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로 데이터센터를 운영·임대하는 사업을 한다./코어위브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로 데이터센터를 운영·임대하는 사업을 한다./코어위브
올해 미국 S&P500에서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엔비디아나 팔란티어가 아니다.

AI 시대에는 명함을 못 내밀 것처럼 보였던 구식 기업들이 엔비디아, 애플, 테슬라, 알파벳(구글)보다 더 급격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인공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생산하는 저장장치 기업이다. 시게이트는 올해 들어 약 170% 뛰었고 웨스턴디지털(약 150%), 샌디스크(약 200%) 역시 세 자릿수 이상 폭등하며 새로운 주도주란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마크 저커버그와 샘 올트먼이 태어나기도 전에 설립된, 평소 조용하던 기업들의 급격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AI 컴퓨팅 장비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가 다양한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KB증권 “AI 생태계 새 시장 열린다”
"엔비디아·팔란티어 아니었어?" 美 증시, 낡은 기업이 쓴 반전[차세대 주도주⑤]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고 AI 추론에 필요한 저장장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50년대 사업을 시작한 HDD 기업들도 데이터센터용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시게이트, 웨스턴디지털 등 제조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1년 이상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수혜가 각종 인프라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김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AI 2.0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AI 반도체나 AI 서비스를 위주로 시장이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AI 생태계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AI 거품론이 3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는 여전히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브로드컴, AMD, 인텔 등 경쟁자들도 ASIC 기반 AI 칩을 내놓으면서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AI 칩 시장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올해 2분기 MS, 알파벳, 아마존, 오라클 등 주요 클라우드 기업의 설비투자 역시 800억 달러(약 1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최근 1년 누적 설비투자액은 2660억 달러로 S&P500 전체의 21.2%를 차지한다.

김 애널리스트는 “AI 생태계 전반에서 전력·네트워크·GPU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공격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며 “AI 2.0 시대의 주도권은 단일 GPU 기업이 아닌 데이터센터와 최적화 기술을 포함한 인프라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처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1월 “로봇의 챗GTP 순간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를 넘어 피지컬(Physical) AI로의 진화가 한번 더 시장 지형을 바꿀 것이라는 예고였다.

피지컬 AI는 AI가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상호작용하고 탐색할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피지컬 AI는 PC나 스마트폰으로 한정됐던 AI의 활약 무대를 현실로 옮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AI의 추론 능력도 더 강해져야 한다.

엔비디아는 추론형 AI가 토큰 생성량을 20배 이상 요구하고, 이로 인해 컴퓨팅 사용량은 150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로봇 등 피지컬 AI의 확산이 고성능 데이터센터 수요를 한층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참 조용하던 오라클이 지난 9월 초 실적발표 이후 하루 동안 주가가 36% 급등한 것도 AI로 인한 수혜가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수요를 반영해 새롭게 부상한 개념도 등장했다. ‘네오 클라우드’다. 네오 클라우드는 AI 컴퓨팅에 특화한 소규모 클라우드 회사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데이터 서버’ 스타트업이다. 코어위브, 람다, 크루소, 네비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 투자자에겐 생소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나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둘 정도로 성장했다. 코어위브는 원래 암호화폐 채굴업체였는데, 엔비디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표적인 네오 클라우드로 급부상했다.

2022년 매출액은 16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 12개월간 35억 달러로 급증했다. 코어위브는 지난 3월 말 나스닥시장에 상장해 주가가 233% 폭등했다. 코어위브는 대출과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AI 데이터센터를 매입한 뒤 이를 대규모 클라우드 기업에 임대한다.

또 다른 업체 크루소는 오라클과 오픈AI가 추진 중인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설계, 시공을 맡았다.

네비우스는 MS를 든든한 고객으로 두고 있다. MS는 최근 향후 5년간 네비우스의 AI 클라우드를 임차해 쓰기로 계약을 맺었다.

일각에서는 AI 인프라 관련 주가 급등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존스트레이딩의 수석 시장 전략가이자 닷컴버블 시대에 트레이더로 활동했던 마이클 오루크는 블룸버그에 “주도권 그룹의 주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사람들이 2차, 3차 거래를 찾기 시작한다”며 “이는 버블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테마인가 미래인가올해 미국 증시 대표주자들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선포하면서 지난 4월 3~4일 이틀 동안에만 미국 증시에서 6조6000만 달러(약 9600조원)가 증발했다. 폭락장은 ‘매그니피센트7(M7)’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경기순환주, 경기방어주 등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2000년 닷컴버블, 2001년 9·11 테러 당시보다 일일 하락폭이 더 클 정도였다. 회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닷새 만에 다시 관세 부과를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증시는 이후 최고가 랠리를 쓰며 위로 달렸다. 거품 논란 속에서도 빅테크 주가는 다시 급등세를 이어갔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 기술인 양자컴퓨터 종목들이 급등하며 서학개미를 끌어들였다.

양자컴퓨터 주도주는 아이온큐다. 아이온큐의 주가는 한 달 동안 90% 급등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는 부진했다.

지난 1월 8일 젠슨 황 CEO는 인터뷰에서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려면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3월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 실적도 여전히 마이너스다.

지난해 3억3160만 달러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도 손실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방위·안보 분야로의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안보 분야 양자기술 수요가 뒷받침되면 매출 증대는 물론 기술 투자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양자컴퓨팅 기업인 리게티컴퓨팅은 한 달 새 222% 치솟았다. 리게티컴퓨팅은 최근 미국 공군과 3년간 580만 달러(약 81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면서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자컴퓨터주는 아직까지 변동성이 크다. 일명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투자자들도 양자컴퓨터에 대한 부정적 전망에 올 들어 아이온큐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외화증권예탁결제에 따르면 연초 이후 9월 18일까지 국내투자자들이 매도한 아이온큐 주식은 41억1106만 달러(약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해외주식 종목 중 테슬라, 엔비디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매도됐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