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가수 규현이 뮤지컬 무대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발하고 있다. 탄탄한 보컬은 기본이고, 공연을 거듭할수록 원숙한 감정 연기를 쏟아낸다.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편견이 무색할 정도로 실력파 뮤지컬 배우로 진화한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제공 : SM엔터테인먼트, E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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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규현의 신경은 오롯이 뮤지컬 <웃는 남자>의 히로인 ‘그윈플렌’에 쏠려 있는 듯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그윈플렌은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이다. 캐릭터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 데다 넘버 ‘그 눈을 떠’, ‘웃는 남자’로 이어지는 상원 장면에서의 폭발적인 포효는 보는 이들도 긴장할 만큼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 규현은 그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연습으로 견디며 매회 전율의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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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처음부터 규현이 뮤지컬 배우로서 크게 주목받은 건 아니다. 2010년 뮤지컬 <삼총사>로 뮤지컬에 입문한 그는 당시만 해도 일반 대중에겐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고. 무엇보다 개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다른 멤버들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때 온 기회라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뮤지컬에 몰입했다.

몰입의 즐거움이라고 했던가. 뮤지컬에 몰입할수록 행복하고, 재밌었다는 그는 이후에도 <그날들>, <베르테르>, <모차르트!> 등 다양한 작품을 거치며 실력을 쌓아 왔다.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서도 떳떳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뮤지컬 배우로도 벌써 10년 차인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군 입대 등의 이유로) 3년 반 정도 뮤지컬 공백기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10년 차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연륜이 쌓인 배우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 같아요. 여전히 처음 한다는 느낌이고, 무대에 다시 서는 것이 오랜만이라 긴장하고, 시작 전엔 걱정도 했죠. 그래도 무사히 공연을 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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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복무요원 시절에 워낙 이 작품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려와서 회사 측 권유로 가게 됐어요. (박)효신이 형, 수호가 무대에 섰던 공연을 봤어요.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없다가 두 번째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권력을 내던지고 다시 밑바닥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그 심정이 이해됐죠.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도요. 좋은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넘버도 계속 (뇌리에) 남았어요. 제작사에서 ‘해 보면 어때요’ 할 때는 웃어넘겼는데 실제로 하게 됐습니다.”

다른 배우들과 다른 자신만의 애드리브가 있나요.
“제가 애드리브를 하는 건 별로 없어요. 표현을 우스꽝스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조시아나 여공작과 있을 때 많이 해요. 귀족을 처음 만난 촌뜨기가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귀족을 보고 많이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우스꽝스럽게 해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건 아니에요.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 부분에서는 재미를 더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요.
“‘그 눈을 떠’를 가장 좋아해요. 처음 공연을 봤을 때부터 맘에 들었는데,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것을 버리고 눈을 뜨고 다 같이 행복하게 삽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희열이 느껴졌어요. 넘버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더라고요.”

극중 그윈플렌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본인이라면 어땠을 것 같나요.
“사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하다 말고 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 자체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 같았어요. 실제로 갑자기 누가 나에게 재벌가의 자식이라며 몇천억 원을 주고 건물을 준다면 포기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까요.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떠날 수 있는 것이 용감하고 멋있는 행동 같아요. 아마 제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순응하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웃음)”

현실에 순응하고 잘살겠다고 했는데, 혹시 현재 포기할 수 없는 것들도 있나요.
“전부 다 포함해서 일이요.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이런 일들을 계속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팬들, 관객과 만나 호흡하는 일들이죠. 요즘 정말 일만 하고 살고 있어요. 지인들과 만나는 것도 좋지만 국내든, 해외든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스케줄이 굉장히 바쁠 것 같은데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주변에서 괜찮냐고 걱정들을 많이 하세요. 몸에 좋은 것들을 많이 보내 주시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힘들어 해서 걱정 안 하셔도 된답니다. 매일 꾸준히 잠도 8시간씩 충분히 자고 있어요. 가끔은 지인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하면, 별로 안 힘들어요.”

그만큼 작품에 몰입했다는 소리 같은데요.
“네. 다행히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생각보다 많이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배우들이랑 합도 자주 맞춰 봤죠. 다만, 이번 연출님이 외국 분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순조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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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을 떠’, ‘웃는 남자’ 등 넘버들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준비했나요.

“특별히 도움을 주신 분이 있어요. (옥)주현 누나가 제 시츠프로브(sitzprobe) 영상을 봤다면서, 도움이 될 부분들을 말씀해 주셨어요. 발성 때 쓸 부분이라든가, 넘버 하는 가사 중간 중간의 발음, 그리고 사소한 호흡 같은 것들까지도 도움을 주셨죠.”

연기적 측면에서 노력한 점은요.
“연기 레슨을 따로 받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엔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생각도 많아지면서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제가 눈치가 좀 빠른 편인데 연출님이 설명해 주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빠른 편이에요. 또 다른 배우들을 보면서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라고 많이 생각해요.”

발라드 가수 이미지가 강해서 뮤지컬 넘버들을 소화하는 데 부담되지 않나요.
“가요를 부를 때와 확실히 다르게 뮤지컬 넘버를 부르고 있어요. 사실 지금 가요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가요를 거의 듣지 않고 있거든요. 뮤지컬 넘버 부르는 것만 생각하고, 넘버 속 말(내용)들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물론, 간혹 지금도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예능이나 가수 이미지가 워낙 세다 보니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큰 부담 없이 하고 있어요.”

외국 팬들이 특히 많은데 어떤가요.
“오셔서 응원해 주시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돼요. 박수나 함성을 보내 주실 때 뿌듯하고, 감사하고 ‘이 공연 하길 잘했다’ 싶어요. 그리고 해외 팬들도 많이 오셔서 편지도 주시는데 내용을 읽어 보면 한글이 서툰 분들은 ‘오빠 (뮤지컬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하시기도 하고, ‘여러 번 보면서 이제 좀 뭔지 알 거 같아요’라고 하세요. 한편으론 좀 죄송해요. 예전에 작품 할 때는 자막도 많이 나왔거든요.”

뮤지컬 <모차르트> 이후 4년 가까이 지났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뮤지컬 배우로서 얼마나 성장했나요.
“그 이후로 나이만 먹은 거 같고,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때도 저는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게 너무 많죠. 그나마 지금과 차이점을 생각해 보면 목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음악감독님도 ‘네가 노래를 이렇게 잘 했었니’라고 하셨어요.”

주로 시대극을 많이 하는데 취향인가요.
“네, 그런 취향이 좀 있어요. 주로 예전을 배경으로 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현대극은 많이 보지도 않았던 편이기도 하고요.”

함께 그윈플렌에 캐스팅 된 배우들과는 어떤가요.
“이번 그윈플렌들과는 으싸으싸 하면서 각자 생각이나 감정 등에 대해서 서로 상의를 많이 해요. 되게 많이 친해져서 모니터도 많이 해 주죠. 수호 같은 경우 정말 너무 예뻐요. 뭘 해도 너무 예쁜 것 같습니다.(미소) 석훈 형은 가수로서도 원래 친분이 있었는데, (뮤지컬에서도) 호소력이 좋더라고요. (박)강현이는 초연 당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싹싹해요. 무대에서 하는 걸 보면 후배지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도전하고 싶은 뮤지컬이 있다면요.
“음, 있긴 있는데 비밀입니다.”

대극장에서 주로 공연했는데 소극장에서 공연해 볼 생각도 있나요.
“예전부터 그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말로 괜찮은 작품이 있으면 하고 싶어요. 아직 안 해 봤지만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들었어요. 언젠가 도전해 보고도 싶어요.”


뮤지컬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지금 저는 하루살이처럼 무사히 많은 분들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하자는 생각밖에 없어서 뭐가 될 거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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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신을 뮤지컬 배우라고 생각할 때 떳떳한가요.

“네, 떳떳해요.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뮤지컬 배우 규현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다섯 번째 작품을 하면서 온 것 같아요. 그때부터 뭘 좀 느낀 것 같아요. 메시지 전달한 부분이나 개념이 없었는데 작품을 계속하고, 새로운 작품을 보면서 시야도 넓어지고, 하다 보니까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제 팬들만 많이 오셨는데 최근 후기들을 보면 일반 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러 많이 찾아오세요. 만족하셨다는 분들의 후기를 보면 뿌듯해요. 앞으로도 뭘 이루고 싶다기보다 뮤지컬 배우 중에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라고 불리는 훌륭한 선배들처럼 어떤 역할이라도 ‘규현이는 뭘 해도 볼 만해’라고 평가받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