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률 항우연 달 탐사 사업단장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독자적인 기술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건 실로 위대한 일이다. 설령 그것이 다른 개척자들에 의해 선행됐어도 말이다. 우리나라 달 탐사는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우주 강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해내겠다는 의지와 가능성만큼은 창공의 달만큼 드높다. 그 정점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달 탐사 사업단장, 이상률 박사가 있다.


[Special] “달 궤도선 성공하면 국제 위상 바뀔 것”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의 달 탐사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이상률 박사는 터줏대감과도 같은 존재다. 1986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지금의 한국천문연구원)에 입사했고, 1989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우주 파트와 김해 기계연구소의 항공 파트가 합쳐져 항우연이 설립되면서, 이 박사는 자연스레 항우연에 몸담게 됐다. 게다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달 탐사 사업에 몸 담고 지켜봐 온 그는 명실상부 국내 우주 개발과 달 탐사 분야의 권위자다. 원래 그는 비행기나 전투기를 연구하는 항공과를 전공했지만, 고도는 점차 높아져 발사체와 인공위성을 넘어 달 궤도선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달에 대한 열망도 커져 갔다.


우리나라는 달 탐사를 왜 시작했나요.
“2007년 정부가 발행한 ‘우주개발사업 세부 실천 로드맵’에 처음으로 달 탐사에 대해 명시됐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향 없이 2020년까지 달 탐사 위성(궤도선) 1호, 2025년까지 달 탐사 위성(착륙선) 2호를 개발한다는 조항만 있었어요. 저도 이 로드맵을 만드는 데 멤버로 참여했지만, 발행되고 나서야 달 탐사와 관련된 항목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죠.”


뒤늦게 달 탐사를 시작한다는 걸 아셨으니 당황하셨겠어요.
“사실 달 탐사가 추가된 이유는 아무도 몰라요. 개인적으로 2007년이라는 해를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카구야, 중국에서는 창어라는 달 궤도선을 각각 쏘아 올렸거든요. 우리나라도 이에 자극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2008년도 8월에 한국연구재단에서 달 탐사 계획을 발표했지만, 공식적으로 달 탐사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6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 달 탐사의 역사가 매우 짧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하지만 제게 있어선 1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났으니, 온도차가 있다고 봐야죠.”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1989년 개발에 들어가 1992년 발사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시작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의 아무 기술도 없는 황무지와 같았죠. 우주 개발 분야는 인공위성, 발사체 개발, 우주 활용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우리나라가 잘하는 인공위성만 두고 봤을 때는 선진국 수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80% 이상 따라가고 있고, 특히 시스템적으로는 90% 이상 근접했다고 봐요. 다만 우리나라에는 우주산업체가 제한돼 있다 보니, 우주와 관련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별로 없어요. 결국 전체적으로 우주 개발 분야를 봤을 땐 선진국 수준의 80~90%보다는 낮은 위치에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계획보다 19개월 늦춰진, 2022년 7월에 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 KPLO)을 발사하기로 했죠. 예산도 늘어났고요.
“지난해 9월, 달 궤도선 발사 일정이 19개월로 연장되기 이전에 2017년 8월에도 24개월 연장된 적이 있어요. 2016년, 본격적으로 달 탐사 사업을 시작할 때 2018년 말 발사하는 3년 계획으로 실행했는데 처음부터 무리가 있는 일정이었죠. 통상적으로 기간이 연장되고 예상이 증액되면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시간과 금액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차질 없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라고 할까요. 다행히 지난해 11월, 제가 달 탐사 사업단을 맡고 나서는 어느 정도 급한 불은 꺼 놓은 상태라 한시름 놓고 있습니다.”


[Special] “달 궤도선 성공하면 국제 위상 바뀔 것”
달에 진입하는 방식도 변경됐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지구와 함께 공전한 뒤 달에 점차적으로 가까워지는 단계적 루프 트랜스퍼(PLT) 방식에서 달 궤도 전이방식(BLT)으로 변경했습니다. 달 탄도 전이 비행이라고도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말로 마땅한 단어는 없습니다. BLT를 대신해서, 영어로 WSB(Weak Stability Boun- dary)라는 용어도 잘 사용하는데, 여기 경계(boundary)라는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태양과 지구가 미치는 중력의 힘이 동일한 경계까지 궤도선을 발사한 다음, 달이 이끄는 중력에 따라 달의 공전궤도로 진입하는 것이죠. 직접적으로 달을 향해 쏘아 올리는 것보다 에너지가 훨씬 절감돼요. 그 경계가 태양과 지구 거리의 100분의 1, 즉 150만 km 정도 됩니다. 지구와 달의 거리가 38만 km인 것에 비하면 4배 정도 더 멀리 날아가는 셈입니다.”


달 궤도선을 발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나요.
“그렇죠. 무엇이든 처음이란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별 1호도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어요. 50kg에 불과한 위성이고 우리가 직접 만든 게 아닌, 100% 외국이 제공한 기술로 제작됐기 때문에 무슨 의미가 있냐며 비난이 받았죠. 하지만 결국엔 첫 위성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했어요. 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첫 궤도선이라는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설계하고 우리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달 궤도선이 성공하고 나면 우리나라도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려면 굉장히 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달 궤도선은 무게가 678kg 정도밖에 안 되는데, 사람이 탄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지거든요. 우리나라는 유인 우주선 개발 기술이 전무하고, 2008년도에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갔다 온 것이 전부입니다. 상당 기간 동안 국제 협력을 통해 다른 나라의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오는 건 몰라도,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유인탐사선을 만드는 건 단기간 내에는 힘들 듯해요. 2040년, 2050년까지도 그런 계획은 잡히지 않았고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지나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우주 강대국들이 달에 다시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달에 어떤 가치가 있기에 달을 돌아보게 되는 건가요.
“정답은 없고, 일부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과거 미국과 구소련이 달을 가지고 경쟁한 것은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달에 가고, 달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국가 위상은 올라가지만 다른 가치들도 훨씬 많습니다. 먼저, 자원을 들 수 있어요. 2007년도 중국은 자원 때문에 달에 간다고 선언했어요. 달에는 헬륨-3라는 원소가 있고, 소량으로도 지구 전체에서 1년 동안 쓰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헬륨-3로 발전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자원적인 측면이 강했죠. 미국은 자원보다는 물에 집중했습니다. 1998년도 미국이 발사한 루나 프로스펙터(Lunar Prospector)라는 탐사선이 달 극지방에 수소 원소의 농도가 높다는 것을 밝혔어요. 달에 물이 있으면 식수로 활용할 수 있는 건 물론, 전기분해해서 산소도 얻을 수 있고 로켓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죠.”


[Special] “달 궤도선 성공하면 국제 위상 바뀔 것”
달에 기지를 세우기 위해 물이 필요한 거군요.
“그렇죠. 미국은 달 정거장을 세울 계획이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때는 달을 건너뛰고 화성에 집중했는데, 트럼프 정부로 바뀌면서 화성도 가야 하지만, 달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선언했죠. 우주정거장을 민간에 이양한 후 달 정거장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겁니다. 달에 정거장이 있으면 지구, 우주정거장, 달 사이를 쉽게 이동할 수 있고, 우주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수 있거든요. 이를 발판으로 화성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달 조약에 따라 달을 특정 국가가 소유할 수는 없지만, 달에 기지를 세우면 상황은 달라지겠죠. 목적이 자원이든, 기지 건설이든 혹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이든 간에 달은 엄청난 걸 뽑아낼 수 있는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달의 가치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우리도 달에 궤도선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땐 우주 강국들이 과거에 했던 것이라 의미가 없어 보이겠지만, 우리 입장으로는 달에 궤도선을 보내는 것과 보내지 않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고, 국제사회에서의 대우도 달라져요. 과거에도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2호 발사를 성공하기 전후에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을 것 같아요.
“전 원래 항공과를 전공했습니다. 고도로 따지면, 비행기는 10km 남짓, 전투기는 15km 남짓으로 채 20km를 넘지 못해요. 석사 때 발사체 궤도와 관련된 논문을 제출하고 이를 계기로 천문연구원에 들어갔죠. 발사체는 항공기보다 지구에서 더 멀리 날아갑니다. 항우연에서도 발사체를 담당하다가 1993년 위성 파트로 넘어왔어요. 고도는 685km로 발사체보다 더 높아진 셈이죠. 그러다 3만6000km에 달하는 천리안을 맡고, 그 뒤로 지구로부터 38만 km 떨어진 달을 담당하게 됐어요. 고도로 따지면 점차적으로 높아진 셈이죠.(웃음) 2008년에는 우스갯소리로 달까지 하고 그만하겠다고 농담하며 제 종착지는 달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난해 달 진입 방식이 바뀌면서 지구 밖 150만 km까지 날아가게 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달을 보며 낭만을 떠올리지만 전 부담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그래도 달을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 달 탐사가 성공하길 바라고 있기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