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현 정부와 다주택자 간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주택자들 사이에서 부동산 증여, 신탁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과연 이 같은 행보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다주택자 ‘증여·신탁 러시’, 이유는
최근 10년간 거래된 수도권 주택 중 무주택자가 매수한 비중은 줄고 다주택자의 증여, 신탁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법원 등기정보광장에서 제공하는 부동산 등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근 10년간 국내 부동산 거래의 트렌드를 담은 ‘법원 등기 데이터를 활용한 국내 부동산 거래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지난 9월 16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 전체 부동산 거래 중 무주택자의 매수 비율은 2013년 41%에서 올해 31%까지 하락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반해 다주택자는 사상 최고 수준의 신탁과 증여를 기록,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보고서는 2017년부터 쏟아진 각종 부동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을 향한 정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더 이상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도구로 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책들이 줄줄이 쏟아진 가운데 올해 ‘7·10 부동산 대책’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7·10 대책은 정부가 지난 6·1 7 대책 발표 이후 30여 일 만에 내놓은 카드로, 다주택자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다주택자들의 부동산 증여, 신탁은 꾸준히 늘었다.

2017년 ‘8·2 대책’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같은 해 8월 서울의 집합건물 신탁은 6589건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11년 4월(486건)과 비교해 13.6배 급증한 것이다. 또 최근 ‘7·10 대책’으로 신탁 및 법인명의 거래의 혜택이 줄고, 다주택자의 부동산 증여까지 규제할 조짐이 보이자 올해 7월 서울 집합건물의 증여는 6456건으로 올라 6년 전인 2013년 9월(330건)보다 19.6배나 급증했다.
다주택자 ‘증여·신탁 러시’, 이유는
이처럼 다주택자들의 증여 건수 증가는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을 인상하자 세 부담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배우자나 자녀 등에게 여분의 주택을 증여하고 있다는 것.

통상 주택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득할 때에 취득세 ▲보유 기간 동안 재산세 및 종부세 ▲매각 등 유상으로 처분 시 양도세 ▲증여 등 무상으로 처분할 때에는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또한 보유 기간 동안 임대를 하게 되면 임대소득세가 과세된다.

이강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재산세 및 종부세는 주택의 시가가 아니라 주택공시가격을 기초로 산정되는데, 종래 주택공시가격은 실제 시세의 약 65% 정도에 불과했지만, 정부는 이를 실제 시세의 70%, 80%로 점차 현실화시켜 왔다”며 “특히 종부세의 경우 공시가격에 추가적으로 공정시가가액비율을 적용하게 되는데, 이 공정시장가액비율이 2020년 90%에서 매년 5%씩 인상될 예정인 만큼 추가적으로 재산세 및 종부세가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산 가치 상승이 예상되거나 실제 시세와 공시가격과의 차이가 있는 부동산의 경우 과세 범위, 공제, 시점 선택의 자유, 대상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사전증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와 재산세 산정에 있어 보유자를 나눔으로써 절세효과를 볼 수 있다.

신탁, 내년에 바뀔 종부세 내역 유의해야
무엇보다 종래 가장 유효한 수단은 신탁이었다. 신탁을 하면 기존 주택의 소유자는 신탁의 위탁자가 되고, 주택의 소유권은 신탁회사로 변경된다. 다만, 주택으로 인하 경제적 효과는 기존 주택의 소유자가 계속 누릴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주택 자체의 공시가격은 동일하지만, 신탁을 통해 기존 주택 소유자가 보유한 주택에서 배제돼 분산 소유의 효과를 얻고, 합산될 주택 전체의 가액을 낮춤으로써 세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얻게 되는 셈”이라며 “이를 통해 얻는 절세효과가 신탁회사에 지급할 신탁 수수료보다 큰 금액이었기에 최근 4~5년간 이런 방식을 통한 종부세 절세 방안이 많이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도 “무엇보다 신탁의 계약 내용으로 자녀들의 삶의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며 “물론 신탁을 하면 신탁으로 인한 절세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유세 걱정과 삶의 걱정거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신탁이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 팀장은 “신탁은 이미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녀세대에게 증여·상속하는 것보다 세대를 건너 손자녀에게 증여·상속해 결국 절세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할 때 더 유용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가 지난 7월 말 세법 개정안 발표를 통해 신탁한 주택에 대해서도 이러한 효과를 얻지 못하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한 만큼, 내년부터는 신탁을 통한 종부세 절세효과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변호사는 “신탁을 하는 경우에는 내년부터 바뀔 종부세 내역에 유의하고, 신탁에 따라 추가될 신탁 수수료, 신탁 등기 등의 부대비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증여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증여세 신고 및 납부를 성실하게 하고, 혹시 주택 이외에 다른 재산을 증여했거나 증여할 계획이라면 10년 합산을 잘 고려해 증여세의 과소 신고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