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시장 제도 개편으로 만성적인 저평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른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저평가는 방치해도 무방한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저평가를 방치하는 순간 경영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제도 개편이 아직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구조적 변화인 만큼 만년 저평가 상태에 안주해온 기업들에는 새로운 ‘채찍’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저평가 기업 ‘채찍’ 맞는다…한국판 ‘베어허그’ 본격화
개편의 핵심은 ‘이사회의 행위 규범 변화’와 ‘정보의 투명한 공개’다. 그동안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외부에서 M&A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경영진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거나 이사회 단계에서 논의를 차단하며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우선시해왔다. 그 결과 일반주주는 정보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하지만 개정안이 도입되면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 인수 제안을 접수한 기업은 즉시 주요사항보고서를 공시해야 하며 인수 제안자 역시 인수 목적・매수가격 산정 근거・자금조달 방안 등 상세한 추진 경과를 명시해야 한다. 이사회 또한 주주 충실의무에 입각해 제안된 매수가격의 공정성을 검토하고 최종 입장을 시장에 공개해야 한다. 기업이 임의로 제안을 숨기거나 무시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 시장에서 정착된 ‘베어허그(Bear Hug)’식 M&A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베어허그는 인수자가 현재 주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기업 인수를 제안하고 이를 시장에 공표해 이사회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명분 없이 거절하기 힘들고 일반주주들에게는 기업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해외 시장에서는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된 곳을 중심으로 이러한 적대적 제안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결국 베어허그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려면 기업 스스로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 구조적 체질 개선...‘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개편안의 목적은 단순히 M&A를 활성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증시의 만성적인 저평가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을 바로잡고 기업의 숨겨진 가치를 시장에 드러내 재평가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음에도 대주주의 이익 등을 이유로 이를 방치해 온 기존의 행태를 손질한다. 동일 업종 내 저PBR 기업을 상시 공표하고 '저PBR' 태그를 표출하는 등 시장의 눈총을 활용한 이른바'네이밍 앤 쉐이밍' 제도를 적용해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어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에 대한 재평가도 추진된다. 국내 상장사의 95%는 부동산 자산을 취득가 기준인 ‘원가법’으로 회계 처리하고 있어 장부상 가액과 실제 가치 사이의 괴리가 크다. 대표적인 예로 하림지주의 경우 서울 양재동 부지의 실제 평가액이 1조 6,000억 원에 달함에도 장부가액은 4,955억 원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투자부동산의 장부가와 공정가치 차이를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해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자산 재평가의 범위를 비상장 자회사 지분 등 기타 자산 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나아가 이러한 공시 장치는 M&A 및 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역할로도 확장된다. 그동안은 계열사 간 합병이나 주식교환 추진 시 자산가치 대비 턱없이 낮게 형성된 주가를 기준으로 삼아 일반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지속되어 왔다. 개편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M&A 추진 시 주가뿐만 아니라 자산·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가액 산정'과 '독립적 외부평가'를 의무화했다.
아울러 대표적인 폐단으로 지적되던 중복상장 문제도 적극적으로 개편된다.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시켜 모회사 주주가치를 희석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자회사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불가피한 경우 '주주가치 영향평가서' 공시를 의무화했다.
결국 이번 개편은 '투명한 정보 공시'와 '평판·검증 체계'를 통해 기업 스스로 숨겨진 가치를 입증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 증시를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적 체질 개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 ‘숨은 가치’ 드러난다…주목해야 할 수혜주는
이러한 제도 개편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곳은 역시 자산가치에 비해 오랫동안 저평가돼 온 기업들이다.
보유 부동산의 ‘장부상 가치’와 ‘실제 공정가치’ 간 격차가 큰 자산주들도 주목할 대상이다. 한일철강, LS네트웍스, 경방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시 의무화가 시행되면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가치가 재조명받으며 빠른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비상장 자회사를 보유한 지주사 역시 대표적인 수혜군으로 꼽힌다. CJ가 대표적인 사례다. CJ의 알짜 자회사인 CJ올리브영은 기업가치가 원가법 기준 550억 원에 불과하지만, 25년 기준 실제 자본 총계는 1조 원에 달한다. 향후 공정가치 공시 대상이 확대되면 이처럼 장부에 가려져 있던 비상장 자회사의 가치가 드러나며 지주사 할인이 완화되고 기업가치 역시 재평가될 수 있다.
기업가치를 방치하는 것이 곧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저평가 상장사들은 “주가를 부양할 것인가, 회사를 넘길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동안 일반주주의 가치를 외면한 채 저평가를 용인해 온 지배주주의 경영 방식에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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