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30>
루이 로드레 가문의 7대 손 프레데릭 루조 회장(사진 오른 쪽)과 셀러 마스터 장 비티스트 레카이용이 크리스탈 샴페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루이 로드레 가문의 7대 손 프레데릭 루조 회장(사진 오른 쪽)과 셀러 마스터 장 비티스트 레카이용이 크리스탈 샴페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정러시아 12대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해방왕’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1861년 농노제 폐지 선언을 통해 4000만여 명에 달하는 농민들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반대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차르 체제 전복에 나선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들) 등은 수십 차례 독살과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방탄 마차를 선물로 보낼 정도였던 것. 황제의 불안한 일상은 고급 샴페인으로 위로받지 않았을까?

당시 샴페인은 영국 왕실은 물론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사치와 축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알렉산드르 2세는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 루이 로드레에게 두 가지 조건을 붙여 특별 주문을 냈다. 혁명과 해방이 일상이던 1870년대 중반의 일이다.

첫 번째 조건은 ‘병 색깔을 투명하게 하라’는 것. 불순물 포함 여부를 쉽게 확인, 독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병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펀트(병 바닥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 속에 폭탄을 숨겨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 로드레는 고심 끝에 햇빛 차단용 오랜지색 필름 포장과 최고 5.5기압에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병 제작을 통해 황실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명품이 바로 ‘황제의 와인, 크리스탈 샴페인’이다. 병 디자인은 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다.

루이 로드레 7대손 오너인 프레데릭 루조 회장과 샴페인 메이커 장 바티스트 르카이용 셀러 마스터(부사장)가 지난 10월 14일 한국을 찾았다. 크리스탈 로제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한 레스토랑에서 테이스팅 행사를 가졌다.

주인공인 루이 로드레 크리스탈 로제(2013) 외에도 △컬렉션(244) △빈티지 브릿(2015) △빈티지 로제(2016) △크리스탈(2007) 등 모두 다섯 종류의 샴페인을 선보였다. 테이스팅 진행은 오너와 셀러 마스터가 직접 맡았다.

가장 돋보인 와인은 단연 ‘크리스탈 시리즈’.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드러움과 편안함 때문이다. 첫 모금에서 중후한 느낌과 깊고 복합적인 맛을 단박에 찾았다. 별처럼 끝없이 피어오르는 기포에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발견했다.

루조 회장은 “좋은 와인을 만들려면 좋은 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다행히 물려받은 포도밭 규모가 총 240헥타르로 이 지역 샴페인 하우스 중 가장 넓다”고 말했다. 실제 상파뉴 지역 포도밭 전체 면적은 3만3500헥타르 정도로 1만5000여 개 샴페인 하우스들이 몰려 있어 평균 소유 면적은 2헥타르에 불과하다고.

그는 이어 “샴페인 하우스의 핵심은 창의성이다. 가족경영 체제에서는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어 샴페인 품질 향상에 마음껏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르카이용 셀러 마스터는 “크리스탈 2007 빈티지 샴페인의 향과 맛, 풍미는 이제 막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캐러멜 향이 올라오는 등 숙성미가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컬렉션, 빈티지 브릿과 로제에서도 잘 익은 과일 아로마와 파워풀한 맛, 고운 거품 등 샴페인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도 재배와 양조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 셀러 마스터는 “요즘 유럽에서는 K팝이 유행이다. 이 역시 창의성 때문인데 한국의 문화와 예술 분야는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를 닮았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2세는 결국 1881년 3월 어느 날 겨울궁전으로 가던 길에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19세기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크리스탈 샴페인을 남겼고 루이 로드레 양조장 입구에는 지금도 그의 흉상이 버티고 있다. ‘황제의 샴페인으로 해방감을 만끽하라’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