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결말만이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는 ‘느슨한 연대’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프랑스
1990년대 후반, 프랑스는 혼인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동거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동거 커플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1999년부터 시행된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 PACS)은 동거하는 커플들에게 가족 수당과 소득세 공제, 사회보장급여, 상속 등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동성 간에도 시민연대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00년 시민연대계약을 체결한 커플 수는 2만2271이었으나, 2010년 20만5561까지 크게 늘어났으며, 그 뒤로 증가 및 감소세를 반복하고 있다. 2018년에는 19만4000을 기록했다. 프랑스는 또한 혼외자 출생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잘 갖춰진 복지제도로 인해 미혼모나 미혼부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데 무리가 없다. 한 부모의 경우 출산휴가를 더 연장해 주며, 결혼 여부나 가정의 형태에 상관없이 임신과 출산, 육아 비용을 지원한다.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스웨덴
1988년 ‘삼보(sambo)법’을 제정했다. 삼보는 동거 커플을 뜻하는 ‘사만 본데(samman boende)’를 줄인 단어다. 스웨덴의 삼보 커플은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해 결혼한 가정과 똑같이 인정받는다. 아동수당과 출산휴가, 주거수당 등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별거 혹은 사별 시에도 재산분할권을 부여받는다. 2019년에는 ‘육아휴직법’ 개정을 통해 친부 혹은 친모의 삼보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동거인법’을 시작으로, 삼보 커플이 자녀를 낳은 후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덴마크
미혼 양육자들은 비양육자로부터 매달 6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원받는다. 만약 이를 어길 때는 정부에서 돈을 지급한 후 비양육자의 세금에서 양육비만큼 징수해 간다. 비양육자가 해외로 도피했을 경우, 귀국 시 바로 체류분을 환수해 간다. 보통 국내에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방지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덴마크에서 정식 명칭으로 쓰이는 법률은 아니며, ‘친권법’이나 ‘아동법’ 등 다양한 법률이 종합적으로 엮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육아휴직을 지원하고 경력단절을 방지하며 양육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주는 제도들이 잘 갖춰져 있다. 세계 최대의 정자은행이 덴마크에 있는 만큼, 정자를 기증받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솔로모(solomor)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네덜란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 외에도 2가지 옵션이 있다. 이는 1998년 시행된 ‘동반자등록법(registered partnership)’ 덕분이다. 동반자 등록은 18세 이상, 미혼 혹은 다른 누구와 파트너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상대방이 직계가족이 아니고, 둘 중 한 사람이 네덜란드 국적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법적인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지만,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 합의한 조건이라면, 판사의 개입 없이 관계를 끝낼 수 있다. 또한 동거를 계약할 수 있다(cohabitation agreement). 파트너 연금이나 부가 혜택과 같은 자격을 얻기 위해 공증된 동거 계약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류상의 계약으로 이뤄진다. 만약 여성이 출산을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법적인 어머니가 되며, 남성은 법적으로 아버지가 되기 전에도 공식적으로 아버지임을 인정해야 한다.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영국
동성 커플의 인권 신장을 위해 결혼과 비슷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을 2004년 도입했다. 2014년 사실혼관계의 리베카 스타인펠드와 찰스 케이단 커플이 시빌 파트너십이 이성애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인권법’에 배치된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6월 최종 승소해 같은 해 10월부터 관련법을 개정해 동성 및 이성 커플 모두 결혼과 시빌 파트너십 중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영국에서는 혼인신고 후 28일 내에 종교적 의미의 결혼식을 치뤄야 한다. 시빌 파트너십의 경우 간소한 의식만 진행하지만 상속이나 세제, 연금, 양육 등 부부에 준하는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게 된다. 미혼모에 대한 복지도 잘 갖춰진 편인데, 10대 미혼모가 학업을 이어 가길 원하는 경우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둔 수당을 지급하며, 미혼모들을 위해 거주, 건강, 취업, 부모 교육 등의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는 슈어 스타트(Sure Start)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big story] 글로벌 시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별로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파트너’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 결혼한 부부처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가족용 구영주택에 입주하거나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다. 또한 민간업체에도 파트너의 지위를 인정하도록 촉구해 사망보험금을 파트너가 수령할 수도 있다. 2015년 도쿄도 시부야구를 시작으로 세타가야구,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미에현 이가시, 오키나와현 나하시, 지바시 등도 시행 중이며, 특히 지바시의 경우 동성 커플의 파트너십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