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림의 앤티크] 커피하우스, 예술·정치의 아지트 되다

(사진_왼쪽부터) 퍼플 잔과 에칭 와인잔과 샴페인잔(아르누보).
스털링 베이스의 화병(아르데코). 흑단 손잡이의 스털링 커피포트(아르누보).
퍼플 크리스털 디너 접시와 샐러드 접시(아르데코). 블랙 오버레이 티잔(아르데코).


[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피어나는 향과 함께 마시는 따뜻한 커피가
제격인 지금이다. 대로변은 물론이고 동네 골목에도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커피집이 한 집 걸러 눈에 띄니, 카페의 범람이고 커피의 천국이다.


중동에서 시작한 커피가 새로운 음료로 폭넓게 확산된 것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솔리만’이라는 터키 대사가 부임한 1669년 이후였다. 당시 사람들은 초콜릿의 쓴맛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차 또한 접하고 있었던 터라 커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짙은 아로마 향을 지닌 검은 음료는 곧 사교계의 총아가 됐다. 17세기는 이국적인 많은 것들이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기였는데, 특히 세 가지 음료인 커피, 초콜릿, 차가 그들의 미각을 매혹시켰다.


유럽 중에서도 영국은 그들의 열악했던 식수 환경의 영향으로 세 가지 새로운 음료에 더욱 열광했다. 그리고 영국의 귀족들은 집에서만 커피를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피하우스’라는 독특한 장소를 만들어 냈다.


[백정림의 앤티크] 커피하우스, 예술·정치의 아지트 되다



(사진_왼쪽부터 시계 방향) 유연한 곡선의 입구를 가진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컴포트(아르누보), 스털링을 압인한 접시와 볼(아르데코), 2단 트레이와 접시(아르데코), 퍼플 톤의 스털링 오버레이 물컵(아르누보), 스털링을 조각해서 장식한 크리스털 저그(아르누보), 스털링을 조각해서 정교하게 장식한 디캔터(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설탕통(아르데코).


1페니 대학의 탄생


하지만 커피하우스라는 이름과는 달리 처음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팔렸던 것은 당시 영국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중국에서 들여온 차였다. 1630년대에 중국의 차가 영국에 소개된 이래 대중에게 처음으로 찻잎과 차를 판매한 곳은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개러웨이’다.


토머스 개러웨이는 스튜어트 왕가에 차를 납품하고 있었는데, 1650년 옥스퍼드에 커피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커피와 담배를 주로 파는 상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역시 수입품인 차와 코코아도 함께 팔기 시작하면서 더욱 호황을 이루게 됐다. 커피하우스는 12년 동안 80개 이상으로 늘어나 17세기 말에는 500개에 이르렀다. 귀족과 지성인들이 몰려들어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대화의 장을 마련했고, 해외 무역상들은 이곳에서 정보를 교환했다.


1페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기에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이라고도 불렸다. 왕립과학원, 런던의 로이드 보험회사, 주식거래소와 같은 유수한 기관들이 1페니 대학이었던 커피하우스의 토론에서 출발해 탄생했다.


커피하우스 열풍은 파리에서 더 거세었다. 영국에 이어 1680년에는 이탈리아 출신 프란시스코에 의해 커피하우스가 프랑스 파리에도 생겨났다. 프란시스코는 커피하우스를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치장했다.


벽에는 커다란 거울들을 붙이고, 천장은 샹들리에로,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장식했다. 계몽시대를 이끌었던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그곳을 즐겨 찾았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1723년에는 파리에만 380곳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나 파리는 카페의 천국이 됐다.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정담을 나누며 체스를 즐기는 모습은 18세기의 흔한 풍경이었다. 계몽주의가 풍미했던 18세기 말에 커피하우스와 예술, 그리고 정치는 떼어놓을 수 없는 짝이 됐다. 1792년 프랑스혁명 당시 극진파와 온건 공화파가 유명한 정치적 결연을 맺은 곳도 커피하우스에서였다.


19세기 말은 우아한 아르누보 시대였다. 카페 주인들은 실내를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부드러운 선과 동양적인 분위기를 함께 뽐내는 아르누보의 흐름에 맞춰 실내장식을 했다. 이러한 파리의 카페는 아무나 드나들 수 없었는데 정장과 모자, 지팡이의 말쑥한 옷차림이 기본적인 입장 자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인기 있는 예술가나 가난한 예술가나 모두 카페를 드나들었다. 예술가들은 카페를 작업실로 삼거나 모델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들은 비좁은 작업실 대신에 역동적인 삶이 있는 카페에서 창작의 영감을 받았다.


예술의 세계는 가시밭길이었고 생활은 늘 궁핍했기에 음침한 작업실이 아닌 화려한 카페에서의 만남은 그들에게 일상의 탈출구 역할을 해 주었다. 몽마르트를 주된 무대로 삼았던 인상주의파 화가들은 카페 ‘게르브아’에 주로 모였다. 에드가르 드가,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등 많은 작가들이 카페와 관련된 작품을 남겼다.


오래된 찻잔이 주는 위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커피 한 잔인 일상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이 좋은 계절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커피전문점이 아닌 집에서 즐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9월, 카페 하면 떠오르는 소곤거리는 대화와 눈 맞춤을 우리 집 거실의 예쁜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작해 보자. 여행지에서의 전리품으로 귀하게 모셔 두었던 잔도 좋고, 친정 엄마가 혼수로 해 주셨던 오래된 찻잔도 좋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두툼한 라인을 자랑하는 넉넉한 머그잔이면 어떠하랴. 올 한 해 유례없는 코로나19로, 또 유달리 긴 장마로 우리의 심신이 지쳐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 편한 우리 집 거실에서의 커피 한 잔으로 토닥토닥 위로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코로나19 걱정 없이 가을의 낭만과 커피 향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우리 집 거실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유수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는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할 시간이 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니….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