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 최고경영자(CEO)가 알아야 할 정보기술(IT) 트렌드’ 다섯 번째 주제는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협업의 장점이 무엇인지, 또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알아보자.
프랑스에는 비바테크놀로지라는 IT 스타트업 전시회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이 전시회는 BNP파리바(Paribas),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구글, 삼성 등 유수의 기업들과 창업을 막 시작한 풋풋한 스타트업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
특히 LVMH는 LVMH 혁신 어워드상을 수여하는데, 잠재력 있는 IT 스타트업을 발굴해 LVMH와 협업할 기회를 준다. LVMH가 어떤 회사인가.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펜디, 셀린느 등 기라성 같은 패션 브랜드를 거느렸고 2018년 매출액 468억 유로, 약 60조 원인 패션 대기업이다. 이런 패션 대기업이 스타트업, 그것도 IT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다.
골리앗과 다윗의 만남
요즘 사람들은 계속 사진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패션쇼에서도, 거리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느 곳이든지 쇼장이 된다. 패션 스타트업은 SNS에 올라오는 이미지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트렌드를 도출한다. 사진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어느 장소에서, 어느 시간에, 어떤 브랜드 옷을 입고 어떤 색상의 핸드백을 들고 어떤 재질의 구두를 신는지, 스타트업들은 발 빠르게 분석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다. 새로운 툴과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프로세스를 접목해서 말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컬래버레이션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바로 이런 새로운 재능과 유연한 사고를 벤치마킹해서 업무의 디지털 전환 및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스타트업들은 AI 분석 기술, 실험적 트렌드 분석 기술을 실제로 적용해볼 풍부한 플랫폼과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대기업 제조사–스타트업–예술계의 협업은 국내 사례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9년 9월 26일, 스타트업 관계자 및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콘퍼런스 겸 축제인 ‘제로윈데이 2019’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예술가와 개발자, 스타트업 관계자가 각자의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다. 이종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보려는 시도다.
IT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패션, 예술 분야도 이렇게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데 하물며 정통 IT 분야는 어떻겠는가. 대기업 제조사와 IT 스타트업 간의 협업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와 아마존은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LG전자는 이스라엘 자율 주행 솔루션 업체와 미국 레이더 개발 스타트업과 손잡았다. 적극적인 협업과 투자로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대기업도, 스타트업도 둘 다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할까?
자, 그러면 대기업의 장점, 스타트업의 장점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어떤 스타트업과 협업을 해야 할까. 어떤 스타트업의 행보에 주목해야 할까.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잘하는 투자일까. 좋은 스타트업 알아보기, 5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① 엑셀러레이터들이 추천하는 스타트업인가?
엑셀러레이터란 창업 아이디어나 아이템만 존재하는 초기 단계의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해 업무 공간, 마케팅, 홍보, 전문가 연결 등을 지원하는 단체를 일컫는다. 보통 지원 프로그램이 끝나면 엑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이 언론과 투자자를 상대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demo day)도 마련해준다. 미국의 경우 훌륭한 엑셀러레이터들의 랭킹을 매기고 있다. 여기서 상위로 꼽힌 엑셀러레이터들의 추천을 받은 스타트업이라면 신뢰도가 올라간다.
KB금융은 2019년 8월부터 엑셀러레이터와 전문 기관으로부터 스타트업 100여 곳을 추천받아 서류,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 심사를 거쳐 KB금융이 지원하는 유망 업체를 최종 선정했었다. KB금융은 엑셀러레이터를 통해 주요 업종별 핵심 스타트업 리스트를 공유하고, 협업 및 투자할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② 엑셀러레이터들이 어느 분야를 육성하는가?
엑셀러레이터가 추천하는 스타트업 자체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엑셀러레이터가 주로 어느 업종에 투자하는지, 주로 어느 분야를 집중해서 육성·관리하는지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최신 트렌드와 유망 업종을 전망할 수 있다. 투자를 위해 돈이 소요되는 것이니 엑셀러레이터 회사 내부적으로 당연히 엄격하고 정밀한 거름망을 통해 최신 트렌드와 스타트업들을 분석하지 않았겠는가.
미국의 주요 상위 엑셀러레이터 중 하나인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가 성공시킨 주요 스타트업은 이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롭박스다. 이 회사의 주요 포트폴리오는 자율 주행, 로봇, 드론 무인자동화 서비스, 의료 및 바이오 분야다. 엔젤패드(AngelPad)라는 또 다른 상위 엑셀러레이터는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의료, AI, 데이터, 드론이 주력 분야다.
국내로도 눈을 돌려보자. 지난 2019년 9월 25일, 26일에 LG 스타트업 테크페어(LG Startup Tech Fair)가 LG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렸다. 40개의 유망 스타트업이 참여했고 LG는 그룹 차원에서 전자, 화학, 디스플레이, CNS, 유플러스 등 여러 계열사가 참여했다. 참여한 스타트업들의 기술 카테고리, 사업 카테고리는 무엇이 가장 많았을까. 이 카테고리를 분석해보는 것, 이 카테고리를 궁금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기술 트렌드가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40개 유망 스타트업 중 AI·빅데이터 12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5개, 로봇 3개, 자동차 3개, 바이오·헬스케어 6개, 기타 소재부품 11개였다. 역시나 위에서 말한 미국의 영향력 있는 엑셀러레이터들의 포트폴리오와 거의 유사했다. 현재 어느 분야가 강력히 뜨고 있는지 이 정도면 객관적인 방증이 된다. 그렇기에 이 분야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③ 가볍고 민첩한 스타트업인가?
“일을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의에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일단 필수 기능만 갖춘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출시한다. 그다음 제품이 많이 팔리는지, 고객들이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고객의 제품 실제 사용 방식과 시장 반응 결과를 토대로 재빠르게 설계를 바꾼다. 이제 다시 제품을 출시한다. 기능 1.0 출시와 운영에서 기능 2.0 출시와 운영까지 진행 속도가 아주 빠르다.
소프트웨어(SW) 회사가 쓰는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이다. 린스타트업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경영 방법론의 일종이다. 린스타트업은 ‘만들기→측정→학습’의 과정을 짧은 사이클로 반복하면서 꾸준히 혁신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스마트폰에 설치된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은 또 어떤가. 요즘 앱들은 새로 나온 버전을 따로 광고하거나 예고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와이파이(Wi-Fi)를 통해 자동으로 업데이트된 앱을 만난다.
“어? 사용자인터페이스(UI)가 바뀌었네?”
“앗! 필요했던 기능인데 이 기능 추가됐네?”
“버튼이 원래 맨 아래 있었는데, 오늘부터 버튼이 맨 위로 나왔네?”
“로딩 기다리는 동안 지난 회 영상클립을 요약해주네? 처음 본다, 이거.”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앱을 써보면서 업데이트된 기능을 체험한다.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소비자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습성은 대기업, 스타트업을 불문하고 최근 많이 보이는 트렌드다. 멈추지 않고 수시로 순환하고 자가 발전하는 민첩성은 특히 스타트업의 최대 장점이며 스타트업들이 잃어서는 안 되는 특성이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최소 요건 제품(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의 반응을 통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바로 바로 반영하는 전략이 이 민첩성과 가벼운 몸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④ 가치 있는 기술을 가졌는가?
어떤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이 얼마나 최신인지를 열심히 어필한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말이다. 가치혁신은 기술의 독창성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에 대한 혁신과 결부돼 있다. 기술혁신만으론 소비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구글 글라스를 기억하는가. 1500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도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불편한 착용감과 조작 방식,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제품이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믿음으로 기술에만 매달린다면 상업적 실패라는 큰 비용을 대가로 지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의미 있다고 여길 본질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2014년 아마존이 내놓은 파이어폰은 또 어떤가. 전방에 120도 카메라 4개를 달고 스크린에 보이는 이미지의 각도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꼭 3차원(3D)으로 봐야만 하는 콘텐츠의 부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소비자들은 이 파이어폰을 ‘굳이 필요는 없고, 자랑할 때만 쓰는 폰’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앱 개발자들의 참여가 저조해 파이어폰 유저들은 파이어폰에서 필요한 앱을 바로 찾기도 어려웠다. 파이어폰은 13개월 만에 단종되고 2014년 3분기 아마존에 4억3700만 달러 손실을 안겼다.
이처럼 단순히 최신 기술, 남들에게 없는 기술이라는 점만으로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점만 강조하고 비즈니스 가치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협업이나 투자를 재고해야 한다.
⑤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가?
대기업이나 거대 자본이 스타트업의 비전. 열정, 혁신만 보고 막대한 돈을 거리낌 없이 베팅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계속되는 적자로 휘청거리고 있다.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인 위워크는 2019년 상반기 매출 15억3000만 달러에 영업손실 3억7000만 달러였다. 매출 원가와 판매, 관리비용이 매출의 2배여서,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해외 시장 진출 실패와 대규모 적자가 겹쳐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어떤 기업이 얼마나 탄탄한지, 얼마나 견실한지 기업가치를 숫자로 보여주는 것은 결국 수익성이다. 그럼 어떤 스타트업이 얼마나 수익성이 있을지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피치덱(pitch deck)이라는 것이 있다. 스타트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회사 비즈니스 모델 설명 자료다. 스타트업들의 피치덱을 살펴보면 스파트업이 수익을 어디서 얼마큼 낼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스타트업이라면 수익성 창출을 위해 다음과 같은 2가지를 피치덱에 꼼꼼하게 분석해 두고 실행에 옮긴다.
먼저 고객을 최대한 세분화하고 또 세분화해서 지리적 변수(도시 규모, 지형적 특성, 거주 지역), 인구통계 변수(연령, 성별, 소득, 교육), 심리 변수(라이프스타일, 성격), 행동 변수(구매 계기, 사용 빈도, 사용량)를 분석한다. 왜냐하면 고객을 세분화하면 세분화할수록 비즈니스 모델이 정교해지고 예산, 비용 계획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둘째로 타사 대비 경쟁력이 무엇이며, 그 경쟁력이 얼마간 지속될지 분석했는지도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성공했더라도 파워와 규모를 가진 경쟁자들이 스타트업을 금방 모방하고 따라올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대책을 세워 둔 스타트업이라면 믿을 만하다.
“기존 사업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하면서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앉아서 재난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이제, 다른 방식을 시도해볼 때다.
정순인 책임연구원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에서 오토모티브(Automotive) SPICE 인증과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SW Engineering), Technical Documentation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2016~
2017년 연속 최우수 강사상을 수상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다룬 책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를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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