3조3천400억달러(약 4천600조원)로 MS(3조3천200억달러)를 추월, 시총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파죽지세, 엔비디아의 오늘이다. 98% 하락 vs 2배 상승
6월 19일 시총 1위에 올라선 엔비디아. 사진=야후파이낸스
6월 19일 시총 1위에 올라선 엔비디아. 사진=야후파이낸스
금융투자업계에선 엔비디아의 미래 전망이 뜨거운 감자다. 불과 1년 전에도 엔비디아 주가의 ‘피크아웃’ 논란이 거셌다. 2024년 6월 현재도 마찬가지다.

유력 경제지 포브스는 최근 10대 1 액면분할을 단행한 엔비디아의 주가가 2년 이내 또다시 1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나벨리에 앤 어소시에이츠의 최고투자책임자 루이스 나벨리에 역시 “엔비디아가 10대 1 액면분할 호재로 결국 시총 1위인 MS를 제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엔비디아의 연내 시가총액이 4조 달러를 돌파하고 2025년까지 5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미국 경제학자이자 ‘인구절벽’ 저자로 잘 알려진 해리 덴트는 6월 10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증시가 고점 대비 90%가량 하락할 수 있다”며 “최근 영웅이 된 엔비디아는 좋은 기업이긴 하지만 주가는 98%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스크는 미국 증시의 거품 논란 그리고 정부 규제, 지정학적 리스크다. 6월 5일엔 미 법무부·연방거래위원회(FTC)가 엔비디아, MS, 오픈AI 등 3개 기업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미 정부에서 엔비디아가 적용하려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등 최신 기술의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투자자들의 방향은 ‘고(GO)’다. 세계 최대 기술주 중심 상장지수펀드(ETF)인 ‘테크놀로지 셀렉트 섹터 SPDR 펀드’(티커명 XLK)는 포트폴리오에서 엔비디아 비중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 6월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XLK 자산운용사는 6월 말께 분기별 재조정을 실시할 때 엔비디아 주식을 100억 달러어치 사들이고 애플 주식을 110억 달러어치 되팔 예정이다. 이 경우 XLK 포트폴리오에서 엔비디아 비중은 21%로 애플(20%)를 제치고 2위에 오를 전망이다.

국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선보인 ‘ACE 엔비디아밸류체인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는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데 상장 첫날 완판을 기록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엔비디아의 펀더멘털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벡 아리아 BoA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여러 세대에 걸친 로드맵의 가시성과 광범위한 반도체 포트폴리오가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목표주가를 기존과 같은 1500달러로 제시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6월 2일 차세대 모델 ‘루빈’을 공개하며 경쟁사들과의 기술력 격차를 과시했다. 또 GPU 업그레이드 주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AI 시장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시장 리더인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의 시대는 계속될 것인가.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