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헌 작가·패션 칼럼니스트·스타일리스트] 일본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추종 세력을 가진 생활 방식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 제철 음식을 뿌리,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식사법). 그 움직임의 중심이 돼 온 일본 CI협회가 인증한 국내 유일의 공식 인스트럭터이자 매디컬 어드바이저인 이재련, 그가 만들어 가는 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 라이프, 그리고 어린이들과 나누는 좋은 먹거리와 행복한 삶에 대해서 알아본다.
마크로비오틱 그 자체, 이재련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일본 도쿄의 한 채식주의 식당에서였다.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수차례 들어오던 이름이자,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이미 ‘친구’로 지내며 그의 일과 관심사에 대해 들어왔던 터라 익숙하면서도 몹시 궁금하던 그와 그가 가르치고 몸소 생활하는 마크로비오틱에 대해서 직접 들어 보고 싶었다.
도쿄 출장의 여유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던 중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그러면 자기가 가 보고 싶던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자는 제안에 선뜻 응하게 됐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왜소한 몸집이었지만, 화장기 없는 미소에 강건함이 드러났고 무엇보다 확신에 찬 태도와 신념이 느껴지는 어투가 인상적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꼭지까지 다 먹어야죠.” 초면의 누군가에게 굳이 했어야 했을까 싶던 그 한 마디는 뇌리에 각인됐다. 접시에 담긴 방울토마토 꼭지의 식감이 거슬려 걸러내던 필자를 보며 꾸짖듯 건넨 그 한 마디. 바로 그 한 마디에 마크로비오틱의 삶을 추구하며 실제로 살아 온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이번 대한장인의 주인공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일본 마크로비오틱협회의 공인 인스트럭터이자 메디컬 어드바이저 이재련이다. 누구라도 탐낼 번듯한 대학의 정교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던진 사람, 건강한 사람들과 만나고 가르치고 배우며 행복한 사람, 자연이 준 선물은 말라비틀어진 꼬투리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사람, 모두가 꿈꾸는, 만족하는 삶으로 충만한 인생을 즐기는 인간 이재련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또 한 명의 장인의 삶을 엿보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마크로바이오틱은 해외에서 ‘조지 오사와’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일본의 사쿠라자와 유키카즈(桜沢 如一)가 창시한 것으로, 어떤 요리법이나 식이요법 혹은 특정한 요리의 이름이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이재련은 ‘동양철학과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거시적인 시각(macro)으로 생명(bio)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학문(tique, tic)’이라 소개했다. 마크로비오틱을 온전히 이해하자면 아마도 칼럼에 할애된 지면의 몇 배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이해해야겠다 싶어 그의 블로그에서 발췌해 본다.
마크로비오틱 이론의 중심의 3대 원칙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일물전체(一物全體), 그리고 음양의 질서(陰陽秩序)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원칙인 신토불이의 의미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한국의 전통적인 식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 민족으로 살아 왔으므로 고기 소비를 자제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농사의 도구로 활용하던 소, 그리고 중요한 거름의 원천인 돼지를 식용으로 취하는 것은 마크로비오틱 이론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토불이는 내가 태어나 살아 온 지역의 토종종자를 먹는 것을 의미한다. 토종종자는 오랜 세월 다양한 질병과 자연의 변화에 생존해 그 지역의 강력한 에너지를 끌어안고 있다. 이런 논리에 따라 내가 태어나 살아 온 땅과 내 몸이 하나이니 내 땅의 제철 재료를 먹는 것이 바람직하며 수입산은 물론, 인공적으로 키워 낸 하우스의 식재료는 피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둘째 원칙은 일물전체로 식재료의 뿌리부터 껍질, 줄기, 속살까지 한꺼번에 취하는 것이다. 식재료의 모든 부분은 각각 상이한 자연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이 제철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이유는 그 지역에 살아 온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그 식재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먹을 수 있고 소화가 가능한 것이라면 전부 일물전체로 섭취한다. 껍질째 통곡물 섭취를 권장하고, 가죽과 뼈, 내장까지 모두 먹기 어려운 동물성 식품을 제한하는 이유다.
마지막 원칙은 음양의 질서(조화)다. 자연 현상은 늘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도 우주라는 모태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항상 음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나친 현대화에 따라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이 조화가 무너지면서 인간은 컨디션의 난조를 겪고 병을 얻게 된다. 이렇게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그 어느 한쪽으로도 과하게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조화를 식재료에 적용하면, 양성의 뿌리채소와 음성의 잎채소, 과채들을 적절하게 구성해 균형 있는 식사를 하면서 계절을 느끼고 재료 자체를 음미하며 그 재료가 나는 시기를 기다리는 행복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인생을 바꾼 마크로비오틱과의 만남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병약했다는 이재련은 많은 음식과 자극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흔한 개근상 한 번 타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뭐든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학창시절은 늘 무리하는 일상이 이어졌노라고 회상한다.
성인이 되고 하고 싶던 공부를 찾아 박사학위를 딴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정교수로 학교에 부임하게 되지만, 되레 삶이 힘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원 없이 하고 싶은 강의를 하거나 연구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종 행정 업무와 잡무들이 쌓였고,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삶은 엉망이 된 것이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재련은 자신의 인생에서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마크로비오틱이었다. 아마존 같은 해외 사이트를 통해 해외 서적도 구입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마크로비오틱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어느 해 겨울, 방학을 이용해 도쿄를 찾아갔고 CI협회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바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쿠라자와 유키카즈와 그의 부인 사쿠라자와 리마가 만든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마크로비오틱 교육기관인 마크로비오틱 리마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방학을 이용해 일주일, 열흘 정도의 짧은 과정을 접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과 생활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늘 신경이 쓰이던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고, 남보다 우월해지는 것 또한 그 기준을 내가 정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그는 자유로워졌고, 본인의 민낯이 부끄럽지 않게 됐으며, 솔직한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좋아하는 방법을 찾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마크로비오틱 가르침에 깊이 빠져들면서 점점 더 마크로비오틱한 라이프스타일로 삶의 구석구석을 변화시켰다.
한국식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다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일본 CI협회가 제공하는 점진적인 단계들을 거치면서 더욱 더 마크로비오틱스러운 삶을 살게 된 이재련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찾게 되고, 나를 바꿔 준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주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로 결심한 그는 결국 미련 없이 교수직을 내려놓기로 한다.
“마흔을 앞둔 어느 날이었어요. 문득 더 이상 무리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하나를 이루기 위해 하기 싫은 오만가지의 것들을 참고 사는 지긋지긋한 생활을 내려놓고 싶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는 교수직을 내려두고 학교를 떠나던 날 가지고 있던 모든 것과 함께 그를 옥죄던 정장과 하이힐을 처분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일본 CI협회가 인정하는 한국인 최초의 인증 인스트럭터가 됐고 한국인 최초의 마크로비오틱 메디컬 어드바이저 자격도 획득했다. 본인이 사랑하는 학문을 자기 삶에 꾸준히 적용하면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인증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이재련은 자신의 교육기관인 마크로브이(macrobiotic+vegan)를 설립한다. 본인이 배우고 적용하면서 사랑하게 된 마크로비오틱 라이프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나누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그 방식 그대로 전달하는 교육의 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곳을 다년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저는 그들 덕분에 더욱 성장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 혹은 수강생들을 마크로브이 친구라고 부릅니다.” 필자는 취재 중에 실제로 그의 수업을 듣고 삶을 전환해 지금은 마크로비오틱과 관련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지내는 이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는데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나 낯선 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만족하는 삶의 자세와 다정하게 지내는 따뜻한 모습을 경험했다.
취재를 하다 보니 마크로비오틱의 수업 방식을 한국에 적용하려면 일본의 수업과는 다소 다른 특징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마크로비오틱의 3대 원칙을 적용하다 보면 특히, 신토불이 같은 원칙은 한국식의 현지화가 불가피해 보였다.
실제로 이재련은 그 점을 우리 식단에 적용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본교에서 적용하는 일본식 가정요리의 기본 식재료인 미소, 시오코우지(소금누룩), 흑당과 같은 식재료를 우리의 전통 메주 된장, 메주 간장으로 전환하고 우리의 우수한 전통 발효 방식을 선택해 교육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우리의 재료들이 활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제철 재료의 사용을 강조하는 마크로비오틱의 이론에 따라 한국식의 열두 달 김치를 담가 일본에 소개하게 되는데, 우수한 우리의 발효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기심과 동경에 힘입어 이재련식의 한국 마크로비오틱 김치와 열두 달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강의를 통해 역수출하는 좋은 경험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단순한 먹거리와 만드는 레시피가 알려지게 된 표면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마크로비오틱 라이프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이들의 학습 방법론 때문에 그동안 일본 내에서 다소 좌시돼 오던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식문화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었다니 일본에서 출발한 마크로비오틱에서 더 나아가 이재련의 한국식 마크로비오틱은 청출어람이 청어람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마크로비오틱 어린이 식당을 꿈꾸다
마크로비오틱 라이프를 살아가면서 행복해진 이재련은 건강하고 즐겁고 기쁜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 강의를 시작했지만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어린이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급식 세대는 스스로 메뉴를 선택할 권리가 없잖아요? 이것은 그저 가축을 사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집, 유치원, 그리고 초·중·고를 전부 합하면 15년 가까운 시간을 영양사가 결정한 오늘의 급식 메뉴를 먹고 자라게 됩니다. 물론 최근에는 좋은 식재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곳도 많지만 대부분 호르몬제와 항생제로 키운 식재료를 가공해 만든 음식을 먹고 자라게 되죠.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미각의 취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의 맛있는 밥의 기준이 즉석밥이라는 것은 정말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미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특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좋은 재료로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이고 싶었다는 그는 본인의 교육기관을 거쳐 간 마크로브이 친구들과 주변의 지원을 받아 실제로 어린이 식당을 운영했다.
한 달에 100명의 마크로브이 친구들이 어린이 3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면 300명이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마크로브이 친구들의 재능을 활용하고 주변의 경제적 지원이 더해져 서울, 과천, 논산의 아이들에게 마크로비오틱 식사를 제공해 왔다. 어른보다 솔직하고 본능적인 아이들은 뇌에 축적된 맛의 정보를 활용하기보단 맛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더 미각을 빠르게 발전시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잠시 멈춰 있는 이 프로젝트는 조만간 상황을 고려해 재정비해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마크로비오틱을 접한 이들은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의 삶의 황홀함을 알게 되고, 제철 음식이 주는 미각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며, 냉동실에 많은 음식을 저장하지도, 과하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취하지도 않는다. 제철 재료가 가장 맛있는 바로 그때 적당히 즐기고 또 다음 해를 즐겁게 기다리며,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고, 또 누구든 돕고 안아 주는 삶의 가치를 실천한다.
처음 만났을 그때보다 더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이재련의 달라짐을 보면서 정말 마크로비오틱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취재가 이어지는 동안 그가 만들어 준 건강한 밥상 덕분에 자꾸만 이재련을 자주 만나고 싶어졌다면 너무 솔직한 고백일까? 싱긋한 그의 미소를 떠올리며 행복하게 이번 칼럼을 갈음해 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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