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두민

Real to Virtual Transition, 캔버스에 유채, 60×60cm, 2020년
Real to Virtual Transition, 캔버스에 유채, 60×60cm, 2020년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이미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린 그림이 고가에 판매되고, ‘인공지능 예술(AI art)’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민 작가 역시 AI와 협업한 것을 계기로 AI를 이용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미술 영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상에 대한 발 빠른 적응이다.


2016년 3월 9일, 세계의 모든 이목은 서울에 쏠렸다. 최고의 바둑 AI 프로그램 구글의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 때문이었다. 결과는 4승 1패로 알파고의 완승.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기계의 등장, 설마 했던 상상이 현실이 됐다. 2019년 12월 18일, 이세돌은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라는 수식어답게 은퇴대국 상대로 네이버 AI 바둑기사 ‘한돌’을 택했다.


2019년 10월 15일, 국내 미술계에서도 AI를 상대한 작가가 나타났다. 일명 ‘주사위 작가’로 이름난 두민이 주인공이다. 독도를 소재로 AI와 협업한 작품은 다. 제목대로 AI와 교감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그림 중앙을 기준으로 위쪽은 두민 작가가, 아래쪽은 AI가 작업했다. 위아래가 교차하는 경계 부분은 작가가 마무리한 데칼코마니 형식이다. 원래 예술과 기술은 한 몸에서 나왔다. 최근엔 기존의 기술적 진보와 차별화된 AI의 ‘딥러닝(deep learning)’ 심층학습 프로그램으로 예술가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AI와 협업한 1호 화가답게 두민 작가의 그림은 디지털적인 시각이미지로 구성됐다. 상하좌우 대칭을 이루거나, 무한대로 확장 혹은 확산되는 현상을 시각화했다. 특히 작품 제목에도 작가의 관심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잘 나타난다. 올해의 은 ‘실제에서 가상으로의 전환’을 말한다면, 2019년과 2018년의 는 ‘판타지의 경계’를 전한다. 가상이든 공상이든 간에 ‘현실을 벗어난 환영(幻影)’의 메시지로 통한다. 그보다 훨씬 앞선 2010년대 초반 나, 주사위 작업 초기인 2008년 전후 의 작품 제목 역시 ‘순간의 욕망을 좇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작품에 담아냈다.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두 작가의 작품은 욕망의 힘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역설하는 듯하다. 욕망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과연 욕망(欲望)이란 욕구(欲求)가 인간적 삶의 의미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적당한 욕망은 삶의 활력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우리를 발전시키고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아닐까.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갈증에 뿌리를 내린 욕망이란 덫은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떠안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두 작가의 그림엔 현재 우리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 삶의 이야기가 투영돼 있다. 작품 속 형상은 극사실적인 표현으로 출발하지만, 단순한 대상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지극히 은유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경계’를 통해 무한한 사유의 확장을 보여 주려는 의도도 담겼다. 특히 작품 속에 서로 대칭을 이룬 데칼코마니(decalcomanie) 표현 기법은 삶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는 대목이기도 하다.

The Boundary of Fantasy, 캔버스에 유채, 145×76cm, 2018년
The Boundary of Fantasy, 캔버스에 유채, 145×76cm, 2018년

Real to Virtual Transition, 캔버스에 유채, 90×180cm, 2020년
Real to Virtual Transition, 캔버스에 유채, 90×180cm, 2020년

“2009년 첫 개인전 때 한 중년 남성이 ‘어떠한 상황에서 결정을 못해 방황하고 있었는데, 작품을 보고 나서야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주사위와 카지노 칩을 그리기 시작한 때였다. 방황하던 나의 불안정한 감정을 담았던 작품 의도를 꿰뚫어 본 듯해 놀랐다. 단순히 삶을 영위하기 위해 12년 입시강사 생활을 전전하던 차에 용기를 내어 작가로서의 새로운 꿈에 도전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 도전은 뚜렷한 확신보다 모험이었다. 카지노에서 돈을 대신한 칩처럼, ‘작가’라는 환영 속 기대감에 운명적 삶의 희망을 걸었다.”


두민에게 주사위는 단순한 정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긍정적 욕망의 결정체이자 열정’을 나타내는 은유적 대상이다. 사람은 경계 속에서 살아간다. 매사에 갈림길의 기로에서 ‘결정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사위를 닮은 삶이다. 주사위는 스스로 행운의 숫자 ‘7’을 만들지는 못한다. 제 몸을 이리저리 굴려도 소용없다. 정반대 맞은편의 숫자와 만나야만 ‘7’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을 그는 색채로 표현한다. 블랙과 레드의 조합이다. 우선 레드는 자신의 운명을 좇는 열정을 표현한다면, 블랙은 불확실한 삶의 그림자로 볼 만하다. 단 두 가지의 색깔로 삶의 가치와 경계를 교묘하게 낚아챘다. 여기에 탁월한 극사실 표현 기법이 한몫한다. 2차원적인 평면회화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할 만한 테크닉을 지녔다. 특히 마무리 단계에 사용한 표면 처리 방법은 탁월한 선택이다. 페인팅이 끝나면 표면에 매트 바니시를 칠한 후 주사위 부분을 위주로 크리스털 레진 원액을 덮어 코팅한다.


이처럼 두 작가의 그림은 기본적인 페인팅 기법에 코팅 과정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로 삼은 ‘삶의 이중성―실재와 허상의 양면성’을 효과적으로 잘 보여 준다.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하게 되는 일루전(illusion) 기법의 성공적인 모델인 셈이다. 여기에 최근엔 영상미디어와 AI 기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까지 접목해 표현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인생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초기에 가지런히 쌓여 있던 경직된 주사위는 수면 위로 튀어 올라 생동감을 뿜어냈고, 이젠 사방으로 분열하며 새로운 확장과 파장의 에너지를 선사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두민의 작품은 전시가 기준 100호(약 162×130cm) 크기에 대략 2000만 원 선이며, 10여 년 전에 비해 2.5배 정도 올랐다. 참고로 지난해에 AI 화가와 협업했던 독도 소재의 40호(60×120cm) 크기 유화 작품 가 크라우드펀딩으로 5000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AI와 협업한 1호 화가…상상의 경계 확장

김윤섭 소장은…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9 안양국제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20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