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김기남·이승재 기자] 요즘 한국을 상징하는 알파벳 ‘K’를 붙이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해진다. 국내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K팝은 이미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고, K뷰티 또한 세계인들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K푸드도 마찬가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두 유 노우 김치?’로 시작했건만, 지금은 불고기와 비빔밥은 물론,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불닭볶음면을 김치에 말아먹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K디저트의 차례다. 사실 한국의 전통 디저트는 우리들에게도 낯선 감이 있지만, 알고 보면 꽤나 매혹적인 간식들이 즐비하다. 우리네 선조들이 즐겼던 주전부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K디저트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김씨부인 김명숙
“사시사철 다양한 한국 디저트의 기품 담았죠”
카페 이름이 참으로 직관적이다. ‘김씨부인’의 김명숙 대표는 성이 ‘김씨’고, 또 누군가의 ‘부인’이다. 아마 가족을 잘 먹이기 위한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최상급의 재료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빚는 김씨부인의 디저트들은 우아하다는 감탄사가 나온다. 음식을 어떻게 담는지도 중요하다는 김 대표의 철학이 묻어난 플레이팅 덕분이다.
한식 디저트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친정어머니께서 제가 어렸을 때 떡을 간식으로 많이 해 주셨어요. 이런 좋은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다가, 나이가 50 중반을 넘어서니 제가 가족들에게 직접 해 주고 간식들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의 모습들을 기반으로 집에서 떡을 직접 만들었는데, 뭔가 전문적으로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연히 친구와 함께 방문했던 최순자 명인의 작업실에 갔다가 떡을 만드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꾸준히 떡과 폐백, 이바지 음식 등을 배웠죠. 그러고 나니 친구들에게도 가르쳐 주게 됐고요.”
배움에 이어 가르치는 단계까지 가셨군요.
“아무래도 제 실력으로 친구들을 가르쳐 주는 데 한계가 있어서 조금 더 공부하고 싶었어요. 떡과 관련된 책을 읽던 중 ‘연희떡사랑’의 서명환 선생님이 지으신 책을 봤는데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고 떡을 몰라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잘 저술돼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그럴 용기도 없지만, 직접 찾아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후 무작정 전화해서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저의 첫 스승은 최순자 명인이시지만, 서명환 선생님께는 재료 본연의 맛을 낼 수 있는 법을 배웠죠.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김씨부인의 인테리어나 플레이팅에 대해 많이 논의했어요.“
김씨부인의 내부를 보고, 인테리어에 굉장히 신경 쓰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 선생님께서 김씨부인의 모든 컨설팅을 해 주신 셈이죠. 인테리어 소품들 중에는 제가 직접 집에서 가져온 것들도 있지만, 소반이나 상, 백자들은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작가님들이 작품들을 가져 오기도 했어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하셨는데,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친구들 대부분은 저보고 별종이라고 했어요. 그 나이에 부엌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왜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냐고요.(웃음) 가족들도 달갑게 여기진 않았어요. 하지만 서 선생님의 조언이 큰 힘이 됐습니다. 저에게 ‘혼자만 알고 있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저로 인해 한식 디저트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라셨어요. 특히 제가 선생님께서 플레이팅을 해 주실 때마다 받았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어요.”
소반 차림의 플레이팅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음식을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담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로써 한식 디저트만의 단아하고 우아한 면들이 더 부각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사시사철이 뚜렷하고, 제철 과일이 다양하기 때문에 소반 차림은 계절마다 구성을 조금씩 다르게 해요. 개성주악처럼 고정으로 나가는 것도 있지만, 떡의 경우 여름에는 증편을, 봄에는 진달래 화전을 넣습니다. 가을 상은 가장 풍요로워요. 햇과실을 두둑이 넣고 찐 떡인 신과병과 곶감단자를 넣는데, 계절이 지나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 편이에요.”
개성주악은 무엇인가요.
“찹쌀가루와 밀가루를 막걸리에 되직하게 반죽한 다음 기름에 지져낸 떡으로, 김씨부인의 대표적인 메뉴입니다. 개성지방에서 귀한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거나 큰 잔치를 할 때 빠짐없이 들어갔던 떡으로, 오히려 좋은 자리에 개성주악이 없으면 실례일 정도였다고 해요.”
외국 사람들도 김씨부인의 디저트를 신기하게 볼 것 같아요.
“김씨부인을 방문하는 손님들 25~30%는 일본인이었는데, 한 블로거의 글을 보고 왔다고 많이 말씀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일본에서 신뢰도가 높은 저명한 블로거였어요. 2018년 일본에서 전시할 때도 그분이 직접 찾아와서 저희 매장에서 받았던 감동적인 한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고유의 디저트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표님이 그리는 김씨부인의 미래는 무엇인가요.
“한국도 고유의 디저트를 기품 있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어떤 분이 조카의 생일 선물로 화전과 개성주악을 예쁘게 포장해서 가셨는데 인상 깊었어요. 사실 마카롱은 아무리 비싸도 거리낌 없이 사 먹는데, 그보다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한식 디저트 역시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음식을 만들 때 정석대로, 정성을 들여요. 이런 보이지 않는 정성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정이 넘치는 집 황인택
“외국인 입맛 사로잡을 한과의 시대 준비됐다”
젊은 전통. ‘강정이 넘치는 집’의 수장인 황인택 대표의 슬로건이다. 전통의 창의적인 해석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황 대표는 오히려 기본에 더 파고들었다. 좋은 재료를 위해서라면 해남 땅끝마을까지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만드는 사람의 건강이 음식에 반영된다는 생각에 보디 프로필을 촬영하기도 했다. 황 대표의 다음 목표는 ‘강정연구소’라는 공간 플랫폼이다.
‘강정이 넘치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강정으로 시작하셨죠.
“아버지께서 강정을 만드셨어요. 명절처럼 바쁜 시기에는 아버지를 도와드렸는데, 강정과 한과에서 기회가 보이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한과를 제대로 다루는 브랜드가 없었기도 했고요. 그래서 17년 전, 노점상에서 강정을 만들며 팔기 시작했어요.”
어떤 점이 기회로 보이셨나요.
“일단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거라서 익숙했고요, 강정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한과 시장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도 높지 않았고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할 때는 제품이 바로바로 만들어지고, 또 직관적으로 손님들에게 응대와 피드백이 이루어지다 보니 경험이 축적되고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느꼈어요.”
강정을 만드는 게 어려울 줄 알았어요.
“실질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건 쉬워요. 하지만 완성된 강정을 만드는 건 하면 할수록 어렵죠. 레시피에 따라 형태는 그럴듯하게 나와도 식감이 딱딱해지는 경우가 있고 소스에 따라 맛이나 식감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특히 강정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요. 길거리에서 강정을 팔면서 힘든 점이, 여름에는 금방 습기를 먹어 눅눅해지고, 겨울에는 강정을 만드는 도중에 굳어 버리는 것이었죠. 힘들었지만 매순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한과의 젊은 전통을 이어가신다고요.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해석력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전통을 해석해서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으로 이끌고 가려면 전통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저희는 강정으로 시작했지만, 기본적으로 전통 한과들은 다 만들 줄 알아요. 셰프들도 이에 숙련이 되니 각자의 세계관이 나오고요. 전통 한과를 해석하고 싶어 하고,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하고, 또 이걸 새로운 디저트로 손님들께 선보이고 싶어 하는 거죠.”
뉴트로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10년 전이랑 비교하면 한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오긴 했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어요. 그래놀라나 주악, 약과와 같은 젊은 층을 겨냥한 한과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브랜드와 전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죠.”
에너지바도 색다르다고 느꼈어요.
“전통이 고루하고 옛것에만 머물지 않길 바랐어요. 그 전통이 일상에 스며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에는 열정도 넘쳤기 때문에 고심 끝에 에너지바를 만들었죠. 저희는 레시피를 독창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요. 한과에 초콜릿을 활용한다든가, 식감을 살리기 위해 오븐에 굽는다든가, 강정의 텁텁함을 없애기 위해 조청에 메이플 시럽을 첨가하는 식으로요.”
한과 재료들은 어디서 구하나요.
“저희 크루들과 함께 좋은 재료를 늘 검색하고 찾아다녀요. 해남에는 꿀청 무화과가 유명한데, 그 대표님을 직접 찾아가 재료를 공수한 다음 ‘1% 꿀청 무화과 초코강정’을 만들었죠. 또 의령에는 시골아재의 곶감 말랭이가 유명해요. 곶감을 감식초에 절여서 좋은 유산균이 나온다고 해요. 이 재료를 또 직접 가져와서 곶감 말랭이를 만들기도 했죠.”
크루들과 돈독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와 크루들의 관계를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로 두고 싶진 않아요. 크루들도 주체성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고, 물론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성취욕과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어요. 저도 그만큼 팀원들에게 투자하고 있고, 고민도 잘 들어주고 있고요.”
검색하다 보니 보디 프로필 촬영도 하셨더라고요.
“제가 먼저 제안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보디 프로필을 촬영해 봤는데 그 성취감과 자신감이 남다르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강정을 만들 때 체력이 가장 중요하기도 해요. 만드는 사람의 컨디션과 정서가 제품에 반영된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10주 동안 같이 보디 프로필 촬영을 준비했고, 본인들도 변화를 느끼니까 촬영 후에는 대회를 준비하는 팀원들도 생겼어요.”
한과가 외국인의 입맛도 사로잡을까요.
“2018년에는 도쿄 다이칸야마에서, 그리고 2019년에는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과 뉴욕 정식 레스토랑에서 한식 디저트를 소개하는 ‘스윗 서울’에 참가했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한과의 맛과 식감을 좋아하고, 또 건강에도 좋으니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약과와 같은 한 입 디저트가 인기가 많았고 특히 깨말이 강정을 좋아하더라고요. 후에 파티 자리에서 칵테일을 먹고 제가 기분이 좋아서 ‘방탄소년단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쳤으니, 이제 뭔가 한과의 시대가 준비된 것 같다’는 멘트를 했어요. 모든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 K디저트의 시대가 열리고 앞으로 더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그리는 ‘강정이 넘치는 집’의 미래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단순히 전통식으로 만들어서 보여 주는 것도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희는 좋은 퀄리티의 한과 기준을 좋은 공간에서 보여 주는 게 목표예요. 공간 비즈니스로 확장된다고 볼 수 있죠. 손님들이 오면 견과류와 소스를 바로 골라서 잘라서 구워지는 과정까지 모든 공정을 볼 수 있는 강정연구소가 구상 중인 다음 플랫폼이에요. 이렇게 함으로써 한과도 신선하고 특별할 수 있고, 건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한과의 근본 자체가 ‘음식은 약이다’이기 때문에 더 본질에 접근하는 셈이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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