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최근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하며 원가 상승 부담을 언급했다. 지난 6월 25일(현지 시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용 제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강한데 메모리 업체들이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생산능력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며 “메모리 가격과 공급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박하듯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6월 30일(현지 시간) CNBC 인터뷰에서 “최근 메모리 수급 불균형은 공급업체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일부 대형 고객사들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요구하면서 업계 전반의 투자 여력이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특정 기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애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 성장기 동안 막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메모리 업계 전반에서 가격 협상력을 행사해온 대표적인 고객사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공급업체들은 아이폰 공급망 진입을 두고 경쟁해왔고 그 과정에서 애플은 지속적인 단가 인하를 요구해왔다.
메모리 업황이 급격히 악화됐던 2022~2024년에는 D램과 낸드 가격이 크게 하락하며 주요 업체들이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 대형 고객사들의 강한 가격 압박이 이어지면서 공급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이것이 설비 투자 지연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누적된 투자 공백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되면서 수년 만에 공급 부족 국면을 촉발했다. 특히 AI용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범용 D램과 낸드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공방은 AI 확산 이후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 변화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과거 공급망 상단에서 가격 협상력을 쥐고 있던 애플을 상대로 메모리 업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편 애플은 메모리 공급망 확보를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중국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메모리 3사 중심의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조달처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XMT는 생산능력과 기술력 측면에서 메모리 3사와의 격차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CXMT는 ‘중국 군사 기업’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 명단은 미국 국가안보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애플이 최근 미국 정부를 상대로 CXMT 메모리 구매 허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자 의회에서는 즉각 반발이 제기됐다.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산 칩을 사용하는 것은 애플에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주주가치와 고객 개인정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호황을 기점으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향후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