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섭 태백산국립공원공단 자연환경해설사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100세 시대, 장기 불황 속 앞당겨진 은퇴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과 열정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중년들이 늘고 있다. 자연환경해설사로
제2의 삶을 시작한 박인섭(57)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 서범세 기자

[big story]“금융사 임원에서 해설사로, 생각의 틀 바꾸니 가치 보여”
누구나 일을 하고, 또 하고 싶어 한다. 단지 생존의 이유라고 규정하기엔 어쩐지 입체감이 부족하다. 현실에서는 되레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아닌가. 대체 우리는 왜 일하려 하는 걸까.

러시아계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위계론’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기본적 욕구인 음식, 물, 잠, 안전 등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점차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받고, 소속감을 느끼려는 사회적 욕구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단계를 지나야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일’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일을 하며 타인과 소통하고 세상을 배우며,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아실현을 통해 궁극의 행복을 맛보기 때문이다.

그 욕구가 신중년이라고 다를까. 실제로 우리나라 50∼60대인 ‘신중년’의 절반 이상은 70대가 넘어서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신중년의 경제활동 실태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신중년층의 59.9%는 70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들이 근로 활동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과반수인 58.1%가 소득과 경제적 요인을 꼽았지만, ‘건강을 위해 일하고 싶다’(16.8%), ‘자기 발전’(11.6%), ‘여가 활용’(7.1%), ‘사회공헌·봉사’(0.7%) 등 경제적 요인 외에도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을 위해 경제활동을 희망하는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자영업 또는 임시·일용직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50대 이전 상용직에 근무했던 비율이 38.9%였다면, 50대 이후에는 27%로 급격히 낮아졌고, 임시직(6.4%→8.1%), 일용직(3.9%→4.2%), 단독 자영업(37.7%→46%)의 비중이 증가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이제까지 진행돼 왔던 단순하고 일회적인 성격의 일자리나 생계형 일자리 창출에서 나아가 특수한 기술과 지식, 이들의 노하우, 과거 경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일자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일자리 개발 외에도 재취업을 위해 개인들은 어떤 노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그 질문의 답을 얻고자 박인섭 태백산국립공원공단 자연환경해설사를 만났다.

박 씨는 은퇴 후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의 정보통신기술(ICT), 창직, 도시 해설과 관련한 다양한 강좌를 듣고 여행 관련 커뮤니티와, 협동조합를 결성해 활동하던 중 태백산국립공원공단에 자연환경해설사로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다. 그가 말하는 취업 노하우를 들어봤다.

자연환경해설사 전 주로 어떤 일을 하셨고, 언제 은퇴하셨나요.
“은행, 펀드 회사 등 금융권에서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주로 기획, 조직관리 일을 했습니다. 2012년 말까지 제2금융권 회사에서 기획관리 담당 임원으로 근무했죠. 그 이후 사모펀드가 인수한 비상장 대기업에서 인수 후 조직정비, 관리 일을 했습니다. 상근 감사로 일하다가 2014년 2월에 회사 재매각과 함께 감사직을 사임했고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사모펀드에 속한 프리랜서로 인수·합병(M&A)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제 스스로 금융, 조직관리 분야에서 은퇴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2015년 말입니다.”


은퇴 전부터 은퇴 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셨나요. 은퇴 후 삶의 변화에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은퇴 전까지 전 늘 어딘가에 소속돼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전쟁터 같았죠. 간혹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는 원래 제가 속한 곳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했어요. 갑자기 닥친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은퇴 후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 없었기에 굉장히 혼란스럽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습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시도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어 두려웠죠.”

그렇다면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단, 어디든 소속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꼭 재취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조직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했으니까요. 무기력한 가장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죠. 어디든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좀 쉬고 취미생활도 가져 보라고 했으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구직활동을 하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았어요. 더욱이 이전에 속했던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경쟁력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했고, 마음의 때를 벗겨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마련해야만 했죠.”

다양한 재취업 루트 중 50플러스재단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단기간 내 재취업 활동을 위해 50플러스재단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현실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학교에 가고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50플러스 캠퍼스의 ‘인생학교’ 강좌는 그런 의미에서 제게는 적절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 저에게는 제2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재단에서 어떤 수업들을 수료하셨나요.
“우선, 2016년 2월부터 ‘인생학교’ 강좌를 통해 제 ‘마음 밭’을 갈았습니다. 제 안의 ‘꼰대’와 마주하고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콤플렉스와도 마주 했죠.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동기생들과의 여러 시도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9월 청소년 교육 비영리기관에 재취업이 됐어요. 약 1년 정도 그곳에서 일을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내 행복했지만 여러 면에서 제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죠. 그때까지 제 안의 꼰대 마인드도 적잖이 있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업무 관련 ICT 분야에서 젊은 동료들과의 격차가 참 컸어요. 새로운 세상에서 저는 서투른 초보였죠. 그래서 2017년 7월 다시 캠퍼스로 돌아와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죠.”

고민의 결과는 어떤 것이었나요.
“크게 세 가지였어요. 우선 앞으로 내가 무엇을 추진하고 도모하든 간에 베이스에 깔고 가야만 할 것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ICT 능력이라 생각해서 관련 강좌를 찾아 수강했습니다. SNS, 포털 등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배양 강좌, 블로그 만들기, 구글과 페이스북 활용법에 기반한 ICT 강좌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취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 컴퓨터활용능력 2급 시험에 응시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창직과정’을 수강했습니다. 1인 기업을 만들든 몇몇이 함께 일하는 조직을 만들든 각자가 필요한 현실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했고 강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탐색 과정으로 여행과 해설이 결합된 강좌인 도시해설가 과정을 수강했습니다. 이때 ‘국내여행안내사’ 자격을 취득했죠.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녀 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부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몇몇 분들과 의기투합해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50+여행공감 협동조합’입니다.”

‘50+여행공감 협동조합’은 어떤 곳이었고, 설립하면서 어떤 일들을 하셨고, 도움을 받게 되셨나요.
“‘50+여행공감 협동조합’은 서부캠퍼스에 개설된 ‘도시해설가 과정 3기생’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협동조합입니다. ‘여행과 체험을 통해 50플러스(+) 세대의 일터이자 놀이터가 되는 것’을 모토로 했습니다. 해설과 여행을 주관해 수익을 창출하는 조합원들과 여행을 좋아하는 조합원들이 함께 여행하고 체험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저는 조합설립 준비부터 설립 후의 홍보 등 조합운영 실무, 트레킹투어 진행을 담당했었습니다. 협동조합에서는 골목투어, 국내 여행, 트레킹, 문화유산투어, 건축투어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후 지난해 8월 제가 태백산국립공원공단 자연환경해설사로 취업하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에선 나오게 됐죠.”

자연환경해설사로 재취업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여행만큼 걷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 번 다녀왔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협동조합 활동 중 전 트레킹 프로그램으로 북한산이나 인왕산 트레킹을 담당했었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해설사로서 자연과 식생을 좀 더 알아야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회가 닿아 자연환경해설사 자격 취득 강좌를 수강하게 됐고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취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제가 일산에 거주하는데 경기도 고양시에서 자연환경해설사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총 80시간을 수강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그곳에서 공부하다 보니 관련 취업 정보들이 쏟아지더군요. 그 과정에서 이 자격증으로 국립공원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국립공원에 취업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고 안정적으로 탐방객을 맞아 해설을 통해 탐방객과 교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태백산국립공원의 채용공고에 응시해 합격했습니다. 전형 과정은 크게 서류, 해설 시연, 면접으로 진행됐습니다. 서류는 완전 블라인드 채용이라 제 사진은 물론, 나이 등 개인정보는 거의 기재하지 않았고, 주로 자격증 등 업무 능력 관련 정보만 작성하게 돼 있었죠. 이후 시연 및 면접도 직무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새롭게 도전한 일로 인해 어려운 점은 없나요.
“다른 사람들에게 생태 해설, 교육, 생태탐방을 안내하는 일은 전문성을 필요로 합니다. 경험이 중요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적어도 10년은 근무해야 제대로 된 해설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제 1년이 지난 햇병아리 해설사입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채워 나가는 게 어렵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예전에 하셨던 일과 지금 일을 비교해 보면 어떤 점이 가장 다르세요.
“예전에 제가 속했던 세상은 ‘전쟁터’였다면 지금 제가 속한 세상은 ‘햇살 가득한 동산’입니다. 전쟁터에서의 승자는 전리품이 대단하지만 꽃동산에는 들꽃들과 바람 몇 점이 있을 뿐이지요. 꼭 이겨야 할 필요도 없고요. 싸워야 할 대상도 없고 함께 꽃을 바라보고 함께 바람을 느끼려고 오는 탐방객들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재취업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거나 행복한 일이 있다면요.
“자연환경해설사는 주로 주말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현재 저는 주중부부 생활 중입니다. 따로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저의 재취업을 응원해 줬어요. 과거 높은 지위, 바쁜 일정, 경쟁적 태도의 생활보다 배려하고 욕심 없는 생활을 하는 현재의 제 모습을 가족들은 모두 반기고 있습니다. 무엇을 더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요즘이 행복합니다. 지난 수 년 동안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맞게 공부하고 준비해서 이루어 낸 성취이기에 매일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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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중장년들이 여전히 재취업하는 걸 두려워하세요. 그분들에게 꼭 해 주실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주의할 점들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네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공부할 동료를 만드세요. 처음엔 용기가 좀 필요하지만 한발만 내밀어 보세요. 50플러스캠퍼스 같은 곳은 찾아보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아요. 지금부터 살아갈 것으로 철저히 고민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사무 능력에서는 절대로 젊은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계속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더라고요. 항상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그 과정에서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건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지만 그게 곧 자신의 경쟁력이 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예전에 받던 급여 수준은 잊으세요. 신입사원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50대에게 이전만큼의 연봉을 주겠다는 기업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돈만 가지고 재취업에 대해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재취업이 가져다주는 가족의 화목과 안정감, 만족은 돈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자연환경해설사 외에도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지질공원해설사 자격증을 따려고 합니다. 10년쯤 후에는 진정한 전문가가 돼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행과 관련된 분야(여행기획, 여행가이드, 자연해설, 문화해설, 콘텐츠 개발, 사진촬영, 동영상 촬영, 요리연구가, 여행강사 등)의 동호인 그룹 전문가들이 만드는 여행 관련 커뮤니티를 구성해 함께 공부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일거리를 모색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중년의 재취업은 000이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이에요. 그 문을 열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big story]“금융사 임원에서 해설사로, 생각의 틀 바꾸니 가치 보여”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