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김종훈 자동차 칼럼니스트 | 사진 각 사 제공]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날 때면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단지 떠난다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자동차로 가든 즐겁겠지만, 모험 본능을 일깨우는 차라면 조금 더 들뜰지 모른다.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면 더욱.

일상 탈출, 산으로 들로


햇빛은 찬란하고 녹음은 짙어간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이왕이면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자연으로 관심이 쏠린다. 사실 뭘 타고 가도 갈 수 있다. 이제는 자연과 가까운 곳인데 길도 좋고 제반시설도 탄탄하다.

전국에 즐비한 오토캠핑장은 세단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용기를 내 본다. 자연으로 한 발 더 들어가는 용기. 그렇다면 합당한 도구가 필요하다. 산으로 들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자동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성시대지만 그 중심은 도심형 SUV가 차지한다. 산으로 들로 거침없이 나아가기엔 조심스럽다.

한 발 더 용기 내게 하는 자동차는 따로 있다. 도심형 SUV가 세를 불려도 여전히 자기 정체성을 고수하는 모델이다. 정제되지 않은 자연이 펼쳐놓은 길을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품었다. 그에 합당한 외관도 볼거리다. 합당한 옷이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하듯 자연과 어울리는 자동차는 감흥을 증폭시킨다. 지극히 감정적이지만 그게 또 즐거움이다.

도구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연으로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자동차를 타면 없던 용기도 생길지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즐거움이 숨겨져 있을지도. 앞으로 나올 석 대라면 충분히 즐기게 할 거다. 그런 목적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모델들이니까.

일상 탈출, 산으로 들로

jeep wracler rubicon

더욱 깊숙한 자연으로, 지프 랭글러 루비콘

자연으로 깊숙하게 들어갈 때 탈 자동차 딱 한 대. 열에 아홉, 아마 지프 랭글러를 꼽을 거다. 어쩔 수 없다. 지프 랭글러는 험로 달리는 자동차의 대명사 격이니까. 브랜드명이 하나의 대명사로서 통용되니 어련할까.

어릴 때 군용 자동차를 보고 ‘지프차’라고할 때 그 지프. SUV라는 단어가 쓰이기 전에 이미 SUV로서 존재하고 활동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표현은 지프 랭글러에 알맞은 수사다. 특히 지프 랭글러, 그 안에서도 루비콘은 전장을 누비며 쌓인 험로 주파력을 온전히 담은 모델이다. 지프 랭글러 중에서도 가장 고집스러우면서 또 순수하달까. 시대가 변해 가며 편의성 앞세운 도심형 SUV와는 걸어 온 길이 다르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은 여전히 야성을 간직한다. 세대 바뀌면서 편해지긴 했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것투성이다.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문 듯한 불편함. 하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헐렁하게 느껴지는 조향 감각, 낭창거리는 하체 성격, 이곳저곳 투박한 질감은 모두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험로 주파력을 높여 주는 요소들이다.

낯설기에 불편하지만, 낯설기에 특별하다. 도심이 아닌 자연으로 배경이 바뀌면 이 특별함은 막강한 능력으로 바뀐다. 그동안 투덜거린 단점이 180도 뒤바뀐다. 자연스레 자연으로 용기 내 들어가고 싶게 한 달까. 모험 본능을 일깨운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은 자연의 불규칙성을 만나면 본색을 드러낸다. 지극히 편해지면서 막강한 능력을 발휘한다. 바위를 즈려밟고 나아가는 ‘록 크롤링’이 지프 랭글러를 즐기는 대표 코스로 통한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험로는 산책하듯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자동차라면 자연 언저리에서 서성거릴 때, 지프 랭글러 루비콘은 크게 한 발 더 들어간다. 이 차이는 크다. 여행에 모험까지 품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이. 지프 랭글러 루비콘은 여행과 모험 사이를 넘나들며 운전자를 자극한다. 이런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달라도 분명히 다를 거다.

일상 탈출, 산으로 들로
landrover discovery

호령하듯 달리는 쾌감,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미국에 지프가 있다면 영국에는 랜드로버가 있다. 둘은 시작도 비슷하다. 전쟁을 배경으로 태어나 험로를 중심으로 자동차를 바라본다. 성향이 비슷해도 둘은 명확하게 다른 길을 간다. 랜드로버는 무엇보다 고급스러움을 지향한다. 랜드로버는 기함인 레인지로버를 통해 귀족 같은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고급 SUV가 통한다는 걸 알았다.

디스커버리는 레인지로버에서 고급스러움을 덜어 내고 보다 오프로드에 집중한 모델이다. 이름도 ‘발견’ 아닌가. 발견하려면 험로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니까. 그렇다고 디스커버리 가격이 낮진 않다. 단지 레인지로버보다 덜어 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고급스러우면서 험로에 집중한 SUV. 그에 맞춰 외관도 철판을 툭툭 접어 만든 듯했다. 외관과 크기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하다.

1989년 출시한 1세대 디스커버리는 이제 5세대까지 나왔다. 그 사이, SUV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용하는 용도가 달라졌다. 디스커버리 역시 험로만을 바라보진 않는다. 도심에서 달릴 때를 고려한 배려심도 키웠다. 외관도 매끈한 미래적 디자인을 채용했다. 랜드로버의 패밀리 룩이다. 그렇다고 디스커버리다운 성격이 사라지진 않았다. 레인지로버보다 높고 넓은 형태는 여전히 위압적이다. 껑충, 올라온 시트에 앉아 운전대를 잡으면 도로를 호령하듯 달릴 수 있다. 시야가 높고 넓다. 외관은 유해졌지만 오프로드 실력은 더욱 출중해졌다.

랜드로버의 자랑인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terrain response)은 숫자 2가 붙은 만큼 더욱 똑똑해졌다. 다양한 지형 상황 아이콘에 맞춰 다이얼만 돌리면 된다. 모래, 눈길, 바윗길, 진흙 등 다양한 험로에 자동차가 알아서 대응한다. 이런 편안함. 랜드로버가 지프와 방향성이 다르다는 증거다. 디스커버리는 무지막지한 공간과 쓰기 편하면서 강력한 험로 주파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왠지 한 대 있으면 두루두루 믿음직스럽다. 동물 다큐멘터리에 꼭 디스커버리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이름에서 오는 후광은 여전하다. 도심형 SUV답게 매만졌더라도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상 탈출, 산으로 들로
CHEVROLET COLORADO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쉐보레 콜로라도

미국은 픽업트럭의 나라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건비가 비싼 특성상 어지간한 문제는 DIY(Do It Yourself)로 고친다. 그러려면 이것저것 많이 실리는 자동차가 필요하다. 더불어 가족이 함께 탈 패밀리카 역할도 해야 한다. 픽업트럭은 이런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

게다가 기름값이 싸기에 고배기량 가솔린 엔진을 품을 수 있다. 육중한 덩치를 풍성한 출력으로 밀어붙이는 픽업트럭의 성격이 형성된 이유다. 이런 픽업트럭에 꼭 수리 장비만 싣고 다닐 리 없다. 거대한 땅에 걸맞은 풍요로운 자연을 즐길 레저 장비를 실어도 무방하다. 실제로 그런 용도로도 사용한다. 그렇게 픽업트럭은 미국에서 전천후 자동차로 자리매김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통로로서.

쉐보레 콜로라도는 미국 전통 중형 픽업트럭이다. 국내에 픽업트럭이라면 쌍용 코란도 스포츠뿐이었다. 진짜가 나타난 셈이다. 픽업트럭을 단순히 적재함이 따로 있는 자동차로만 볼 수 없다. 진짜는 달랐다. 적재함에 공들인 티가 났다. 적재함을 편하게 사용하게 하는 각종 편의장치는 픽업트럭을 만들어 온 관록이 느껴진다.

또한 콜로라도는 험로 주파력도 뛰어나다. 정통 오프로더의 특징인 프레임 보디로 골격을 만들고, 기계식 디퍼렌션 잠금장치로 험로에서 구동력을 극대화했다. 험로에서 차를 거칠게 몰아도 힘겨워하는 기색이 없다. 골격은 튼튼하고 하체는 탄탄하다.

넉넉한 적재 공간뿐 아니라 견인력도 출중하다. 초대형 카라반도 문제없이 끌고, 안정적으로 견인할 편의장치도 탑재했다. 그런 점에서 콜로라도는 단지 적재함이 있다고 다 픽업트럭이 아니라고 웅변한다. 거대한 대지를 누빌 정통 픽업트럭이라면 이 정도는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자신감이랄까. 다양한 능력은 곧 콜로라도가 다재다능하다는 증거다.

콜로라도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은 다채롭다. 적재함은 1170리터다. 공간은 곧 가능성을 뜻한다. 다양한 레저를 품을 가능성. 차량 지붕에 텐트를 얹고 적재함에 장비를 실으면 풍요로움은 극대화된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흥미로울까. 콜로라도는 산으로, 들로 가능성을 확장한다.


김종훈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남성 잡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서 자동차를 담당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그에 파생된 문화에 관해 글을 써 왔다. 2017년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후에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양쪽을 오가며 글을 쓴다. 현재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아레나 옴므 플러스>, <모터 트렌드> 등 다수 매체에 자동차 & 모터사이클 관련 글을 기고한다. 엔진 달린 기계로 여행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