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누구나 한 번쯤은 꽃을 선물하고 선물 받았다. 꽃을 사러 매장의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은 어땠는가. 꽃을 고르는 동안은 또 어떤 기분이었는가. 꽃을 선물했을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가. 반대로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부정적인 단어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꽃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이에 정신없이 매료된 남자들이 있다. 동네 꽃집 아저씨가 아닌, 진짜 ‘남자’ 플로리스트 5인의 향긋한 이야기.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에이든플로랄아틀리에 에이든

“K팝·K뷰티에 이어 K플라워가 대세죠”

11년 차 플로리스트 에이든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머나먼 타국에서 그에게 꽃을 배우러 오는 이들로 인해 케이(K)플라워의 저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력을 먼저 쌓고 플라워 스쿨을 다녔네요.
“한국에서 사회생활에 지쳐 무턱대고 미국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우연히 맨해튼 상류층들의 파티와 좋은 건물들을 꾸미는 플로리스트를 만났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됐죠. 하루는 일손이 부족해 작은 꽃 장식을 몇 개 만들었는데 순간 소름이 끼치게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만든 꽃 장식을 보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 뒤로 휴일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쪼개 꽃을 사서 장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보스에게 보여 줬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예쁘게 본 보스가 3개월 만에 제게 플로리스트 포지션을 맡겼어요.”


특이하게 경력을 시작했네요.
“사실 운이 되게 좋았던 편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돈을 내고 배우는 것을 저는 일을 하면서 습득했으니까요. 그 스튜디오에서 6개월 이상 버틴 친구들이 없었는데 3년이 지나니 제가 제일 오래 근무한 사람이 됐고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됐죠.”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활동했나요.
“8년 전쯤에 들어왔어요. 매니저가 된 후에 향수병에 걸려서 한국에 너무 오고 싶더라고요. 다만 꽃을 계속 하려면 체계적인 이론을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런던에서 플라워 스쿨을 다닌 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처음에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작품들 사진을 올리고, 잡지사에도 계속 메일을 넣었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 연재도 하게 됐고, 수강생도 생겼고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플로리스트라니, 반대가 심했을 것 같아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제일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남자가 무슨 꽃이야’, ‘꽃으로 돈 벌겠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일을 시작한 뒤로는 남자라서 못할 것 같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남자 손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쉬운 편이죠. 백화점 VIP 행사처럼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것들은 남자 플로리스트를 더 선호하기도 해요.”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다른 플로리스트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

“저만 할 수 있는 특기는 없어요. 하지만 다른 플로리스트들에 비해 색감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많이 들어요. 남자임에도 로맨틱한 스타일을 잘 구현한다고 할까요. 매장 인테리어도 제가 다 셀프로 했죠.”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벚꽃이나 목련 같은 꽃나무를 제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꽃나무를 들이는 게 어색하다고 하는데, 꽃병에 꽃나무 가지를 몇 개 꽂아 놓으면 봄의 느낌이 물씬 나죠. 꽃을 선물하고 싶다면, 장미나 안개꽃은 추천하지 않아요. 특히 장미꽃 100송이 주문이 들어오면 뜯어 말려요. 가격은 비싼데,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수 없거든요. 평소에 받지 못했던 꽃들을 선물하면 나에게 세심하게 신경 썼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스위트 피나 라넌큘러스를 추천해요. 특히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는 오묘한 광택감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겐 꽃은 힐링, 치유의 느낌이 강해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돼서 왜 씩씩하지 못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꽃을 시작하고부터는 이 성격이 장점이 됐죠. 다른 남성들이 표현할 수 없는 세심함과 로맨틱한 스타일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또 그 모습에서 저도 치유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크게 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나중에 정원이 있는 집에 살면서, 제가 키우는 식물들을 놓고 그 꽃들로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을 만들며 살고 싶어요. 또 플라워 스쿨을 통해 제가 느꼈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더이삭플라워 김준연

“꽃은 여자친구, 한눈에 반하기도 해요”

꽃은 언젠가 져서 소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1세대 플로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꽃길을 걷게 된 김준연은 꽃과 항상 연애하는 중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꽃을 가까이하길 바란다.


아버지가 1세대 플로리스트라 영향을 많이 받았겠어요.
“처음부터 받았던 건 아니지만, 플로리스트로서 경력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단순히 꽃을 판매하시는 게 아니라, 호텔이나 백화점의 디스플레이를 도맡아 하셨어요. 물론 디자인도 직접 하시고요. 진로를 고민할 때쯤 부모님께서 꽃을 공부하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도 한 번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해외 플라워 스쿨도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제가 행복한 일을 찾은 느낌이에요.”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버지와 달리 저는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방탄소년단(BTS)과도 매장에서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었고,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MF)이라는 록 페스티벌의 디렉팅을 하거나, 네스프레스와 같은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대외적인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단순히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군요.

“공간 장식 작업을 많이 해 왔죠. 페스티벌 디렉팅의 경우, 제가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서 컴퓨터 일러스트 작업으로 제안서를 만든 다음 관계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어요. 플로리스트가 이런 걸 직접 하는 것에 대해 관계자들이 신선하게 여기더라고요. 2016년부터 인연이 시작돼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남자 플로리스트로서 받았던 편견이 있나요.
“일종의 세대 차이인 거 같아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꽃을 주문을 하거나 상담을 하실 때 되레 여성 플로리스트가 없는지 문의하시는 편이에요. 반대로 젊은 분들은 좋아하는 경우가 많죠. 특히 남자친구에게 선물하러 방문하는 여성 고객들은 어떤 꽃이 좋다고 조언을 받을 수 있고, 남자 고객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상담을 해 주니 거부감이나 부담감이 덜하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해요.”


그럼 남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직업인가요.
“오히려 남자에게 더 적합한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도 남자 플로리스트가 많기도 하고요. 플로리스트는 앉아서 꽃꽂이하는 게 아니라 꽃을 매입을 해 오는 것부터 큰 규모에 행사에서 꽃이나 기타 조형물들을 옮기거나 설치하는 등 근력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남자가 더 최적화됐고, 롱런할 수 있다고 봐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손님들이 행사나 선물용보다는 기분 전환용으로 꽃을 사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장미 중에서도 향이 좋은 마담 굴리아를 추천해요. 벌어지면서 더 예뻐지는 꽃이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항상 꽃을 ‘여자친구’라고 표현해요. 그래서 더 여자친구가 안 생기는 거 같기도 하고요.(웃음) 실제로 시장에 가면 한눈에 반하는 꽃들도 있어요. 장사하는 입장에선 팔아야 수익이 생기는 건데, 아무리 비싸더라도 저만 보려고 사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꽃들은 정리할 때도 다치지 않게 살살 다루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꽃이 거리감이 있는 오브제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꽃값이 비싼 축에 속해요. 그리고 5000원짜리 커피 한 잔은 거리낌 없이 사지만, 꽃 한 송이는 5000원도 비싸다고 생각하죠. 나중에는 사람들이 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꽃을 만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꽃들의 집 허정목

“꽃은 행복과 위로 전하죠”

꽃은 누군가에겐 행복을 선사하고, 또 누군가에겐 슬픔을 위로한다. 플로리스트 허정목이 꽃을 ‘신의 선물’이라 말하는 이유다.


광고기획자로 일했던 경력이 있네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졸업 후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면서 지역 축제나 기업 행사 등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일일 뿐이고, 현실과 부딪치면서 회의감도 많이 들었어요. 이직을 준비하던 중 행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플로리스트들과 인연이 닿아 꽃을 배우게 됐습니다.”


처음 꽃을 배웠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내재됐던 화려함을 방출한다고 할까요.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었죠. 1년 동안 새벽에는 꽃시장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사실 꽃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크잖아요. 제가 플로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남자는 섬세함이나 감각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한 웨딩업체에서 일했을 때는 여성 동료들의 텃세가 심하기도 했고요. 꽃에 물을 주고 화분을 나르는 게 저에게 주어진 일의 전부였거든요.”


그래도 플로리스트 하길 잘했다는 때가 있었죠.
“한국인 신부와 외국인 신랑의 스몰 웨딩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신부의 화관부터 부케, 신랑의 부토니에까지 정성스럽게 만들었어요. 결혼식은 잘 마무리됐고, 그 뒤에 신부가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근사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만들어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죠. 물론 꽃은 슬픔을 위로하기도 해요.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꽃을 주문하셨는데, 알고 보니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위한 꽃이었던 거예요. 최대한 마음을 담아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 녹아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또 깊은 위로를 전하기도 하니까요.”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손님이 꽃을 구매하려는 목적과 용도를 정확하게 알고자 해요. 받으시는 분과의 관계, 나이, 성향, 생김새, 좋아하는 향 등을 모두 여쭤 봐요. 스몰 웨딩도 많이 요청이 오는데, 그때는 신부의 얼굴과 체형, 드레스, 결혼식장의 분위기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합니다. 또한 월별로 꽃에 대한 이슈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 가장 예쁘게 피는 꽃들을 활용해요. 이를 위해선 꽃과 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자신만의 확고한 이상과 뚝심이 필요하죠.”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Special] 꽃길만 걸어요②
대중성과 독창성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겠는데요.

“아무래도 예술적인 느낌이 강하고 자기만의 세계관이 뚜렷하면 대중성은 떨어지기 마련이죠. 우리나라는 꽃 문화가 많이 발달된 나라가 아니다 보니, 대중성이 결여된 상품을 만들려면 막힐 수밖에 없어요. 플로리스트도 미적인 감각이 필요하지만, 대중성을 포기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맞게 되는 딜레마를 겪을 수 있어요. 저 역시도 이 균형을 맞추려고 해요. 상품 기획은 대중성을 고려하지만, 일주일에 1, 2번씩은 저만이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꽃 상품을 제작하고 있어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델피니움이라는 꽃을 추천합니다. 그리스어로 ‘돌고래’를 의미하는데, 꽃봉오리가 돌고래와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언제나 평온한 돌고래처럼, 보기만 해도 마음을 정화하고 일상의 여유를 선사하는 꽃입니다. 팬톤에서 올해의 컬러를 클래식 블루로 꼽았을 만큼 푸른 계열의 색상이 인기인데, 꽃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청명한 색감이 일품이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꽃집은 봄이 시작할 때부터 한여름 전까지가 성수기입니다. 매달 꽃을 소비하는 행사도 많은 편이고요. 5월까지는 꽃집 운영에만 전념할 예정이에요. 그 이후에는 미뤄 뒀던 출판 작업을 해 볼까 합니다. 꽃꽂이와 관련된 책을 내는 게 목표예요. 더 많은 사람들이 꽃을 더 쉽게,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하면 꽃 문화와 인식이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