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클릭 한 번으로 생필품이 현관 앞까지 오는 지금. 화장품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 진화된 화장품 구독 서비스는 내 피부 상태와 취향을 100% 반영해 집으로 배송해 준다. 귀차니스트들에겐 더 없는 희소식이다.


[Grooming] 화장품 구독의 시대
시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묶여 있던 도중 하필 크림이 똑 떨어진 것이다. 전국적으로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집 근처에도 확진자가 여기저기 활보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수시로 울렸다. 이에 수분크림을 하나 구비하기 위해 외출을 준비한다는 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마트로 떠나는 재난 영화만큼이나 무모해 보였다.


화장품 구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그때부터였다. 신문도, 잡지도 아닌 화장품 구독이라니. 어색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정기 배송’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이, 매달 특정 날짜에 월간지가 집으로 배송되는 것처럼 정기적인 기간을 두고 화장품이 집으로 찾아오는 서비스를 뜻한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화장품이 집으로 오니, 화장품이 떨어질 때마다 매장에 방문해서 사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1세대 화장품 구독의 형태는 신제품의 샘플 사이즈 혹은 정품을 매달 정기적으로 보내 주는 뷰티 박스였다. 2011년 3월 뷰티 박스의 개념을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한 글로시박스를 선두로, 미미박스와 겟잇박스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전문가들이 엄선한 신상품들을 골라 담았기 때문에 뷰티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세대 화장품 구독이 이렇게 ‘큐레이션’에 집중했다면 지금의 화장품 구독은 ‘커스터마이징’에 더 신경 쓴 편이다. 개개인의 피부 타입을 선택하면 그에 맞는 제품을 보내 주거나 직접 피부를 진단해 화장품을 직접 제조해 보내 주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지독한 ‘뷰티 노마드’에 속한다. 특정 제품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성분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트러블이 올라오곤 했다. 결국 집에는 한 번만 쓰고 방치한 크림통이 수두룩하다. 어쩌다 한 번 피부에 맞는 크림을 찾으면 오랫동안 쓰긴 하지만, 기대했던 효과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바로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곤 했다. 이런 복불복에 기대하는 생활을 청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화장품 구독을 시작하다
그렇게 화장품 구독 서비스를 찾아보던 중 톤28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다. 천연성분과 친환경적인 패키지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직접 내 피부 타입을 진단해 준다는 점이 구미에 당겼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간단한 회원 가입을 마친 후 피부 진단을 신청하면 가이드와 시간과 장소를 잡아 만나게 된다.

[Grooming] 화장품 구독의 시대
가이드의 피부 진단이 완료되면 천연 성분으로 신선하게 화장품을 제조한다.
가이드의 피부 진단이 완료되면 천연 성분으로 신선하게 화장품을 제조한다.
사무실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가이드는 얼굴 부위별로 스스로 느끼는 피부 고민을 적게 한 뒤 피부 테스터기로 이마와 눈가, 볼과 입가를 차례로 측정했다. 스스로 수분이 부족한 지성 피부라고 생각했고 결과는 그대로 나왔지만, 예상보다 이마와 입가는 피지 분비량이 많은 편이었고(피부 테스터기로 확대해서 본 모공 상태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탄력이 0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나름 동안 소리를 듣는 편이라 피부 탄력도는 걱정하지 않았는데 두 눈으로 마주한 결과는 참담했다. 가이드는 또래들에 비해 탄력이 낮은 편으로 수분이 부족해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내가 쓰게 될 화장품은 피지를 조절하되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피부가 머금는 수분과 탄력도를 동시에 올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화장품을 내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것. 우선 화장품을 얼굴 부위에 따라 선택해서 바를 수 있다. 최대 4부위에 각각 바를 수 있는 타입부터 올인원 하나로 얼굴 전체를 바를 수 있는 타입까지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부위마다 피부 상태에 큰 차이가 없다면 올인원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가이드의 추천에 따라 올인원을 선택했고,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들을 꼼꼼히 체크했다. 모두 천연 제품으로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성분들이다. 제형을 고를 수 있는 부분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이드가 가져온 샘플로 테스트를 해 봤는데, 그는 계절에 맞게 가벼운 제형을 추천했지만 4월 초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꽤나 쌀쌀한 편이었기 때문에 1단계 더 묵직한 제형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향까지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무향도 고를 수 있다. 최종적으로 배송 받을 집 주소와 정기적으로 결제할 카드 번호, 화장품 케이스에 들어갈 이니셜을 입력한 뒤 모든 일정은 끝났다. 30분 내외로 걸렸다.


피부 진단과 화장품 커스터마이징 과정은 만족스러웠다. 사실 피부 진단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내 피부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 취향을 고려해 제형부터 향까지 직접 고를 수 있는 일렬의 과정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피부과에서 피지와 수분관리와 관련된 시술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는데, 더 이상 피부과 시술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면 안 된다는 점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좋은 피부를 갖기 위해선 타고난 것도 필요하지만 꾸준한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알았다.


톤28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피부 진단 결과와 제조되는 화장품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
톤28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피부 진단 결과와 제조되는 화장품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
과연 내 피부에 잘 맞을까
제품 배송까지는 약 열흘의 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긴 시간이었지만, 내 피부를 위해 거뜬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던 제품이 집에 도착했고, 받자마자 바로 사용했다. 물론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고, 예상대로였다. 아마 몸에 좋지 않은 스테로이드를 퍼붓지 않는 한, 그 어떤 화장품도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눈에 띄게 좋은 점도 있었다. 화장품을 바꾸면 무조건적으로 크고 작은 트러블이 나곤 했는데, 내 피부에 맞춰 제조됐기 때문인지 전혀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점은 톡톡 두드려 흡수시켜 줘야 한다는 것. 바쁜 아침에는 귀찮은 작업이긴 하지만 그만큼 발림성과 흡수력을 좋게 하는 화학성분을 넣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품의 기능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다른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았다. 한 가지, 화장솜에 스킨을 묻혀 피부 결을 정돈하고 각질을 제거하는 단계가 생략된 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각질은 일어나지 않았고, 피부도 매끈해 보였다. 오히려 볼 주변으로 감돌던 홍조기가 사라진 걸 보니, 그동안 각질을 제거한답시고 스킨을 묻힌 화장솜을 너무 세게 문질렀던 모양이다.


사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보통 같았으면 바쁜 일정과 스트레스로 입가에 커다란 뾰루지가 날 시기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홍조가 사라져 피부 톤이 균일해졌고 결 또한 늘 정돈된 상태를 유지했다. 2주일이 지났을 즈음은 건조함이 극에 달하는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한 때였다. 이전에는 저녁이 되면 피지가 올라와 번들거리면서도 팔자 주름이나 눈가 쪽으로는 당김 현상도 있었는데, 제품 하나만 발랐음에도 하루 종일 건조하지 않았고 소위 ‘개기름’이 흐르지도 않았다. 비비크림을 발랐냐고 물어 볼 정도로 피부 톤이 확실히 좋아졌고, 화장품을 무엇으로 바꿨는지 물어 보는 이들도 생겼다. 드디어 정착할 수 있는 스킨케어 제품이 생긴 것이다. 다 쓸 때마다 굳이 매장에 찾아가서 사지 않아도 되고, 계절마다 성분이며 제형까지 맞출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뷰티 노마드’로부터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눈길을 끄는 구독 서비스
화장품 구독을 제공하는 브랜드들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먼슬리 코스메틱 역시 ‘마이크림’ 서비스를 통해 톤28처럼 피부 상태에 따라 제품을 제조해 배송한다. 다른 점은 온라인 비대면으로 피부 진단이 이루어진다는 것.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을 골라 작성하면 피부 타입이 무엇인지, 어떤 타입을 사용해야 하는지 추천해 준다.

먼슬리 코스메틱의 마이크림.
먼슬리 코스메틱의 마이크림.
먼슬리 코스메틱의 마이샴푸.
먼슬리 코스메틱의 마이샴푸.
‘마이에센스’라 불리는 타입은 제품 1개만 사용하는 스탠더드, 2개를 사용하는 인텐시브, 3개를 사용하는 프리미엄으로 구성된다. 정기 배송 또한 1개월 혹은 한 계절을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3개월만 결제할 수 있다. 만약 계절에 따라 피부가 바뀐다면 배송 7일 전에 피부 타입과 고민에 대한 정보를 수정할 수 있다. 약건성이나 복합성 피부의 경우 유·수분 밸런스를 맞추는 앰플을 추가적으로 신청해 사용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두피와 머리카락을 케어할 수 있도록 ‘마이샴푸’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것. 마이크림과 마찬가지로 두피 타입과 모발 상태 등을 체크해 그에 맞는 제품을 배송 받을 수 있다. 마이크림과 마이샴푸 모두 자연 유래의 천연성분을 쓰기 때문에 어떠한 피부 타입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스테디의 너리싱 플랜
스테디의 너리싱 플랜
2017년 10월, 아모레피시픽이 론칭한 ‘스테디’는 국내 최초로 마스크팩만을 정기 배송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마스크팩 정기 배송 서비스인 ‘스테디 박스’의 구독을 신청할 수 있으며, 원하는 제품과 주기, 요일을 지정할 수 있다. 보습 및 탄력을 부여하는 하이드레이팅 플랜, 피부 톤을 개선하는 브라이트닝 플랜, 재생과 영양 기능의 너리싱 플랜 3종 중 선택할 수 있다.


각각은 각질 관리로 피부 결을 정돈하는 클리어링, 수분 보충 및 피부 기초 환경을 개선하는 부스팅, 각 제품이 지닌 유효 성분을 피부 깊숙이 전달하는 액티베이팅, 피부 장벽을 강화하는 베리어의 4단계로 된다. 액티베이팅 단계의 마스크팩이 4개, 나머지 3단계의 마스크팩이 2개씩 들어 있어 총 10일 동안 매일 사용하면 피부가 개선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스크 시트를 손쉽게 꺼낼 수 있는 이지-필 오픈 방식과 남은 에센스를 남김없이 짜내 다른 부위에도 바를 수 있도록 패키지 하단에 절개선을 추가한 센스도 돋보인다.

자올 닥터스오더의 먼슬리자올 신청 시 받을 수 있는 제품
자올 닥터스오더의 먼슬리자올 신청 시 받을 수 있는 제품
기존 브랜드가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자올 닥터스오더는 탈모 제품 최초의 구독 서비스인 ‘먼슬리자올’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탈모 관리의 핵심은 꾸준한 관리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매달 스칼프 스케일링 샴푸 300ml, 두피에 영양을 공급하는 시너지부스터 100ml, 리필 100ml, 그리고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비오틴과 기타 영양소를 함유한 건강기능식품인 타래알엑스 콤팩트를 배송한다. 기본적으로 6개월을 꾸준히 사용하면 6개월분을 무료로 증정해 총 1년간의 홈케어 제품을 받는 셈이다.


처음 구독 신청을 하게 되면 전담 ‘링커’가 두피 타입과 탈모 부위 및 진행 상황, 탈모 관리법, 가족력 등을 체크하고 올바른 제품 사용법을 안내한다. 이는 카카오톡에서 ‘먼슬리자올’을 추가하면 된다. 매주 링커가 변화를 체크하면서 맞춤 가이드를 카톡으로 보내며 맞춤 콘텐츠까지 제작해 제공한다. 민경선 자올 닥터스오더 대표는 “최근 9개월 동안 시범적으로 운영했는데 중도 해지율도 극히 적어 고객의 만족도를 확인했다”며 “이 플랫폼을 수정 및 보완해 올 하반기에 공식적인 론칭을 준비한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