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예약앱 아니었어?…야놀자, 버티컬 AI로 여행업계 팔란티어를 꿈꾸다 [안재광의 대기만성's]
국내 숙박 앱으로 잘 알려진 야놀자의 이름이 ‘놀유니버스’로 바뀌었습니다. 작년 말에 야놀자와 인터파크, 트리플 세 곳이 합쳐져서 새롭게 탄생한 게 놀유니버스인데요. 야놀자는 국내 1위 숙박 앱이고 인터파크는 비행기 예약·공연 티켓 예매 분야에서도 1등이죠. 여기에 개인 맞춤형 여행 상품을 추천해주는 트리플까지 한 회사가 됐으니까요. 국내 여행, 레저 업계에선 나름 ‘슈퍼앱’이 나온 겁니다. 세 곳의 2024년 연간 거래액은 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야놀자는 이렇게 탄생한 놀유니버스를 자회사 형태로 떼어내고 브랜딩을 다시 했습니다. 숙소 예약이나 공연 티켓 구매 같은 플랫폼 사업은 전부 ‘놀’이란 브랜드를 쓸 예정입니다. 그리고 모기업인 야놀자는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 전념한다는 계획인데요. B2B 사업에선 야놀자의 이름을 그대로 쓴다고 하네요.

이런 식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건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 회사는 쿠팡처럼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해 주관사를 선정하고 상장 요건을 갖춰 가고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몸값’이 될 것입니다. 회사 측은 내심 100억 달러, 약 15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길 원한다고 합니다. 야놀자 하면 흔히 모텔 예약앱이라고 알고 있는 분도 많을 텐데요. 모텔 예약으로 이만한 가치를 인정 받을 리는 만무하고요. 어떤 비전이 있길래 이런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흙수저의 성공 신화

야놀자를 창업한 이수진 대표의 성공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죠. 흙수저 출신으론 드물게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쿠팡이나 네이버, 컬리 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창업자들과는 달랐어요. 좋은 집안도 아니었고 좋은 학벌도 없었습니다. 지방 전문대를 나와 모텔 청소부로 시작해서 매니저 일을 했고 이때 느낀 점을 ‘모텔 이야기’란 카페를 통해 기록한 게 계기가 돼 야놀자 창업까지 이어졌습니다.

2005년 야놀자를 처음 세웠을 땐 전국의 모텔, 호텔의 숙박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다. 모텔 사진이나 위치, 후기 같은 걸 공유했죠. 호텔과 다르게 모텔은 워낙 정보가 부족해서 이런 정보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요. 이수진 대표는 이걸 더 발전시켜서 모텔·호텔 예약 사이트로 키우고 싶어 했는데 잘 안됐다고 하죠. 업주들이 왜 굳이 야놀자를 통해 방을 팔아야 하느냐며 거절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창업하고 10년 가까이 지난 2015년 즈음에야 비로소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을 정도로 애를 먹었습니다.

야놀자의 성장을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대실인데요. 대형 호텔과 다르게 모텔은 2시간, 혹은 4시간 이런 식으로 대실을 해주는데 잘만 하면 한 방을 하루에도 수차례 대실로 돌릴 수 있습니다. 대실이 모텔 수익 극대화에 엄청난 도움이 된 겁니다. 업주들이 대실을 통해 돈을 잘 벌수록 야놀자에 등록하는 모텔이 많아졌고요. 전국의 웬만한 모텔, 그리고 중소형 호텔이 야놀자 안에 들어오니까 더 많은 사용자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야놀자는 사업이 안착하자 이후에 공격적으로 M&A에 나섭니다. 2016년엔 호텔 예약 업체 호텔나우를 인수했고 2018년엔 레저와 액티비티 플랫폼 레저큐를 비롯해 숙박용품 유통 업체 한국물자조달과 호텔 브랜드 ‘더블유디자인호텔’ 등을 사들였습니다. 또 호텔이나 모텔이 쓰는 객실관리 시스템 분야 국내 1, 2위 업체인 가람과 씨리얼도 2019년에 인수했습니다. 또 같은 해 해외 객실관리시스템 업체 이지테크노시스까지 품었고요.

이런 식으로 거의 매년 M&A가 이뤄져서 덩치를 급격히 키웠는데요.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2021년에 17억 달러, 요즘 환율로 하면 2조5000억원을 투자한 겁니다. 이때 기업가치를 68억 달러, 약 10조원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야놀자는 이 돈으로 더 적극적으로 대형 M&A에 나섰고요. 그해 12월에 인터파크, 그리고 AI 기업 데이블 M&A까지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23년에 이스라엘의 B2B 여행 솔루션 기업인 고글로벌트래블(GGT)을 인수했습니다. 이 회사는 호텔, 리조트, 항공권, 렌터카 같은 다양한 여행 관련 상품을 유통하는 B2B 솔루션 업체이고요. 100만 개 이상의 방대한 고객사 정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야놀자 측이 인수 금액을 밝히진 않았지만 인터파크 인수 때보다 돈이 더 들었다고 합니다.
◆클라우드 사업 주목받아
모텔 예약앱 아니었어?…야놀자, 버티컬 AI로 여행업계 팔란티어를 꿈꾸다 [안재광의 대기만성's]
이런 식으로 야놀자는 수십 개 기업의 M&A를 통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요. 현재는 크게 두 가지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흔히 아는 야놀자죠. 회사에선 이걸 플랫폼 사업이라고 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처럼 수백만, 수천만 명의 이용자를 모아 놓고 이 안에서 여러 사업을 벌이는 것이죠. 이번에 놀유니버스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게 이 야놀자플랫폼입니다.

야놀자플랫폼, 놀유니버스는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야놀자 매출의 약 70%를 올려 줬습니다. 금액으로 하면 5000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요. 그럼 나머지 30% 매출은 무엇이었느냐. 앞서 언급한 B2B 사업에서 나왔습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야놀자의 진짜 면모가 나옵니다. B2B 사업은 쉽게 말해 기업에 물건을 파는 겁니다. 그럼 야놀자 물건을 사는 회사는 어디인가 하면요. 바로 호텔, 리조트, 투어 업체, 여행사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야놀자는 일반 소비자에게 호텔, 리조트 같은 상품을 팔고 한편으론 호텔, 리조트 같은 곳에 쓰이는 상품도 팔아먹는 겁니다. 양쪽으로 다 파는 것이죠.

그럼 이들 기업에 파는 물건이 뭔가 하면 바로 클라우드 솔루션입니다. 우선 숙박관리 솔루션이란 게 있습니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ERP 같은 것인데요. 객실 배정이나 청소 일정, 체크인 체크아웃 관리 같은 걸 전산화하는 것이죠. 또 아고다, 익스피디아 같은 글로벌 여행사에 호텔이 갖고 있는 빈 방을 연결해주는 디스트리뷰션 솔루션 사업도 있습니다. 방이 팔리면 야놀자는 일정 비율만큼 받게 되고요. 여기에 더해서 가격 최적화 솔루션도 있습니다. 객실의 수요, 공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해서 호텔과 리조트에 가장 최적의 가격을 뽑아 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B2B 사업을 통해서 얻어진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인데요.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호텔, 리조트, 투어업체에 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해주고요.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을 통해 개선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사업화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요즘 업계 용어로 ‘버티컬 AI’라고 합니다. 챗GPT처럼 범용 AI와 다르게 특정 분야에 최적화된 AI가 버티컬 AI입니다. 버티컬 AI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바로 데이터 값을 넣는 것인데요. 양질의 데이터가 들어가면 그만큼 결과물도 좋아집니다. 야놀자가 고글로벌트래블 같은 회사를 인수한 주된 이유도 이러한 고객 데이터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야놀자의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하는 김종윤 대표가 올초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패널로 참여했는데 여행 분야에선 드물게 버티컬 AI를 사업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버티컬 AI는 요즘 증시에서 굉장히 핫이슈인데요. 범용 AI를 통해선 돈 버는 게 아직까진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은데 버티컬 AI 분야는 다릅니다. 돈 잘 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팔란티어입니다. 군사 분야 버티컬 AI로 급성장하고 있죠. 이 회사 주가가 최근 1년 새 300% 넘게 올랐습니다. 엔비디아의 주가상승률 130%의 두 배가 넘습니다. 급기야 록히드마틴, 레이시언 같은 미국 최대 방산 기업의 시가총액을 제쳤을 정도입니다.

야놀자가 만약 여행 업계의 버티컬 AI 기업으로서 팔란티어 수준으로 잘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면요. 미국 증시에서 10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