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으레 ‘느슨한 연대’ 하면 북유럽 사회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정작 그곳엔 그러한 개념이나 말은 없다. 그저 그렇게 살 뿐이라고 한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 사진 서범세 기자

“당신이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고(故) 가수 신해철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어느 사회가 왜 다른 사회보다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 과거에는 그 행복의 조건이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지표에 무게추가 실렸던 반면, 최근에는 경제 성장뿐 아니라 대인관계, 건강, 직업, 목적의식 등 다양한 삶의 질에 대해서도 측정한다.

그간 이 분야의 왕좌는 대개 북유럽 국가들의 몫이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가 7.769점으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그 뒤를 이어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순으로 나타났다. 북유럽 국가들이 지닌 행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은 주저 없이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발현된 연대의식을 꼽았다. 단, 연대의 밀도나 방법은 개인의 선택이다. 핵심은 방향이다.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연대 내 공동 선(善)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의 행복이 좌우된다는 것. 과연, 우리나라도 그들처럼 연대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하 소장을 만나 북유럽식 느슨한 연대의 실체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우선, 북유럽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북유럽연구소는 좋은 사회를 고민하며 북유럽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북유럽의 제도와 해결책을 똑같이 가져와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유럽연구소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합니다. 연구원 모두가 북유럽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식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경제·사회 제도, 지속가능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의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 정책 분석, 컨설팅, 시장조사를 합니다. 북유럽연구소야말로 느슨하고 건강한 연구자의 연대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현지에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결합해 연구를 진행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느슨한 연대가 2020년 라이프 트렌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한국인들을 이 느슨한 연대로 끌어들인다고 보나요.
“일단 부담이 없잖아요. 우리나라는 가족은 물론, 회사에서도 강한 결속력을 원하는데 느슨한 연대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죠. 그렇다고 혼자서만 살긴 두렵고요. 그래서 그 절충안으로 나온 게 느슨한 연대가 아닐까 싶네요.”

느슨한 연대 하면 북유럽 사회가 먼저 떠오르는데 거기도 느슨한 연대라는 개념이 있나요.
“아뇨. 북유럽 사람들은 특별히 느슨한 연대라는 표현을 쓰진 않아요. 우리가 보기에 상대적으로 느슨해 보이는 것 같은데, 거기서 연대라는 건 굉장히 보편적인 가치죠. 학교나 직장, 사회생활 내에서도 연대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만, 동시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싶네요.”

말씀하신 대로 북유럽 하면 대개 개인주의가 강해서 우리처럼 가족에 대한 끈끈한 정서가 덜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유럽인들도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끈끈함은 상당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북유럽 사람들 대부분이 좁고 깊게 인간관계를 맺는 편이에요. 어릴 적 친구가 평생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외에는 진짜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친밀함으로 보자면 거기도 끈끈해요. 다만, 우리는 가족에 대한 책임이 굉장히 강하잖아요. 가령, 아이가 입시를 준비하면 온 가족이 거기에 신경을 쓰고, 누군가 아프면 간병을 오롯이 가족이 맡아야 하는데 북유럽 사회에서는 교육이든 간병이든 다양한 복지 시스템을 통해서 그 책임을 사회가 맡아 주니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개인과 개인으로 관계가 정립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책임이 그만큼 덜어지니까요.”

북유럽 사회도 시대가 흐르면서 가족 형태가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유럽의 1인 가구 혹은 동거 형태의 생활공동체 비율은 어떻습니다.
“1인 가구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일단, 스웨덴은 50%가 넘고, 덴마크나 노르웨이, 핀란드 등도 45% 선이에요. 북유럽 사회에서는 사실 결혼이라는 게 우리처럼 강력한 구속력이 있는 제도가 아니에요. 결혼이 아니어도 사회보장 시스템 통해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관계(companionship)를 맺을 수 있고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자유로운 편인 것 같아요. 꼭 결혼하겠다고 파트너를 찾는 노력을 안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혼자 사는 걸 익숙해 하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좀 낭만적인 ‘애어른’처럼 산다고 할까요. 가령,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가족이나 재산, 직업 등 외적 요소도 많이 보지만 거기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 하나만 보는 것 같아요. 어차피 세금을 재분배하면 소득은 비슷해지니까요.”

1인 가구 형태에 대해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상황이 어떤가요.
“북유럽에서도 출산 문제는 거대한 사회 이슈죠. 북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세금이 나라 예산의 절반을 차지해요. 따라서 인구가 감소하고, 세금이 줄면 이 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어요. 저출산이 곧 미래를 허무는 셈이죠. 그래서 스웨덴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온 사례는 눈여겨볼 만해요.

스웨덴은 이미 1934년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가 발표한 ‘인구 문제의 위기’라는 보고서를 토대로 저출산 정책을 펼쳐 왔어요. 이 보고서는 10년 후에 인구가 줄어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법을 담은 책인데, 그 당시 스웨덴도 출산율이 높지 않았어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논의 끝에 국가적으로 이민자들을 적극 수용해 노동력을 수혈했죠. 현재 스웨덴은 출산율이 1.8명에 달해요. 그리고 지난 50년간 1.5명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고요. 물론, 그들의 이민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녹록지 않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제도들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한 논문에 따르면 스웨덴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가 있었던 건 유급으로 부모의 육아휴직 기간을 늘려 줬을 때래요.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육아휴직 기간(480일)을 줘요. 최근 핀란드 정부도 자녀를 중심에 둔 육아정책을 펼치기 위해 부모가 각각 근무일 기준으로 약 7개월에 해당하는 164일간 육아휴가를 갈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더라고요.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스웨덴과 우리가 다른 점은 이것 같아요. 가령, 우리는 아이를 더 많이 낳도록 장려하기 위해서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요. 아이를 더 낳을수록 돈을 더 지원하겠다는 구조죠. 그런데 스웨덴은 달라요. 거기는 일종의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죠. 이를테면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경력 단절의 위협인지, 양육비인지 혹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의 부재인지 출산·육아로 디센티브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줄여 나가요. 이 과정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굳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양한 연대 형태의 육아 지원도 우리와 다르겠죠.
“최근 제가 재밌게 봤던 덴마크 통계청(www.statbank.dk/BRN12) 자료가 있어요. 덴마크는 자녀의 수를 파악하는 데만 총 37개(type of child family) 형태로 나눠서 집계하더라고요. 가령,
‘미혼모와 아이가 사는 가족’, ‘재혼 부부와 모계 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 등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가짓수만 37개예요. 여기에 추가로 ‘이성혼’, ‘동성혼’, ‘합의 관계’, ‘동거 관계’, ‘등록된 동반자 관계’, ‘싱글’ 등 6가지 가족 형태(family type)까지 구별하면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죠. 덴마크는 이 모든 유형의 가족을 동등한 가족으로 적극 홍보하고, 품었어요.

이 과정에서 미혼모나 미혼부의 증가뿐만 아니라 출산율도 덩달아 올라갔죠. 가령, 내가 평생 함께하고 싶은 파트너는 못 찾았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거기에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동등한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 비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회 제도나 의식이 많이 변하고 있긴 한데, 어떻게 보는지요.
“저는 우리나라가 현재 아시아 국가들 중에 인권, 표현의 자유, 노사관계 등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아직도 북유럽 모델이 보편화되기 어려울까요. 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social capital)이나 메커니즘이 북유럽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무한경쟁 사회예요. 누군가를 이기고,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문화가 강하죠.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집단 내에서도 ‘인싸(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를 가르잖아요. 광고에서도 ‘대한민국 상위 1%’, ‘선택된 당신을 위한’이라는 문구를 버젓이 쓰고 있어요. 북유럽에서는 이런 광고는 절대 내걸 수 없어요.

북유럽 국가들은 나와 남을 가르거나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순간 사회의 큰 룰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해요. 북유럽의 ‘얀테의 법칙’의 핵심은 ‘네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예요. 모두가 똑같다는 거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면 북유럽에선 부자나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되레 역차별을 받는 거라 생각할 정도예요. 북유럽 국가들이 말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근간에는 이처럼 모두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1명의 1등보다는 함께하는 2등이 더 많길 바라는 연대의식이 있기에 가능하죠.

북유럽인들이 철저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공동체주의적 개인주의라고 정의해요. 언제나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만 공동체주의와 갈등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공동체에 손을 들어 주는 경우가 많죠. 우리도 느슨한 연대를 한다면 공동체, 그것도 특별히 약자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무한경쟁,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사회복지 제도를 들여와도 효과를 보기 힘들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소셜 모임들을 통해 ‘느슨한 연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북유럽 사회는 어떤가요.
“북유럽에서는 스터디 클럽들이 굉장히 많고, 활성화돼 있어요. 오죽하면 스웨덴은 스터디 클럽 민주주의라는 말도 있어요. 일반인의 스터디 클럽 가입률이 60% 이상이죠. 종류는 무궁무진해요. 철학이나 인문학, 정치사회 클럽은 물론이고, 합창단이나 스포츠클럽도 많아요. 이런 클럽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장소를 빌려 주거나 아예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어요. 부러운 부분이죠.”

스웨덴이나 북유럽에서도 이민자 문제 등 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요.
“제가 올 초 스웨덴 민주당이 부상한 것에 대해 논문을 썼어요. 스웨덴 민주당이라고 하면 이민자 반대 노선을 취하는 스웨덴 극우정당이라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극우정책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결이 달라요. 이들은 무조건 이민자를 받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받을 수 있을 만큼만 받자는 거죠.

모든 극우 정당에는 민족주의가 있잖아요. 이들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순혈주의가 아니라 세금 납세의 여부예요. 과거 인구도 적고, 척박한 땅이었던 스웨덴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나라 부흥에 기여한 데에 여전히 스웨덴 사람들은 큰 고마움을 갖고 있어요. 다만, 매해 총 인구의 1%(약 15만 명)씩 수용했던 기존의 이민 제도는 더는 감당할 수 없으니 이걸 좀 조율해 보자는 거죠. 이민자를 수용하면 주거는 물론 언어 등 교육 제도도 지원해 줘야 하는데 그게 포화상태라고 본 거예요.

실제로 스웨덴에서 게토 지역 조성 등 일부 사회적 분리(social segregation)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폭탄 테러 등 범죄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고요. 저는 이게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봐요. 누구나 궁지에 몰린 사람은 막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분노를 특정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에 표출하죠. 지금처럼 우리가 무한경쟁을 하면서 사회 끝단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보듬지 못하면 이 사람들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분노하게 될 겁니다. 결국 그 불안은 우리 모두의 몫이죠. 그래서 연대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게 중요해요.”


하수정 소장은…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공부했다. 지속 가능 발전의 관점으로 본 한국 개발 모델의 유효성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 일간지의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다. 한겨레 경제연구소를 거쳐 한동안 서울시장의 연설문을 썼다. 북유럽에 대한 연구물을 꾸준히 내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번역), <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공저)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