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1주택, 실질적 세대구성 살펴봐야”
[법알못 판례 읽기]
조합원이 현금청산 대상이 되는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투기과열지구에서 ‘1세대 1주택’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가 대표 사례다. 다만 단순히 주소만으로 1세대 1주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법원은 최근 ‘실질적으로 주거·생계를 함께하는 동일 세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불가피한 이유로 잠시 다른 집에 전입한 사정만으론 입주권을 박탈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5년 내 재당첨 제한’이 쟁점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공현진)는 A 씨(조합원)가 서울 송파구의 B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관리처분계획 일부 취소 소송에서 지난 5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조합은 2025년 12월 송파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았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9부 능선’으로 통한다. 이 관문만 넘으면 이주와 철거, 착공 등 실제 공사 절차를 밟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A 씨를 현금청산 대상자로 분류했다. A 씨의 주민등록상 세대주가 사위 C 씨였던 점이 문제가 됐다. C 씨는 2020년 8월 투기과열지구인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에는 ‘5년 내 재당첨 제한’ 조항이 있다. 투기과열지구 내 정비사업 조합원이나 일반분양 대상자 혹은 그 세대에 속한 자가 5년 내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이다.
A 씨가 잠실우성4차 조합원 분양을 신청했을 때는 2020년 8월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A 씨는 조합의 현금청산 처분에 불복해 “도시정비법상 분양신청을 제한받는 대상이 아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도시정비법에서 말하는 ‘1세대’, ‘하나의 세대’ 내지 ‘동일한 세대’는 실질적으로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고 있는 가구를 의미한다. A 씨는 이를 바탕으로 “사위인 C 씨와 실질적 동일 세대를 이루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A 씨가 C 씨 집에 전입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A 씨는 당초 태국 방콕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집에서 1년가량 장기 거주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에 살고 있던 집을 임대했고 출국 전 임시 거주를 위해 딸의 집에 전입해 사위인 C 씨의 세대원으로 등록한 것이다.
그런데 출국을 앞두고 방콕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출국이 미뤄졌다. 아들은 이후 한국으로 귀국 발령을 받았다. 자연스레 방콕 거주 계획은 취소됐다. 이 같은 ‘피치 못할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A 씨 주장이다.
“현금청산 대상자 지정은 위법”
재판부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A 씨가 딸 부부와 생계 및 주거를 함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 씨는 딸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오가며 외손자들을 돌보긴 했다. 그러나 연금과 임차료 수입 등으로 독립 생계를 유지했다. 본인의 계산으로 관리비와 수도료 등을 납부했고 생활비 역시 스스로 수입에서 충당했다.
또한 A 씨는 30여 년간 B 아파트에서 실거주했다. A 씨는 배우자가 사망한 뒤 상속을 통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재판부는 A 씨가 딸 부부 집에서 거주한 방식에도 주목했다. A 씨는 손자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또한 당장의 계절에 적합한 옷만 챙겨 입주했다. 재판부는 “A 씨는 임대차계약에 따른 이 사건 주택(B 아파트)의 인도 시기와 해외의 아들 주거지로의 이전 시기 발생한 주거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시로 딸 부부 주거에 전입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자녀들의 독립 이후 동일 세대 형성 목적으로 주거를 함께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B 조합은 주민등록표상의 전입 사실을 근거로 A 씨와 C 씨의 주거 동일성이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형식적 요건에 치중할 경우 실제로는 주거를 함께함에도 주민등록상 주소만 분리해 입법 목적을 회피하려는 경우를 막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도시정비법에서 1세대 1주택 등 요건을 둔 이유는 투기수요로 인한 재건축사업의 과열, 이로 인한 재건축 주택 분양 기회의 형평 저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A 씨의 경우 이런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노후 주거를 정비해 기존 주거자들에게 자기 재산 가치에 상응하는 새로운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재건축 사업의 근본적 의의”라며 “A 씨와 같은 경우에서까지 분양 신청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저히 형평에 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 씨를 현금청산 대상자로 지정한 조치는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A 씨가 B 조합의 조합원 자격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도 인정했다.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 토지 등 소유자는 분양신청 기간 만료일 다음 날에 조합원 지위를 잃기 때문이다.
[돋보기]
골목길은 유상 양도 대상?…헌재로 간 재건축 분쟁
압구정 등 서울 강남권 대형 재건축 사업장의 공사비는 ‘조 단위’에 이른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각종 분쟁도 많다. 최근엔 재건축 관련 소송이 재판소원까지 이어져 관심을 끌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3구역 재건축 조합이 청구한 재판소원 사건을 본안 재판부에 회부했다. 조합은 2017년 서울시·영등포구와 구역 내 ‘현황도로’를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금도 지급했다. 현황도로란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되고 있는 도로를 뜻한다. 다만 관계 법령에 의해 설치된 도로는 아니다. 주거밀집지역에 있는 골목길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현황도로가 유상 매입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펼쳐졌다. 조합 측은 현황도로는 무상양도 대상인 종래의 정비기반시설이라고 주장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정비사업 현장에서 종래의 정비기반시설은 사업시행자(조합)에 무상으로 귀속되고 새로 설치된 정비기반시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귀속된다.
이 같은 법 취지를 감안하면 현황도로는 조합이 지자체로부터 무상으로 넘겨받는 게 적절하다는 게 정비업계 입장이다. 실제로 조합들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도로나 공원 등 기반 시설을 새로 만들고 이를 지자체 등에 기부채납한다.
이에 대림3구역 조합은 현황도로 매매를 위해 지급한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 및 지연손해금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은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선 이겼다. 그러나 대법원이 조합 측 손을 들어주지 않아 결국 대림3구역은 패소가 확정됐다.
헌재가 이 사건을 재판소원 ‘본안’ 심판 대상에 올리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비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황도로 매매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헌재 판단에 따라 정비업계에서 대규모 소송전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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