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장]100세 시대, 불확실한 미래를 제대로 직면하기 위해선 재테크는 물론, 재취업은 필수다. 물질적 만족 외에도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긍지 등을 통해 보다 ‘생명력 있는’ 노후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년의 재취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얼마 전 중소기업 임원이자 퇴직 예정자인 어느 중년 남성을 만났다. 그는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한 퇴직 날짜를 한 달여 남기고 생면부지의 필자를 찾아 왔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블로그에 적힌 필자의 연락처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연락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그간 필자가 접해 왔던 전형적인 중년 퇴직 예정자의 모습이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늘진 인상과 조급함을 드러내는 그의 언사에서 필자는 동년배로서 그분이 처한 상황의 답답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본인의 퇴직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하소연과 함께 대상을 알 수 없는 어떤 분노를 필자에게 표출했다.
부정과 분노, 이 단계를 지나고 상황이 본인 스스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중년 당사자는 주위 환경에 적응하고 타협하게 된다. 퇴직 후 일정한 구직 기간을 거침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는 시기가 그다음의 심리 상태다. 그제야 결국 퇴직 당사자는 주어진 상황을 인식하고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분 또한 예외가 아니리라.
이럴 때 상담자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잘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다. 어설프게 이런저런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부질없다. 퇴사 후 자신을 이끌어 주는 ‘짱짱한’ 인맥이 없다면 어차피 중년 재취업 문제는 단시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주 소통하자며 서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만 확인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떠나는 그의 안쓰러운 뒷모습이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아 필자도 마음이 착잡했다.
신중년, 우리도 힘들다.
우리 사회에 ‘신(新)중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2017년 8월, 정부의 ‘신중년 인생 3모작 기반 구축 계획’ 발표에 따른 것이다. 신중년은 주된 일자리에서 50세를 전후로 퇴직해 재취업 일자리 등에 종사하면서 노동시장 은퇴를 준비 중인 과도기 세대를 말한다. 흔히 5060세대를 일컫는다.
노동시장에서 은퇴해야 하는 연령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던 ‘고령자’나 ‘노인’을 대신해 ‘활력 있는 생활인’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은 정부 정책적 용어다. 50~60대 연령층이 뒷방 늙은이로 남지 말고 취업 시장에 더 머물러 있어 줬으면 하는 정부의 희망 사항도 담고 있다.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 시대에 우리 중년이 고령자나 노인으로 불리는 것을 우리 중년 누구도 원치 않는다.
한 개인에게 일(job)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익히 다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 중년이 노동시장에 머물고 싶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올해 2020년 5월부터 근로자 1000명 이상 규모의 기업에 한해 만 50세 이상 근로자가 퇴직 전 그들에게 일정 시간 이상 재취업 지원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기업이 시행할 것을 법제화했다. 올해가 그 시행 첫해다. 기업에서 직접 진행하든 외부 전문 기관에 위탁하든, 퇴직 예정자에게 재교육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중년의 제2 진로 설정 문제에 관해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 우리 중년의 노동시장 재진입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든 문제가 됐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제도가 법제화돼 강제 규정이 된 것을 필자는 격하게 환영한다.
그러면 우리 중년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단지 나이만의 문제일까.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임원급 인재가 퇴사하면 그 경력으로 재취업할 곳이 있을까. 또는 금융권 어느 은행 지점장 출신의 50~60대 중년이 그 경력으로 어디에서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서울고용노동청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라는 기관에서 중년 재취업 관련 직무를 현장에서 수년간 경험했던 것을 기반으로 내린 필자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매우 부정적이다. 우리 중년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힘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본인 스스로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객관화해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객관적인 자기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사자가 느끼는 것과 시장의 기대치에서 체감하는 감도 차이가 큰 것 같다. 누군가 이것을 ‘나력’이라고 표기했다. 나력은 나를 지칭하는 나(我) 혹은 벌거벗기를 말할 때 쓰는 나(裸)를 뜻한다. 나력이란 곧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명함이나 배경을 제거하고 본인 스스로 노동시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잘 다려진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두른 채 컴퓨터 앞에 앉아 결재서류를 승인하는 것이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아직 많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느끼는 중장년 노동시장의 이해 부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중년은 본인의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 맨몸으로 중년 노동시장의 벌판에 홀로 서 본 경험이 부족하다. 그간 노동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현업에 있을 때는 알기 힘들다. 채용 기업에서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우리 중년이 현업에 있는 동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전국을 뛰어다니며 판로 개척에 나섰던 베테랑 중년은 퇴직 후 관련 분야로 재취업하는 데 난항을 겪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판매망이 전면 개편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차를 몰며 전국 판매처를 다닐 것이 아니라, 직접 컴퓨터를 만져서 오픈마켓 같은 온라인 쇼핑몰 입점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앞당겨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베테랑 중년일 필요는 없다. 신입사원급 연봉을 받고서라도 우리 중년이 그 일에 도전하겠다고 해도 막상 해당 기업은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 나름대로 진입장벽이 단단하다.
기존 직장에서 밀려나 새 직업 혹은 새 직장을 찾아야 하는 우리 신중년은 그 과정에서 서글프다. 격세지감도 느낀다. 이 부분에서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중년은 없다. 앞서 언급한 정부에서 지시하는 퇴직 예정자 재취업 지원 서비스의 골자는 누가 뭐래도 재교육이다. 시대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으니 달리 도리가 없다.
쌓아 온 경력이 바탕이 돼 그 방면으로 수직 이동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좋은 자리란 희소성의 문제가 항상 따르는 법이니 모두에게 그런 행운은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퇴직 후 제2의 직업을 구하려는 대부분 중년은 재교육이 밑거름이 돼 기존에 경험했던 분야와 조금 다른 분야로의 전직(轉職)을 시도하는 것이 업계의 현실적인 조언이다. 하루가 다르게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 그에 맞는 재교육과 입직 전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직업으로 연착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매한 예술 활동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는 한, 그 분야의 장인(匠人)을 꿈꾼다는 건 이제 지난 옛이야기일 뿐이다.
신중년이 다시 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그럼에도 방법은 있다. 하지만 너무 기대는 마시라. 필자에게 할애된 지면이 부족해 여기서 그 해법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면 할애의 범위 내에서 그나마 실행 가능한 차선책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우선 하나는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과신하지 말 것. 하필 몇 년 전부터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퇴직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능력 있고 잘난 중년이 발에 챌 정도로 많다. 우선 겸손하시라. 눈과 귀를 열고 여러 정보를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나머지 하나는 항문 주위 괄약근에 힘을 단단히 주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과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조급한 마음에 섣불리 인터넷 채용 사이트를 먼저 뒤지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채용 관련 취업 포털사이트를 보면서 혼자서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은 다소 효율이 떨어진다.
우선 신중년 전직 지원 전문기관의 전문 컨설턴트를 만나길 권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혹은 노사발전재단의 산하기관인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라는 전문기관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서울에 거주한다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전문 컨설턴트를 우선 만나 보는 것도 좋다. 다행히 모두 무료 서비스다(무료라고 얕보지 마시라).
전직 지원 관련 전문 컨설턴트를 먼저 만나라고 권하는 이유가 있다. 신중년이 퇴사 후 새롭게 자기 일을 찾으려면, 우선 본인 인생 전반에 걸친 생애 설계가 필요하다. 본인의 노력으로 운 좋게 이직에 성공한다고 해도 곧 퇴사하면 또 같은 고민을 해야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밥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적 역량을 객관화해 볼 필요가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이 이런 절차는 본인 스스로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여러 기관의 전문 컨설턴트와 이런저런 상담을 하면서 이미 전직에 성공한 선배들의 사례를 접해 볼 수도 있고, 중년 진로에 있어서 다양한 경로가 있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것저것 떠나서 그전엔 몰랐던 중년 전직 시장의 여러 알짜배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정보가 필요하듯이 중년 재취업도 마찬가지다. 그런 알짜 정보가 바탕이 돼야 이후 본인의 행동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비단 대면 접촉이 아니라도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절차가 그나마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그간 회사에서 일만 한다고 잘 몰라서 그렇지, 신중년 전직 시장도 정부의 관심에 의해 매년 이 분야로 많은 국고가 들어가고 있다. 그만큼 이 시장에도 전문가가 많이 유입됐고 신중년 재취업 관련 프로세스가 많이 진일보했다.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모두 내가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퇴사 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겠지만, 겁먹지 말고 우선 주변 전문기관의 컨설턴트를 여러 명 찾아보자.
어떤 능력 있는 컨설턴트를 만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그건 전적으로 본인의 운에 맡긴다. 내게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려는 부지런하고 의욕 넘치는 중년이라면 이까짓 재취업이니 인생 2모작이니 따위는 우리의 걸림돌이 더는 아니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중년 모두의 건투를 빈다. 아수라발발타.
이진서 소장은…
이 소장은 약 20년간 몇몇 회사에서 전자제품 영업사원을 했다. 40세 초중반에 그 일이 천직은 아니다싶어 명예퇴직 후 중장년 전직 지원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관련 자격증을 따며 각고의 노력 끝에 건설 일용직 취업알선센터 직업상담사로 첫 전직에 성공했다. 이후 2018~2020년 서울고용청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장, 2019년 노사발전재단 장년고용협의체 운영위원, 2019~2020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장년 인턴십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2015년 제3회 등대문학상 소설 부문에 수상하기도 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중년이요? 그냥 버티는 중입니다> 등 다수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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