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안경 쓴 거북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정현 씨는 최근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바로 안경박물관을 만드는 것. 박물관 오픈으로 분주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안경원에서 서정현 씨를 만났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현 씨는 근 30년째 빈티지 안경을 수집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요즘 공방에서 만들어진 하우스 안경부터 1950~1960년대 만들어진 빈티지 안경, 1800년대 유물급 안경까지 1200여 점에 이른다. 그중 상용하는 안경만 해도 50여 개나 된다. 옷에 따라, 모자를 쓰는지 여부에 따라,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안경 착용도 달라진다. 색깔도 빨강, 초록, 파랑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색깔 있는 안경을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요. 하지만 생각보다 튀지 않거든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바로 보여 줄 수 있어 안경만 한 게 없죠.”


‘안경덕질’을 시작한 지는 어느덧 수십여 년.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자신에게 수집광 같은 게 있다고 했다. 그가 수집하는 건 비단 안경만은 아니다. 빈티지 안경을 수리하기 위해 코 받침과 나사 파츠가 있는 안경 수리 키트를 포함해 아세테이트에 바르는 광약, 안경케이스, 안경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제가 안경을 안 쓰면 안 되는 얼굴이라 안경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웃음) 안경을 수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티지 안경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두 개 모으기 시작한 게 수백 개가 됐습니다.”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안경공방을 탐방하고 그곳에서 만난 안경들을 수집한다. 올해 초에는 세계 제일의 안경 산지인 일본 후쿠이현 사바에시의 공방들을 다녀왔다.


“셀룰로이드, 아세테이트 등의 안경 소재 생산공장부터 가내수공업 스타일로 대를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중국 공장과는 대조적인 느낌이었는데요. 기술력의 차이라기보다는 만드는 사람의 마인드에 따라 결과물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죠. 국내에도 최근 수제 안경공방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 가 볼까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의 오또 안경공방 같은 곳이죠.”


수십 년째 안경을 모으고, 가진 안경의 수만 해도 1000여 개가 넘는데 그에게도 특별한 안경은 따로 있다.


“1994년에 지금은 없어진 압구정동 서기전이라는 안경원에서 구입한 프랑수아스 우들렛(Francois Woodlette)이라는 안경이 제게 가장 특별합니다. 제대로 구입한 첫 하우스 안경이며 안경 덕질의 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당시 가격이 45만 원 정도여서 상당히 고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여자 친구가 사준 것이라 겉으로 미안해하면서 속으론 쾌재를 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웃음)


빈티지 안경으로는 셀렉타(Selecta)의 라이터(writer) 모델을 꼽았다.
“1960년대 모델로 셀렉타라는 미국 브랜드가 프랑스의 ‘레스카(Lesca)’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의뢰해 쥐라 지역 모레즈 안경 산지에서 제작된 안경입니다. 다국적 면모를 지닌 안경이라 할 수 있죠. 이 안경은 평소에도 자주 쓰는데, 주로 미술계 인사들을 만날 때 자주 쓰는 편입니다. 그쪽 사람들은 뿔테를 선호하는 편이거든요.”(웃음)


사명과 같은 저변 넓히기

서 씨는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모아 박물관 오픈 준비에 한창이다. 18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빈티지 안경 전시 공간이다. 그는 안경박물관을 여는 것을 일종의 사명감으로 여긴다. 안경디자이너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디자인이나 문화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모은 사료를 체계화 해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나 안경 판매자들이나 안경업계 종사자들이 이를 잘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패션에 복식사가 중요하듯, 안경도 마찬가지예요. 현재의 안경을 공부하기 위해선 안경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빈티지 안경을 수집하면서 항상 느껴 온 것은 디자인의 순환입니다. 안경에 있어 과거의 헤리티지가 레트로라는 형태로 현대에 계승·발전되고 있는 거죠. 이러한 흐름을 볼 수 있는 공간이자 커리큘럼이 국내에는 전무한 현실 속에서 빈티지 안경박물관 건립은 전문 매거진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혁신적이라고 하는 안경 디자인도 알고 보면 수십 년 전, 혹은 100여 년 전 안경의 원형이다. 패션 트렌드가 돌고 도는 것처럼, 안경도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데 동그란테가 유행을 타는가 하면, 뿔테가 유행일 때가 있는 것. 요즘 유행인 하금테도 마찬가지다. 트렌드가 돌고 도니 예전 안경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 씨는 이러한 공간으로 음지의 안경덕후들은 물론, 안경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장소가 되길 원한다. 안경박물관이 오픈하면 안경의 역사가 담긴 브로셔를 구비해 알리고,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 콘텐츠로 확장시킬 계획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안경도 1000점 한정으로 출시했다. 그동안의 노하우와 바람을 집약시킨 ‘화병작’이라는 안경 시리즈다.


“판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가 바람이 담긴 안경을 만들고 싶었죠. 빈티지 안경 원형에 하금테에는 없는 키홀(안경의 두 렌즈 사이의 브리지 장식)을 넣었습니다. 거기에 제 문장과도 같은 거북 문양을 새겼죠.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원했던 형태가 구현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안경에 대한 이모저모의 일을 꾸미고 있지만 그의 진짜 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제 꿈은 안경잡지를 만드는 거예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안경 공방을 찾아 칼럼을 쓰고, 수집하는 게 가장 행복하거든요. 일본에서는 이미 모드옵틱이라는 안경잡지가 있습니다. 물론 잡지사와 안경회사의 후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죠. 우리나라도 안경에 대한 수요와 시장이 더 커진다면 한번 해 볼 만한 일이겠죠.”


그는 컬렉터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빈티지 물건을 수집한다는 건 그 아이템만이 지니는 가치를 좇되, 항상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자칫 심취해 편향적인 시각을 지니게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사대주의 비슷한 사고방식이 자라게 되기 때문이죠. 무엇이 우월하고, 무엇이 저열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빈티지 물품이 지니는 헤리티지는 언제나 현대적인 것과도 이어져 있어 현대 아이템과의 접점을 탐구하는 것이 수집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빈티지 안경, 추천 아이템 Q&A


Q 빈티지 안경,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A 안경도 유명 스타나 역사적인 인물이 쓰면 트렌드가 되고, 디자인적으로 터닝포인트가 된 디자인이 빈티지 안경으로서 가치가 날로 올라가서 수백, 수천 달러를 호가하기도 합니다. 유명인사로 인해 유명세를 치른 안경을 예로 들면 빈티지 안경 애호가인 조니 뎁이 썼던 타르트 옵티컬의 아넬, 말콥X가 착용했던 아메리칸 옵티컬의 서몬트, 그리고 존 F. 케네디가 썼던 선글라스 사라토가 등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 빈티지라면 배우 사라 코너가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쓰고 나왔던 마츠다의 2809 모델 정도가 있고요. 이런 아이템은 안경을 처음 수집하는 단계에서 접근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Q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컬렉션이 있다면.


A 미국 3대 브랜드 중 하나인 아메리칸 옵티컬의 제품 중 1910~1930년대에 제작됐던 12K 화이트 골드 필드(white gold-filled) 금장 공법 프레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코 받침이 10K, 혹은 14K 골드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며 안경이 대중화되기 직전의 마지막 럭셔리 모드의 안경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그 의미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우스 브랜드 제품으로는 일본 브랜드인 그루버를 추천합니다. 에도시대에 서양의 안경 제작 기법이 처음 들어온 도쿄의 안경 제작의 맥을 잇는 마지막 장인인 와타나베가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역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빈티지 안경, 투자로서의 가치도 지닐 수 있을까.


A 투자로서의 가치는 아직 물음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빈티지 안경이라고 해도 아무리 비싸야 수백만 원인데, 투자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유물급 안경을 수집했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갖는 관심이 적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가치 상승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1940년대 미국의 검안 세트다. 테스트 렌즈들과 시력검사용 안경
1940년대 미국의 검안 세트다. 테스트 렌즈들과 시력검사용 안경

1800년대를 대표하는 안경들. 템플(안경 다리)이 각각 슬라이딩 템플, 턴핀(turn-pin) 템플. 현대 안경과 달리 눈동자 크기와 렌즈구경 크기가 흡사한 형태다. 케이스는 1920년대 바슈롬의 안경 케이스, 책은 1890년대에 출간된 안경 관련 서적.
1800년대를 대표하는 안경들. 템플(안경 다리)이 각각 슬라이딩 템플, 턴핀(turn-pin) 템플. 현대 안경과 달리 눈동자 크기와 렌즈구경 크기가 흡사한 형태다. 케이스는 1920년대 바슈롬의 안경 케이스, 책은 1890년대에 출간된 안경 관련 서적.

19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안경들. 12K 화이트 골드로 금장 도금, 코 받침은 14K 금으로 돼 있으며 안경회사에서 고용한 보석세공사들이 아트 누오보(art nouveau) 문양을 촘촘히 새겨 넣은 럭셔리 모드의 안경들. 위 제품은 아메리칸옵티컬(AO)의 티볼리 모델. 피콕스 테일 브리지(Peacock’s tail Bridge) 혹은 크라운 브리지(Crown Bridge)라 불리는 디테일이 특징이다. 아래 제품은 같은 AO의 윈저(Windsor) 모델.
19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안경들. 12K 화이트 골드로 금장 도금, 코 받침은 14K 금으로 돼 있으며 안경회사에서 고용한 보석세공사들이 아트 누오보(art nouveau) 문양을 촘촘히 새겨 넣은 럭셔리 모드의 안경들. 위 제품은 아메리칸옵티컬(AO)의 티볼리 모델. 피콕스 테일 브리지(Peacock’s tail Bridge) 혹은 크라운 브리지(Crown Bridge)라 불리는 디테일이 특징이다. 아래 제품은 같은 AO의 윈저(Windsor)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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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글라스라고 불리는 소형 망원경. 1800년대 프랑스의 살롱 문화나 오페라 극장에서 많이 사용되던 아이템으로 금, 자개, 터키석 등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각각 8단과 3단짜리 망원경이며 크기는 접어 놓으면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정도. 단이 많을수록 고가의 물건이다.
스파이글라스라고 불리는 소형 망원경. 1800년대 프랑스의 살롱 문화나 오페라 극장에서 많이 사용되던 아이템으로 금, 자개, 터키석 등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각각 8단과 3단짜리 망원경이며 크기는 접어 놓으면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정도. 단이 많을수록 고가의 물건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