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드노믹스의 핵심 ‘그린 뉴딜’은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빠른 경제 회복을 위해 트럼프 체제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경제정책은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다. 그렇다면 향후 어떤 정책적 변화가 이뤄질까.

미국 월가는 전통적으로 대선에서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민주당 역대 대선 후보들은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와 감독 강화 및 법인세와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인상 등 월가를 옥죄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어 왔다. 그런데 올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월가의 지지를 상당히 받아 왔다.

특히 월가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 당선인에게 4배나 많은 기부금을 제공했다. 트럼프가 법인세 감세와 기업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 왔고, 바이든은 증세와 규제를 공약한 것을 감안하면 돈의 흐름이 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바이든은 이 덕분에 트럼프 대통령보다 정치 광고를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바이든이 월가의 이런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히든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비밀 병기는 바로 벤 해리스라는 경제학자였다.

세금과 예산 전문가인 해리스는 대규모 자금을 인프라 및 제조업에 투자한다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바이든의 경제 공약이자 슬로건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해리스는 대기업 임원들과 월가 투자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정책 설명회에서 바이든의 경제 공약을 설명하고 지지를 설득해 왔다.

해리스가 바이든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할 때였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해리스는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만든 경기회복자문위원회에 정책 자문을 하다가 CEA 의장인 오스탄 굴스비의 눈에 들어 백악관에 입성했다. 2013년 백악관을 떠났다가 2014년 바이든의 경제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해리스는 세금과 예산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세수 확보 방안을 제시해 월가의 지지를 얻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 가운데 ‘연소득 40만 달러’다. 해리스는 ‘연소득 40만 달러 이상(약 4억4500만 원)’의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인상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40만 달러 이상인 가구는 미국 전체의 1.8%뿐이지만 이들은 2021년 기준으로 국민총소득의 24.8%를 벌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소득세율 인상을 충분하게 감내할 능력이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고소득층의 기준을 연소득 25만 달러로 잡아 왔다. 바이든 당선인이 이런 합리적인 증세 방안을 제시하자 월가의 거부감이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월가는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월가가 바이든 당선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대규모 경기부양책 때문이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고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원상 회복시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더 강력하고 더 공정한 경제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중산층을 재건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이를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제시했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이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는 제조업을 지원하고 첨단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또한 연방정부가 미국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 내용을 보면 연방정부가 향후 4년간 미국을 근거지로 한 기업들의 재화와 서비스 구매에 4000억 달러, 청정에너지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의 연구·개발(R&D)에 30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또 해외 제조업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제조업 혁신과 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美 바이드노믹스의 핵심 ‘그린 뉴딜’은

◆대중 강경 정책 유지·친환경 투자 확대

바이든 당선인의 통상정책은 자유무역주의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를 채택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대중(對中) 강경 정책 기조는 이어지거나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교역국을 상대로 무분별한 수입 규제 및 관세 부과 조치를 시행해 왔다면서 이 때문에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동맹국들의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것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자신이 부통령 시절 성사시키는 데 공을 들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 Pacific Partnership, TPP)에 미국을 재가입시킬 계획이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7년 2월 TPP에서 탈퇴한 바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유세 기간 “TPP 재참여가 최우선 과제다”고 공약했다. 미국의 탈퇴 후 일본과 호주는 다른 국가들과 함께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체결했다. 바이든이 CPTPP에 재가입하려는 것은 중국이 추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는 CPTPP를 중심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중 정책의 경우 보호무역주의를 추진하되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3·4월호)에서 “미국은 중국에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중국이 마음대로 한다면 미국과 미국 기업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계속 털어갈 것”이라며 “가장 효과적 방법은 동맹 및 파트너와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에 대한 지식재산권 침해, 불공정 무역거래 관행 등을 근절하기 위해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복원시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지난 9월 미네소타주 선거 유세에서 “중국 기술 분야의 위협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전문가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 기업들의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의 선두주자인 화웨이의 장비 사용 금지를 지지한다면서 미국 기술을 도용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새로운 제재 방안 모색을 약속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경제정책은 그린 뉴딜이다. 그는 2021년부터 10년간 총 5조 달러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오는 2050년까지 미국의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2025년까지 탄소세 법안 도입을 추진하고 수입품에 대한 탄소 관세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또 100% 청정에너지와 무공해 차량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으며, 2030년까지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50만 곳 이상 설치하고, 2035년까지 건물 부문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바이든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 20일 첫 조치로 미국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것도 그린 뉴딜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이든 당선인의 의도는 지구촌의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막는 데 미국이 앞장서면서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동시에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산업 분야에서도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기후가 변화하면 일자리가 떠오른다”면서 “미국 경제의 장기적 건전성과 활력, 미국 국민의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대 공동연구팀은 “143개국이 2050년까지 에너지 공급 체계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286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화석연료 에너지 생산 체제에선 사회적 비용이 연간 8650억 달러가 들지만, 이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면 연간 1610억 달러로 줄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그런데 문제는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려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날씨에 따라 가동률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환경까지 파괴할 수 있다. 또 정전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를 이용한 대체 발전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바이든 정부는 앞으로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해 원자력발전을 확대할 방침이다. 원자력은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대표적인 에너지다. 바이든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차세대 첨단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명시하고 ‘신속한 상업화’를 공언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인수위는 4대 우선 국정과제(priorities)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제시하고 관련 기술 혁신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면서 인수위는 배터리 저장, 온실가스 마이너스 배출(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제거), 차세대 건축 소재, 재생 수소와 함께 첨단 원전(advanced nuclear) 등을 청정에너지 기술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주요 청정에너지 기술에 대한 과감한 비용 절감에 속도를 내겠다”며 “해당 기술들을 빠르게 상업화하고 미국에서 생산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동안 공약을 통해서도 “원자로 건설 비용이 절반 수준인 소형 모듈형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 SMR)가 100%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밝혀 왔다. 또 “비용에서부터 안전·폐기물 처리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원자력과 관련된 과제들을 조사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SMR는 기존의 대형 원전보다 발전 용량이 적은 소형 원자로다.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은 데다 넓은 부지가 필요 없고 건설 기간도 짧아 상당히 경제적이다. 기본적으로 500메가와트(MW) 이상인 대형 원전과 달리 통상 모듈당 발전용량이 300MW 이하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2월 SMR 관련 업체를 모아 의견을 듣고 규제 완화와 투자를 논의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가 석유와 석탄 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어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앞으로 탄소 배출 제로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원자력발전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바이든의 그린 뉴딜 정책 핵심으로 SMR 산업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탄소 배출 제로 정책은 전기차의 급속한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 중 상당수는 이미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미국 정부는 그동안 전기차 추진 정책에 상당히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바이든은 전기차 보급 가속화, 전기차 배터리 R&D 및 생산 가속화 지원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무튼 국제사회는 바이든이 추진할 경제정책인 ‘바이드노믹스(Bidenomics)’가 미국 경제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