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이 탄생합니다. 삼성전자입니다. 엔비디아는 삼성에 제휴하자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용 반도체인 HBM 생산과 파운드리 사업 분야에서 손을 잡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최고의 반도체 회사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D램으로 매년 수십조원을 버는데 굳이 HBM을 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절박했던 2등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이후 전개는 설명 안 해도 될 듯합니다.
삼성과 인텔은 비슷한 이유로 새로운 시대를 거부하고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두 회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모두 거대한 기득권이었습니다. “모든 혁신의 적은 기득권이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는 삼성전자 비관론이 팽배합니다. “전략도 없고, 기술도 압도적이지 않고, 내부 결속도 떨어진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주변 10명 중 9명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봅니다. 다들 이런 의견을 내니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 했는데 세계 1위를 하던 회사가 그냥 주저앉을 리 없다. 악재는 이미 다 나온 것 아닌가.’ 그런 주장을 하던 차에 새로운 징조들이 나왔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새로운 스마트폰 갤럭시 Z폴드7에 대한 좋은 평가, 테슬라와 애플로부터 파운드리 반도체 수주, 외국인의 삼성전자 주식 매수 등은 모두 긍정적 사인입니다. 애플에 밀리기만 했던 갤럭시 Z폴드7의 반격은 여전히 삼성전자에 1등과 혁신의 DNA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가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입니다. 두 번의 옥살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은 그를 옥죄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좋은 일이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이재용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시간도, 참모의 시간도, 법원의 시간도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또는 상황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게 됐다는 말입니다.
하필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중국은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고, 미국은 기술뿐 아니라 정치로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개척하기보다 ‘적응을 통한 생존’이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위기는 기업인에게 숙명과도 같다”는 이건희 회장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 아닌 시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이런 시기 가장 필요한 게 리더십입니다. 어쩌면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이재용 회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리더는 메시지로 조직을 움직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줄기차게 ‘위기, 변화, 최고의 기술’이란 메시지로 오늘의 삼성을 일궜습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AI를 통해 어제의 꿈을 오늘의 현실로 바꾸는 것”을 미션이라고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21세기에 가장 매력적인 자동차 회사가 되어 세계의 전기차 전환을 이끄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고, 지금은 인공지능 로봇 시대의 개척자가 되고자 합니다.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모토는 “해적과 같은 문화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재용 회장이 만들고 싶은 삼성전자는,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 시대였건 뛰어난 리더들은 뛰어난 커뮤니케이터였습니다. “뛰어난 장군이 연설을 하면 박수를 치고, 위대한 장군이 연설을 하면 진군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커뮤니케이터가 되지 못하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이 회장은 제대로 된 메시지를 던지고, 감당하고, 책임지며 정면승부를 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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