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

한국에 머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외국인은 며칠 여행하고 떠나는 대신 몇 주, 몇 달을 산다. 내국인도 지방에서 한 달을 살아 보고, 일하는 도시를 옮겨 다니며 머문다. 여행과 정착 사이, '한동안 머문다'는 생활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체류경제다.

머물려는 사람은 이미 많다. 지방에서 수도권 대학병원으로 부모를 간병하러 올라와 몇 주를 지내는 가족, 이사 일정이 어긋나 임시 거처가 필요한 사람, 인테리어 공사 동안 나가 있어야 하는 집주인, 전세를 알아보는 동안 "일단 짧게 살아보겠다"는 세입자, 한국에서 한 달을 살아 보려는 외국인. 전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다. 잠깐이지만 분명히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실이던 방이 몇 주씩 지내는 체류 공간이 됐다. 서울 가락시장역 인근 AZMT 운영 공간. (리브애니웨어 제공)
공실이던 방이 몇 주씩 지내는 체류 공간이 됐다. 서울 가락시장역 인근 AZMT 운영 공간. (리브애니웨어 제공)
그런데 이 흐름을 가로막는 병목은 엉뚱한 곳에 있다. 머물려는 사람은 느는데, 머물 공간이 없다. 호텔은 취사도 세탁도 안 되니 몇 주를 지내기엔 맞지 않고, 전월세는 2년을 요구하니 한 달짜리 삶에는 과하다. 체류경제의 진짜 관문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그리고 그 공급은 새로 짓는 데 있지 않다. 답은 이미, 도처에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그 얼굴이 지역마다 다르다. 도시에는 빈 '방'이 쌓이고, 지방에는 빈 '집'이 쌓인다. 두 개의 비어 있음을, 각각 살펴보자.

수도권 : 비어 있는 것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도시에는 빈집이 드물다. 대신 다른 형태로 비어 있다. 다 지어놓고 주인을 못 찾은 미분양 주택이 수도권에만 약 1만 8천 가구에 이르고, 이 가운데 완공 후에도 팔리지 않은 물량이 4천 가구를 넘는다(2026년 2월 말 기준). 여기에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오피스텔과 상가·오피스의 공실까지 더하면, 정부가 이런 공간을 주거로 되돌려 쓰겠다고 나섰을 만큼 도시 곳곳이 비어 있다. 도시의 유휴공간은 '빈집'이 아니라 비어 있는 방과 집합건물의 한 칸들이다.

더 뼈아픈 건 그 공간들이 수요와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어긋남의 핵심은 기간이다. 이 방들은 대부분 '오래 살 사람', 즉 매매자나 2년 전세 세입자를 기다리다 비어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실제로 빠르게 늘어나는 건 몇 주에서 몇 달을 머무는 체류 수요다. 기다리는 계약은 안 들어오고, 들어오려는 수요는 담을 계약이 없다. 오래 살 사람을 기다리며 비워 두느니, 잠깐 머물 사람으로 회전시키는 편이 공간에도, 소유주에게도 낫다.

지방 : 비어 있는 것은 '집' 그 자체다

지방의 비어 있음은 스케일이 다르다. 전국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통계청 주택총조사 기준 약 160만 호에 이르고, 압도적으로 지방에 몰려 있다. 그 가운데 장기간 방치돼 지자체 조사에서 '빈집'으로 확인된 집만 13만 4천 호. 전남 한 곳에만 2만 호가 넘는다. 다 지어놓고 주인을 못 찾은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전국에 3만 가구를 넘어섰는데, 그 대부분(약 85%)이 비수도권이다.

지방의 빈집은 오랫동안 '소멸의 증거'로만 읽혀 왔다. 사람이 떠난 자리, 관리되지 않는 흉물. 그런데 관점을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물 곳을 찾는 체류 수요와 만나는 순간, 빈집은 부담이 아니라 자산이 된다. 지방에서 한 달을 살아 보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리조트가 아니라, 부엌이 있고 동네가 있는 '진짜 집'이다. 이미 그 집이, 비어 있다.

수도권의 빈 방도, 지방의 빈집도 결국 같은 문제이자 같은 기회다. 형태만 다를 뿐, 둘 다 '오래 점유할 사람'을 전제로 지어졌다가 그 사람을 못 찾아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둘 다, 잠깐 머물 사람과 만나면 되살아난다.

비어 있는 공간 × 잠깐 머물 수요 = 체류경제의 공급

신축 없이, 이미 지어진 공간의 용도만 다시 정의하면 된다. 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이유가 생기고, 공실을 안고 있던 도시의 소유주에게는 회전이 생기며, 머물 곳을 찾던 사람에게는 살 만한 공간이 생긴다. 도시의 자원과 탄소를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 새로 짓는 대신, 비워 둔 것을 채우는 일이니까.

이 방정식은 이론이 아니다. 우리는 수도권과 지방에서 각각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노후 숙박시설과 미분양 오피스텔을 체류 공간으로 바꾸는 AZMT와 함께, 서울 가락시장역 인근 오피스텔의 공실을 호텔과 월세 사이의 단기 계약 상품으로 되살렸다. 오래 살 사람을 기다리며 비어 있던 방에, 몇 주씩 지내는 외국인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제주 빈집 재생 기업 다자요와 함께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소멸대응 빈집재생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낙천리 일대의 빈집 15채를 창업·워케이션·체류 공간으로 되살리는 '스타트업 빌리지 vol.1 조수리' 프로젝트다. 다자요가 빈집을 지낼 수 있는 집으로 재생하면, 우리는 그 집에 몇 주에서 몇 달을 지낼 사람을 잇는다. 카페와 공유오피스, 세탁방 같은 생활 인프라가 함께 들어서면, 빈집은 잠자리를 넘어 지역의 생활과 소비를 붙잡아 두는 거점이 된다.

두 실험 모두 아직 시작 단계다. 하지만 방향은 같다. 비어 있던 공간에 머물 사람을 잇는 것. 앞의 방정식이 현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체류경제를 키우는 열쇠는 더 많은 건물이 아니다. 이미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 채우는 일이다. 머물려는 사람은 이미 충분히 많다. 도시의 빈 방도, 지방의 빈집도 이미 충분히 많다. 둘 사이를 잇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에 이름을 붙여 줄 제도. 지금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그 연결이 이뤄지는 순간, 도시의 공실은 손실이길 멈추고 지방의 빈집은 소멸의 증거이길 멈춘다. 그리고 둘 다, 체류경제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된다.


정규호 리브애니웨어 대표는 서울과 제주를 기반으로 단기임대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게스트가 한국에서 길게 지낼 수 있도록 결제와 계약, 본인 인증, 다국어 안내의 문턱을 낮추는 데 주력하며,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해외 시장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