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총의 최대 승부처는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석이었다. 최 회장 측이 추천한 백인규 후보는 509만2815주의 찬성표를 얻어 81.8%로 선임됐다. 영풍·MBK 측이 추천한 박유경 후보는 173만9065주, 27.93%를 얻어 과반 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두 후보에게 모두 찬성표를 던진 주주가 있어 득표율 합계가 100%를 넘을 수 있는 구조였다.
집중투표제로 선임한 독립이사 4석은 양측이 2석씩 나눠 가졌다. 영풍·MBK 측 심혜섭·이준봉 후보가 득표 순위 1·2위로, 고려아연 측 이형규·서은숙 후보가 각각 선임됐다. 이에 따라 전체 이사회는 기존 14명에서 19명으로 늘었고, 최 회장 측 12명 대 영풍·MBK 측 7명으로 재편됐다.
최 회장 측이 지분 열세에도 이사회 과반을 유지한 배경에는 이사회 구성에 초점을 맞춘 경영권 방어 전략이 있다. 지분율이 높다고 이사회 의석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고려아연은 2025년과 2026년 정기주총에서도 집중투표 등을 활용해 이사회에서 최 회장 측 우위를 유지해왔다.
이번에도 4명의 독립이사를 양측이 2명씩 나눠 가지면서 영풍·MBK 측의 이사회 진입은 확대됐지만,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석을 최 회장 측이 확보하면서 전체 이사회 과반은 유지됐다.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지분율 격차가 그대로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 개정 상법에 따른 합산 3%룰이 적용되면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제한됐고, 일반주주와 기관투자자의 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은 이번 표결에서 백인규·박유경 두 후보 모두에게 찬성했고, 독립이사 4명에 대해서도 특정 진영에 표를 몰아주지 않고 4분의 1씩 나눠 행사했다. 주요 의결권 자문사 가운데서는 ISS·서스틴베스트·PIRC 등이 고려아연 측 후보에 우호적인 의견을 냈다.
이번 결과는 2024년 9월 시작된 최 회장과 영풍·MBK의 경영권 분쟁이 주총 때마다 이사회 표 대결로 이어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
영풍과 MBK는 2024년 9월 경영협력계약을 맺고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에 최 회장 측도 자사주 공개매수와 우호세력 확보로 맞섰다. 이후 양측은 공개매수 가격 경쟁을 넘어 유상증자, 자사주 소각, 해외계열사를 통한 지분 확보 등을 둘러싸고 법적 공방까지 벌였다.
특히 고려아연 측이 해외계열사 SMC를 통해 영풍 지분을 취득하고 이를 근거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조치는 핵심 쟁점이었다. 법원은 이후 해당 의결권 제한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고려아연 측의 방어 논리에 제동을 걸었다.
경영권 분쟁은 오너 일가의 투자 의사결정 문제로도 번졌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약 5600억원을 출자한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에서 최윤범 회장 일가가 선행 투자한 비상장 기업에 약 690억원이 후속 투자된 경위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고려아연은 펀드 출자와 투자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개별 투자 판단은 운용사가 독립적으로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주총 결과에 대해 "현 경영진의 성과와 거버넌스 개선 노력을 주주들이 평가한 결과라며 프로젝트 크루서블과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지속하는 동시에 영풍·MBK의 경영 간섭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영풍·MBK 측은 "이번 주총에서 선임된 7명의 이사를 통해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와 해외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제기된 각종 의혹과 쟁점을 이사회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검증하겠다"고 했다.
이번 주총으로 경영권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내년 3월에는 이사 8명과 감사위원 1명 등 9석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사 8석 가운데 최윤범 측은 5석, 영풍·MBK 측은 3석이다. 이번에 7석을 확보한 영풍·MBK 측과 12석을 지킨 최 회장 측은 내년 3월 다시 이사회 표대결을 벌이게 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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