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하는데 왜 소통은 어려울까

Enjoy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고민 상담 내용의 9할은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 갈등의 9할은 소통의 문제다. 소통이 막히면 우정도 날아가고 사랑도 떠나가고 비즈니스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말은 하는데 소통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여러 나라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능력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렇게 언어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도 소통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다. 여러 나라 말을 하다 보니 말의 깊이가 떨어져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평생 한 가지 말만 잘 사용해 그 말에 능통한 사람들은 그 말로 하는 소통에 능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말을 잘하는 것과 소통 능력이 따로 노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은 달변인데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마음은 닫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고민 상담 내용의 9할은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 갈등의 9할은 소통의 문제다. 소통이 막히면 우정도 날아가고 사랑도 떠나가고 비즈니스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말은 하는데 소통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다. 그에 비해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이다. 정의에 따르면 말은 소통을 위한 도구라 볼 수 있겠는데 우선 도구인 말의 기능이 떨어지면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내 생각이나 느낌을 충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같은 말을 써도 사람마다 표현력에 차이가 있기에 개인이 말을 사용하는 능력에 따라 소통 능력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앞에 언급한 것처럼 표현력이 출중한 언어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꼭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말의 기능이 훌륭하고 그 말을 사용하는 능력이 출중해도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소통이 어려운 이유로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마음의 존재가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단둘이 이야기해도 둘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상황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너와 나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과 저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합의점에 이르렀는데 이후에 행동은 전혀 다르게 각자의 길을 가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너와 나는 합의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은 서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마음, 생각, 그리고 행동 중 누가 힘이 제일 강할 것인가. 생각이 제일 힘이 강하다면 세상 사는 것이 엄청 쉬워질 것 같다. 정신과 의사도 필요 없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분이 나빠 만나고 싶진 않지만 비즈니스 때문에 꼭 만나야 되는 사람이 있는 경우, 생각이 마음에 좋게 생각하라 지시하니 마음이 좋게 변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만나러 가자고 행동 지시를 할 때 실행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억지로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하지만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기업에서 강의를 해 보면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란 질문에 손을 드는 사람이 10%가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육 진흥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기관에 가서 동일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무 궁금했다. 남을 운동하게 하는 게 전문가인 이 그룹은 얼마나 운동을 할 것인가. 슬픈 예상대로 10%를 넘지 않았다. 생각이 마음을 쉽게 조정할 수 없다 보니 행동도 원하는 대로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은 모두가 운동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싫어하니 되지 않는 것이다. 운동 전문가의 마음이 운동을 더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마음이 쓰는 말이 우리가 생각할 때 쓰는 언어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쓰는 언어를 슬쩍 볼 수 있는 시간이 꿈을 꿀 때다. 꿈을 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날도 사실 꿈은 내 마음 안에서 상영됐다. 그날의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뿐이다. 때론 기억나는 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은 어렵다라는 상식을 모두가 갖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매우 이상한 현상이자 능력이다.


‘이해불가의 꿈’이라는 영화를 매일 제작하는 엄청난 능력을 우리는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꿈을 빔 프로젝터로 쏠 수 있다면 예술가로서 한 번 겨룰 만한, 상징과 은유 체계의 예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예술 언어엔 창조적 잠재력이 담겨 있기에 멋진 일이지만 이런 말을 쓰는 마음이란 시스템이 내 안에 있으니 한글을 사용하는 내 생각과 소통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말은 잘하는데 왜 소통은 어려울까

“당신,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이혼해”라는 아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한 끝에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그나마 최선의 사랑이다’라고 생각한 상담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혼해 줄게”라고 이야기했다가 혼만 잔뜩 났다. 도통 아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고 소통이 어렵다고 고민한다. 내 마음도 내가 잘 알기 어려운데 상대방의 마음은 더 알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소통도 쉽지 않다. 아내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팁을 알려 달라고 해서 우선은 추측하지 말고 직접 아내에게 그 말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했다. 말을 이미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또 물어보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소통의 시작은 내 마음과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일단 내 마음을 이해해야 내 마음을 잘 담아 말할 수 있다. 담으면 안 될 마음의 내용인 것을 알아야 엉뚱한 이야기를 해 서로가 당황하게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내 마음과 대화하는 연습의 가벼운 팁으로 버킷리스트를 권한다. 2020년이 내 마지막 해라면 하고 싶은 것을 한 번 적어 보는 것이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슬프지만 마지막이 상징하는 죽음을 가끔 활용하는 것은 마음과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하지 못하더라고 적는 것만으로 내 마음을 조금 더 알 수 있고 그중에 할 만한 것 한 가지는 올해 ‘그냥 해(Just Do It)!’를 제안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