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두산밥캣의 완전 전동식 스키드-스티어 로더 S7X. 사진=두산밥캣
두산밥캣의 완전 전동식 스키드-스티어 로더 S7X. 사진=두산밥캣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매년 1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 두산밥캣이 적자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되는 내용으로,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두산 오너가 4세인 박인원 사장이 이끄는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의 견조한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오너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주)두산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산밥캣에 대한 오너일가의 실질적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개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출 183배 차이인데 밥캣 1주=로보틱스 0.6주…“휴지조각 돼”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46.06%)을 보유한 신설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 투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가 흡수합병하는 재편안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7월 11일 공시했다.

이를 통해 두산그룹은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개 부문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두산밥캣은 상장 폐지되고 기존 두산밥캣 주주들은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를 받게 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업종 구분 없이 혼재된 사업들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끼리 모아 클러스터화하는 게 이번 사업 재편의 목적”이라며 “재편 대상인 3사 모두 ‘윈-윈-윈’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합병 비율이었다. 2015년 출범 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적자 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 안정적인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거의 1대 1로 동일하게 평가받았다는 측면에서 소액주주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공시대로 합병이 이뤄지면 두산은 자금투입 없이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13.8%에서 42%까지 높일 수 있다. 두산밥캣 주주로서는 캐시카우 주식을 적자회사의 주식으로 교환해야 하는데, 주식 수도 줄어들기 때문에 손해가 불가피하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알짜 밥캣 상폐에 주주 오열…금감원도 제동

정부가 추진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을 위한 밸류업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7월 24일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7월 15일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중요 사항과 관련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정정신고서를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의 정정 명령으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내용이 담긴 증권신고서는 이날부로 효력이 정지됐다. 회사는 3개월 이내에 내용을 보완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번 사태 원인이 주권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이 시가를 따라야 한다고 정한 현 자본시장법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두고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포럼은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는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원에 불과하고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도 두산그룹 개편안에 대해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 매각 필요성보다 두산로보틱스의 두산밥캣 인수 필요성이 더 큰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주주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가격 협상을 통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두 회사의 이사회가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일반주주 이익보다 그룹의 이익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두산로보틱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분할 합병, 포괄적 주식 교환 방식을 철회하고 지분 직접 인수 방식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두산밥캣의 외국인 기관투자가 션 브라운 테톤캐피탈 이사는 이번 개편안을 ‘날강도 짓’이라고 평가하며 “공시를 보고 너무 격분하고 실망해서 홧김에 지분을 대부분 장내에 매도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가총액 대신 기업가치(TEV)로 밥캣과 로보틱스 간 합병비율을 계산해보니 적정 비율은 96대 4가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49대 51이 됐다고 지적하며 자사가 보유한 밥캣 주식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고 비판했다.
‘오토메이트 2024’에 참가한 두산로보틱스 부스 전경. 사진=두산로보틱스
‘오토메이트 2024’에 참가한 두산로보틱스 부스 전경. 사진=두산로보틱스
밸류업 역행에 신용등급 ‘비상’…‘밥캣방지법’까지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신용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두산밥캣에 대한 그룹의 개입 가능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두산밥캣의 ‘BB+’ 장기 발행자 신용등급과 채권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Credit Watch)’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종속회사였던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로 이동할 경우 더 이상 배당수익을 받지 못하는 것과 관련 “두산에너빌리티의 배당수익 기반 및 재무대응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두산그룹 전체 신용도 관점에서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회에서는 ‘두산밥캣방지법’으로 불리는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두산밥캣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상장법인에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와 정치권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에 주목하자 두산은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두산밥캣은 연내 자사주 소각 방침을 밝혔다.

오는 9월 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기존 자사주에 더해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취득하게 될 자사주까지 임의 소각하는 방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두산밥캣 주주는 주주총회 결의일로부터 20일 이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매수해달라고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두산밥캣 자사주가 소각되면 향후 신주 발행 물량이 줄어들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