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기존 차임보다 현저히 고액”
[법알못 판례 읽기]
하급심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부산의 한 상가 임대인 A 씨와 임차인 B 씨가 벌인 건물 인도 및 손해배상(맞소송) 청구 소송에서 지난 7월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는 2001년부터 A 씨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A 씨가 2023년 4월 월세를 기존 60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증액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번 분쟁이 시작됐다.
22억 권리금 계약도 깨져
B 씨는 2400만원의 월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금액을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A 씨는 2023년 9월 B 씨에게 임대차계약 갱신 거절 의사를 통지했다. 그러면서 임대차 기간은 2023년 12월에 만료된다고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B 씨도 후임 임차인을 찾는 등 건물을 비워줄 준비를 했다. B 씨는 2023년 10월 해당 상가의 신규 임차를 희망하는 C 씨와 권리금 계약을 맺었다. C 씨에게 총 22억원의 권리금을 받기로 했다.
B 씨는 A 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A 씨와 C 씨 사이 월세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A 씨가 C 씨에게 요구한 임대료는 보증금 5억원에 월세 2000만원이었다. 그러나 C 씨는 기존 임차인인 B 씨의 임대료(보증금 1억원, 월세 600만원)를 감안할 때 본인 월세가 너무 높다고 항변했다.
결국 C 씨와 A 씨 사이 임대차 계약은 결렬됐다. 이에 따라 B 씨와 C 씨 사이 권리금 계약도 없던 일이 됐다. 이후 A 씨와 B 씨 사이 임대차 기간이 만료됐다. 이에 A 씨는 B 씨를 상대로 건물 인도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자 B 씨는 필요비 상환과 권리금 회수 방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A 씨가 B 씨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이번 재판의 쟁점이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하는 조항이 있다.
구체적으로 임대인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 희망자에게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액의 차임 여부는 상가건물 관련 조세·공과금, 주변 상가건물의 차임 및 보증금 등에 비춰 판단하도록 했다. 1심과 2심은 A 씨가 C 씨에게 요구한 월세 수준이 현저히 고액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A 씨 소유 상가가 병원 정문 인근에 있어 입지 경쟁력이 우수하고 B 씨가 운영한 약국의 월평균 조제료 수입이 1억원(2023년 기준)에 이르는 데 주목했다. 또한 주변 시세와 비교해 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는 B 씨에게도 월 차임을 2400만원으로 증액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고 B 씨가 주선한 C 씨에게도 같은 수준을 요구했다”며 “A 씨가 현저히 고액의 차임을 요구함으로써 B 씨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상가임대차법 취지 잠탈”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 씨가 C 씨에게 요구한 차임(보증금 5억원, 월세 2000만원)이 기존 임대료(보증금 1억원, 월세 600만원)의 약 333%에 달하는 점에 주목했다. 상가임대차법상 환산보증금 기준을 적용해도 A 씨가 C 씨에게 요청한 차임은 기존의 357%에 이른다.
대법원은 “이 정도의 차임 및 보증금의 차이는 현저히 고액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 씨가 기존 가격의 세 배 수준인 차임을 요구하면서 별다른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은 점도 짚었다.
대법원은 “이를 통해 A 씨는 B 씨 또는 C 씨에게 임대차계약 체결을 단념하도록 했다”며 “이는 임차인이 영업을 통해 형성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임차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상가임대차법의 입법 취지를 잠탈하는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약국의 운영권 거래 시 권리금은 통상 월평균 조제료의 20배 수준에서 형성된다. 이를 감안하면 B 씨가 C 씨와 맺은 22억원의 권리금 계약은 합리적인 금액으로 볼 수 있다.
B 씨가 과도한 권리금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A 씨에게 보증금 또는 차임 지급 여력이 부족한 신규 임차인(C 씨)을 소개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원심은 B 씨의 월평균 조제료 수입이 1억원에 달하는 만큼 A씨가 요구한 차임이 현저히 고액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B씨가 얻은 조제료 수입엔 상가건물의 위치 외에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 등 B 씨의 노력에 의한 인적 요인이 상당 부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며 “상가 위치에 따른 바닥권리금은 0원, 영업권리금은 20억1500만원이라는 감정촉탁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사정을 반영하지 않고 A 씨가 상가 임대료를 대폭 올린 건 부당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현저히 고액인지 여부는 기존 임차인과의 차임·보증금과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에게 요구하는 차임·보증금의 차이, 상가건물의 시세 및 적정 차임, 거래 관행과 경제 상황 등도 고려해 구체적 사정에 따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돋보기]
형사사건으로도 비화하는 월세 분쟁
월세 납부 등을 둘러싼 집주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입주민이 월세를 제때 내지 않았다고 단수 조치를 한 오피스텔 건물주가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천지방법원은 최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A 씨는 인천의 한 오피스텔 소유주다. 그는 세입자 B 씨가 월세 선납일로부터 10일이 지날 때까지 월세를 납입하지 않자 작년 3월 건물 관리인들에게 단수 조치를 하도록 지시했다.
실제 관리인들은 B 씨 집 앞에 설치된 수도 배관의 일부를 철거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당행위를 주장했다. A 씨는 B 씨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료나 관리비 등이 1개월 미납되면 단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약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동기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등을 감안할 때 A 씨가 정당행위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권리(차임의 수납)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적법한 절차를 취하는 것이 곤란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단수 조치에 관한 피고인의 이익과 피해자가 침해받은 이익 사이 균형이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단 1회 월세의 연체만으로 단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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