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방산 기술, 성능 입증..국내 운용사도 틸 유니버스 주목
팔란티어 담은 ETF 5개 상장...밸류체인 ETF로 투자 확대
◆‘전쟁 AI’ 시대 개막한 팔란티어
팔란티어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공동 창업자이자 의장인 피터 틸의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틸과 가까운 인사들이 국방, 안보, 정보 등 핵심 요직을 차지하면서 방산·항공·우주 산업 등 정부 주도 B2G(정부 대상 비즈니스) 분야에서 팔란티어의 입지를 키웠다.
틸이 주도하는 ‘틸 유니버스’의 철학은 기술 낙관주의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공적인 문제를 신기술로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이 같은 신념은 방산에 특화된 ‘버티컬 AI(Vertical AI)’ 분야에서 팔란티어, 안두릴 같은 기업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2024년 한 해에만 6670만 달러(약 900억원)에 달하는 미국 정부 계약을 따냈다. 민간 부문 매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팔란티어 시스템 도입 이후 기존 2000명이 하던 전장 분석 업무를 20명이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전 성능도 입증됐다. 이에 따라 팔란티어는 ‘대체 불가능한 전장 AI’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정치적으로도 AI 기반 방산 기술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War Department)’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미군을 방어 중심에서 공격 운용 중심으로 재편할 의도를 드러냈다.
업계는 공격적이고 효율적인 전장 운용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팔란티어를 비롯한 ‘틸 유니버스’ 출신 기업들이 글로벌 방산 기술 생태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며 “관련 ETF 상품은 향후 AI 기술 투자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밸류체인ETF로 방산 분산 투자
한국거래소와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상장된 ETF 중 ‘팔란티어’라는 명칭이 포함된 상품은 총 5개, ‘테슬라’를 포함한 상품은 7개다. ETF 규정상 특정 종목 편입 비중은 25% 이내로 제한되지만 나머지 75%의 자산 구성이 각 상품 간 차별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팔란티어 관련 ETF는 크게 네 가지 전략으로 구분된다. 채권과 혼합된 구조, 밸류체인 기업을 함께 담는 구조, 지수 연동형, 커버드콜 혼합형이다. 신한자산운용의 ‘SOL’은 커버드콜 채권혼합 상품으로 관련 ETF 중 가장 많은 거래대금을 기록 중이다. 키움자산운용의 ‘KIWOOM’은 미국 30년물 국채를 포함한 환 헤지형 상품이며 KB자산운용의 ‘RISE’는 고정 테크100과 미국 테크100 지수를 혼합해 추종한다. 최근 상장한 ‘KoAct 팔란티어밸류체인액티브’는 지난 8월 26일 첫 거래일에만 30억원의 거래대금을 기록하며 상위권에 진입했다.
KoAct 팔란티어밸류체인액티브 ETF는 팔란티어에 22%, 팔란티어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에 78%를 투자한다. AI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방산 기술 관련 종목을 LLM 기반 스코어링으로 선별한다. 편입 종목 중 오라클은 비중 2위 기업으로 2024년 4월 팔란티어와 글로벌 클라우드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오라클은 각국 정부 및 기업의 소버린 AI 구축과 데이터 분석 인프라를 지원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는다.
팔란티어 밸류체인에는 미래 방산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라이징 스타들도 포함됐다. 아처에이비에이션(ACHR US)은 차세대 도심 항공모빌리티(UAM) 기술에 팔란티어 AI를 적용해 비행 경로 최적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양사는 지난 3월 차세대 항공 소프트웨어 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팔란티어는 올 7월 미 해군의 해양 우위 유지를 목표로 한 ‘군함용 워프 스피드’ 기술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방산 조선업체 헌팅턴잉걸스(HII US)도 주목된다. 드론 하드웨어 분야의 핵심 기업인 에어로바이런먼트(AVAV US)는 드론 전투 강화로 인한 소프트웨어 수요 증가에 따라 ‘하드웨어 속 팔란티어’로 불리며 ETF에 포함됐다. 팔란티어 종목에 단독으로 투자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밸류체인 전체에 분산 투자하는 전략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스페이스X 등 비상장 기업 투자도 가능
XOVR ETF는 비상장 증권을 편입할 수 있는 구조를 활용해 스페이스X(7.0%), 안두릴(0.6%), 클라나(0.4%) 등 주요 비상장 기업 지분에 투자한다. 이들 기업은 모두 피터 틸, 켄 하워리, 루크 노섹 등 페이팔 마피아들이 공동 설립한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 포트폴리오에 속해 있다.
파운더스 펀드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기술’을 투자 철학으로 내세우며 국방·보안, 우주항공,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기술, 원자력 등 전략산업에 집중한다. 이 중에서도 안두릴은 팔란티어 출신 엔지니어 트레이 스티븐슨이 공동 창업한 방산 AI 스타트업으로 미국 국방부 등 주요 B2G 수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상장 계획은 아직 없다.
XOVR ETF는 이런 비상장 주식에도 투자하면서 상장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최근 확산하는 토큰 증권화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실제로 로빈후드는 오픈AI, 앤스로픽 등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뒤 이를 토큰 형태로 전환해 EU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대일 실물 주식 기반으로 발행되지만 일부 기업들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법적 책임과 효력에는 한계가 있다.
XOVR의 주요 편입 기업들은 틸-머스크-안드리센 인맥이 구축한 미국 연방정부 내 네트워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페이팔 마피아 출신 인물 30여 명이 미 연방정부 요직에 포진해 있으며 이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방·기술 수주에 핵심 역할을 한다고 평가된다.
특히 방산·우주 분야는 민간 수요보다 정부 수요 의존도가 높고 독점 수주가 많은 특성상 정부와의 관계가 기업 성장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틸을 비롯한 페이팔 마피아의 정치적 네트워크는 XOVR ETF가 담고 있는 비상장 기업들에 큰 투자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박 연구원은 “토큰화 증권의 상장 및 유통은 아직 EU 시장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선 규제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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