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망자(亡者)는 더 이상 말이 없기에 유언장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민법이 정한 유언의 방식 중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필증서 유언의 경우, 여러 한계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개선 여지는 없는 걸까.

자필증서 유언, 엄격한 잣대 개선될까
민법 제1060조는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방식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 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언이 존재하는지 여부, 유언의 내용이 유언자의 진의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다른 법률행위보다 어려워서라고 설명합니다.

민법 제1065조는 유언의 방식으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5종류를 정하고 있습니다. 유언을 고려하는 많은 분들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거나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합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자필로 유언에 대한 내용을 모두 적고 연월일, 주소, 성명을 적은 후 날인해야 합니다(민법 제1066조).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려면 유언자가 증인 2명이 참여한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하면 공증인이 이것을 필기 낭독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확인하고 서명 또는 기명날인해야 합니다(민법 제1068조).

그런데 자필증서 유언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이용되지만 법률이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해 유언이 무효로 선언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언자가 내용을 모두 자필로 적어야 하고, 연월일, 주소, 성명을 적은 뒤 날인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렵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도 십수 년 전에 유언장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물론 이미 폐기했습니다) 감정에 젖어서 적었을 뿐 주소를 적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주소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작성했다는 것은 제 필체, 제 이름, 그리고 요건이 아닌 제 주민등록번호로 저라는 사람이 특정된다고 여겼지, 주소를 적어야만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거죠. 필자만 이렇게 주소를 적는 걸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나 봅니다. 실무에서 자필증서 유언이 문제되는 사례 중 일시, 날인 여부 외에도 주소가 과연 기재된 것인지 다툼이 있습니다.
특정 재산을 특정 상속인에게 상속하겠다는 자필증서 유언에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다고 해 헌법재판소에 이 민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문제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청구인은 유언자를 특정할 수 있는 요소 중 주소의 특정 기능이 가장 우월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주소 이외에 유언장의 내용에 의해 유언자를 특정한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주소의 자서’까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엄격한 형식적 요건으로 요구하고 이를 흠결한 경우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무시한 채 유언을 무효로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9조, 제23조 제1항에 위배되고, 헌법 전문 등에서 보장하는 유언자의 유언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9월 29일에 선고한 2010헌바250 등 사건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유언 방식도 바뀌어야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유언자의 사망 후 그 진의를 확보하고, 상속재산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상속제도를 건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입법 목적은 정당하고, 성명의 자서로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이 1차적으로 특정될 것이지만, 특히 동명이인의 경우에는 유언자의 주소가 그 인적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 성명의 자서에다 주소의 자서까지 요구함으로써 유언자로 하여금 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유언의 의사를 표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다.

한편,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자서를 요구하는 주소는 유언자의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이면 되고,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가 없으므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할 정도의 유언자라면 쉽게 이를 기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소의 기재는 반드시 유언 전문과 동일한 지편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유언증서로서의 일체성이 인정되는 이상 주소는 유언증서를 담은 봉투에 기재해도 무방하므로 유언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유언의 요식주의를 취하는 이상, 유언을 하는 자가 당연히 작성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유언의 전문, 유언자의 성명’ 등과 같은 최소한의 내용 이외에 다른 형식적인 기재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유언의 요식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주소의 자서’는 다른 유효 요건과는 다소 다른 측면에서 의연히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 내지 유언의 진정성 확인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익 균형성의 요건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유언자의 재산권과 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자필증서 유언의 요건으로 주소의 자서를 요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특별하게 없습니다. 오스트리아도 자필증서 유언의 요건에 주소를 요구하다가 개정됐는데 당시 개정을 요구했던 학자의 보고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줍니다. 프란츠 폰 차일러는 “입법자로서는 법적으로 필요한 것과 법적으로 바람직한 것을 엄격하게 구별해야 하며, 바람직한 것을 촉진하기는 해야 하지만 이를 불가결한 것으로 취급해 반드시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일은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희생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김형석, ‘유언방식의 개정 방향’, 가족법연구 33권 1호 121쪽에서 인용)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앞의 사건에서 4명의 헌법재판관은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4명의 헌법재판관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송두환, 재판관 이정미의 반대의견은 이렇습니다.

“동명이인의 경우에 유언자의 주소가 기재되지 않았더라도 그 유언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누구의 유언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란 쉽게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 조항이 주소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설령 주소의 기재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유언장 전문의 자서와 성명의 자서, 그리고 유언의 내용에 의해서 유언장의 실제 작성자와 유언장의 명의자의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음은 물론, 유언이 그의 진의에 의한 것임을 충분히 밝힐 수 있는 등 누가 한 유언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므로 주소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중복적인 요건을 과하는 것으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되며, 주소의 자서가 흠결되면 유언이 무효로 되고 유언자의 진의가 관철될 여지는 전혀 없게 될 것이므로 주소의 자서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침해되는 법익과 보호되는 공익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어 법익의 균형성의 원칙에도 위반된다.”

하지만 여전히 법원은 자필증서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요구합니다. 유언장의 기재를 수정하는 경우에도 유언자가 자서하고 날인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이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선언합니다.

대법원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유언자가 주소를 자서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으로서 그 효력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고, 유언자의 특정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여 달리 볼 것도 아니다(대법원 2014. 10. 6.선고 2012다29564 판결 등 참조)”라고 판시한 바도 있습니다.

즉, 유언자의 특정에 전혀 문제가 없더라도 민법이 정한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유언자가 적은 주소지가 실재하는지, 주소의 일부를 적은 것이 주소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건을 모두 구비한 자필증서 유언도 과연 진정하게 작성된 것인지, 다른 사람이 작성한 것은 아닌지 다툼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자필증서 유언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기술의 발전입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문서를 손으로 작성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더 친한 사람들에게 문서의 자필 작성은 이례적인 일이 돼 가고 있어 나중에는 과연 자필인지 여부가 더욱 문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유언자를 특정하고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자필증서 유언의 방식도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유언을 작성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또 녹음이 아니라 녹화 방식을 도입할 필요도 있고요. 비록 개정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법무부 민법개정특별위원회의 2011년 개정안은 자필증서 유언의 방식 가운데 주소와 날인 요건을 삭제했습니다. 민법이 정한 유언의 방식 중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필증서 유언에 대해 이제는 다시 검토하고 개선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