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으로 살아난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한국서 신세계인터내셔날 통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

할리데이비슨 충성 고객 확보 동시에
바이크코어 찾는 2030세대까지 확보 가능

코어라인·뉴라인 등 고객 취향 맞게 디자인 세분화
헤리지티 계승 디자인부터 일상복까지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2023년 7월 16일 미국 위스콘신주 최대 도시 밀워키 길거리로 7000여 대의 오토바이가 쏟아졌다. 할리데이비슨이 개최한 120주년 기념 ‘홈커밍 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나흘간 진행된 축제에는 8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오토바이 팬덤의 시초로 불리는 할리데이비슨이 팬덤의 영향력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은 파산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브랜드이기도 하다. 미국의 상징이자 시장점유율 90%를 넘어설 만큼 영향력이 있었으나 신흥 브랜드의 등장과 품질 논란을 겪으며 입지가 줄었다.

할리데이비슨을 살린 것은 ‘팬덤’이었다. 이들은 회사의 조력자이자 동반자를 자처하며 할리데이비슨 재기를 주도했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설득해 할리데이비슨에 6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유통시킨 주인공 역시 팬이었다. 소수를 위한 브랜드가 100년이 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팬덤의 영향이다.

이렇게 살아난 할리데이비슨이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시도를 위해 첫 출발지로 선택한 국가는 한국이다. 테스트베드로 떠오르는 ‘K-패션’을 공략해 젊은층을 확보하기 위한 할리데이비슨과 신규 브랜드를 유치해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려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할리데이비슨 브랜드의 성장 과정. (그래픽=송영 디자이너)
할리데이비슨 브랜드의 성장 과정. (그래픽=송영 디자이너)
◆ “망할 뻔” 할리로 보는 팬덤의 파워1903년 설립된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데이비슨은 ‘미국의 상징’이자 ‘팬덤 브랜드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95%에 이르는 고객의 재구매율이 그 근거다.

할리데이비슨에 정식 팬덤이 생긴 것은 1983년이다. 브랜드의 경영권을 쥔 미국 레저용품 회사 AMF의 운영 방식에 반기를 든 할리데이비슨 임원 13명이 ‘할리 오너스 그룹(Harley Owners Group, HOG)’을 창단한 게 그 시작이다. 호그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호그는 파산 위기에 처한 할리데이비슨을 지켜주는 조력자가 됐다. 1984년 씨티뱅크는 경기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향후 몇 년간 과도한 선지급 또는 한도를 초과하는 대출은 금지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장 자금이 필요했던 할리데이비슨의 경영진은 다른 대출 기관을 모색했지만 경기후퇴와 고용저하가 지속된 상황에 쉽게 대출을 승인해주는 곳은 없었다.

할리데이비슨을 위기에서 구해준 곳은 시카고에 본사를 둔 헬러파이낸셜이었다. 헬러파이낸셜의 2인자이자 호그 멤버인 밥 코는 회사 이사회를 설득한 끝에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4950만 달러 규모 대출 승인을 받았다.

할리데이비슨이 팬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실시간 시장 조사 △팬덤 위주의 마케팅 △감성적 브랜드로의 전환 등이다. 그 결과 할리데이비슨은 수천만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대에도 충성도 높은 고객을 끌어모았다.

특히 1977년 할리데이비슨에 입사해 사업개발 부사장을 지낸 클라이드 페슬러는 바이크 모임에 참여해 고객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후 할리데이비슨을 ‘제품’이 아닌 ‘공유하고 싶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이후 마케팅 비용의 80%를 기존 고객을 위해 사용하면서 충성도를 높였다.

연회비도 많지 않다. 45달러만 내면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커뮤니티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고 고객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창립 첫해 3000명에 불과하던 호그는 현재 전 세계 1400개 이상의 지부, 130만 명이 소속된 거대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한국에도 강남, 원주 등 총 11개 도시에서 지부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 패션으로 재탄생…왜비싼 오토바이로 유명한 할리데이비슨이 국내에서 패션 브랜드로 변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할리데이비슨 컬렉션스’를 론칭하고 라이선스 사업을 본격화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할리데이비슨을 선택한 것은 충성도 높은 바이커 고객을 확보하는 동시에 ‘바이크코어룩’을 주도하는 2030세대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젊은층이 즐겨 찾는 온라인 플랫폼과 최신 패션 트렌드에 민감하고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지역에 팝업 매장을 운영하며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온라인은 자체 플랫폼인 에스아이빌리지와 함께 국내 최대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에도 입점했다.

우선 할리데이비슨의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 할리데이비슨의 매출 20% 비중은 액세서리 등 오토바이가 아닌 제품군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객들의 수요가 있다는 의미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들을 위해 디자인을 2개로 나누고 ‘코어라인’을 만들었다. 코어라인은 바이크 문화를 선도해 온 할리데이비슨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라인으로 클래식한 레더(가죽) 바이커 재킷과 밀리터리 보머 재킷 등의 아우터를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70만~1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제품이다.

동시에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인 바이크코어룩을 원하는 2030세대를 잡는다. 바이크코어는 바이크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가죽재킷, 가죽부츠 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바이크코어룩은 가을·겨울 시즌에 특히 인기가 많다. 바이커 재킷이나 카레이서의 경주복을 본뜬 레이싱 재킷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코어라인’과와 다른 ‘뉴라인’을 통해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로고와 심벌, 레터링 등의 그래픽을 활용해 티셔츠, 스웻셔츠, 재킷, 모자 등이 대표적이다. 뉴라인을 앞세워 메인 타깃층인 20~30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할리데이비슨 컬렉션스는 라이선스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내 2030세대를 타깃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고성장을 이뤄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