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한동안 종신보험 열풍이 불었다. 그 결과 이제는 사후에 남는 가족들을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한편으로는 상속세를 내는 재원으로 생명보험이 언급되기로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수년째 생명보험 계약이 증가하면서 상속재산분할 재판에서 종종 생명보험금이 상속재산인지 여부가 문제되기도 했다. 생명보험은 그 특성상 계약자와 피보험자, 수익자가 모두 다를 수 있다. 계약자가 특별히 고심해서 내린 것이 아니라 설계사의 권유나 혹은 만연히 적은 문구로 인해 상속인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보험 계약자 사망 후 계약자 지위의 변동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7다235647 판결)이 선고됐다. 이 글에서는 이 사례를 중심으로 생명보험이 상속 분쟁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법리적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사례의 대법원 판결에서 사실관계는 이렇다. 망인은 생전인 2012년 11월 21일 보험자인 피고 보험사와 2개의 연금보험(이하 순서대로 ‘제1연금보험’, ‘제2연금보험’이라 한다) 계약을 체결하고, 그 무렵 피고 보험사에 제1연금보험료 6억9460만 원을, 제2연금보험료 4억9660만 원을 전액 일시불로 지급했다.
제1·2연금보험은 상속연금형으로 ① 각 피보험자인 원고 1이 만 50세, 원고 2가 만 49세에 이를 때까지 생존하면, 피고 보험사가 보험 계약자이자 보험 수익자인 망인에게 매월 일정액의 연금(제1연금보험에서 정한 연금은 약 200만 원, 제2연금보험에서 정한 연금은 약 150만 원이다)을 지급하고, ②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법정상속인에게 ‘7000만 원(제1연금보험) 또는 5000만 원(제2연금보험)과 사망 당시 연금 계약 책임준비금을 합산한 금액’을 지급하는 보험이다. 결국 제1·2연금보험 계약은 망인이 보험 계약자 겸 살아 있는 동안은 보험 수익자이고, 각 연금보험 계약의 피보험자인 원고 1 또는 원고 2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법정상속인들이 일시금의 보험 수익자다.
제1·2연금보험 약관 제6조는 계약 내용의 변경 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① 계약자는 회사의 승낙을 얻어 다음 사항(1호: 기본보험료, 2호: 계약자, 3호: 기타 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승낙을 서면으로 알리거나 보험증권(보험가입증서)의 뒷면에 기재해준다(제1항). ② 계약자는 보험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회사의 승낙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계약자가 보험 수익자를 변경하는 경우 회사에 통지하지 않으면 변경 후 보험 수익자는 그 권리로써 회사에 대항하지 못한다(제2항). ③ 계약자가 제2항에 따라 보험 수익자를 변경하고자 할 경우에는 보험금의 지급 사유가 발생하기 전에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제4항).
망인은 제1·2연금보험 계약에 따른 보험금을 수령하던 중인 2013년 9월 27일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다.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에는 망인이 원고 1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하고, 피고 회사에 가입한 제1연금보험 계약의 즉시연금보험금을 원고 1에게, 제2연금보험 계약의 즉시연금보험금을 원고 2에게 유증한다고 기재돼 있고, 제1·2연금보험의 보험증권 사본이 첨부돼 있다.
망인은 2014년 2월 2일 사망했고, 상속인으로는 배우자와 원고들 2명을 포함한 6명의 자녀들이 있다. 피고 보험사는 2014년 3월경부터 원고들에게 제1·2연금보험에 따른 연금보험금(생전의 망인에게 지급하던 연금보험금)을 매월 지급했다. 원고들은 망인이 사망한 이후 피고 보험사에 제1·2연금보험의 계약자를 원고들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피고 보험사가 이를 거절하자, 본인들이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에 따라 제1·2연금보험 계약의 보험 계약자 지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보험 계약자 지위의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보험 계약과 지위 변경 조건
제1심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즉, 유증의 대상으로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 상단에 ‘연금보험금’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바로 그 아래 ‘보험증권, 연금보험, 보험증권번호, 피보험자’를 상세하게 기재했고, 제1·2연금보험 계약의 보험증권 사본이 첨부돼 있었으므로, 연금보험 계약자인 망인이 피보험자인 원고들에게 유증을 한 것은 제1·2연금보험 계약 자체를 이전하려고 한 것이고, 보험 계약자 변경에 보험자의 승낙을 얻도록 한 규정은 보험자의 지위가 불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이와 같이 유증에 의해 보험 계약자 변경이 있다고 해 보험자에게 불리할 것은 없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피고 보험사가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원고의 형제, 자매 2인이 피고 보험사에 보조 참가했다. 그리고 항소심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 1이 제1연금보험의 계약자 지위에, 원고 2가 제2연금보험의 계약자 지위에 있다는 확인을 구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했다.
① 제1·2연금보험의 약관 제6조가 보험 수익자 변경과 달리 계약자 지위 변경을 위해 피고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험 계약자가 피고의 승낙 없이 유증과 같은 일방적인 의사 표시만으로 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할 수 없다. ② 피고의 승낙 없이 자신의 일방적인 의사 표시만으로는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망인은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원고들에게 유증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연금보험금에 관한 권리를 유증하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 유언공정증서의 문언에 부합하고 합리적이다.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에 유증의 대상을 ‘즉시연금보험금’이라고 기재했는데, ‘연금보험금’과 ‘보험 계약자의 지위’ 자체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어서 연금보험금을 연금보험 계약의 계약자 지위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에 반할 수 있다. ③ 이 사건 분쟁의 실질은 원고들과 다른 공동상속인 사이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보이는데, 공동상속인 중 2인이 원고이고, 다른 2인이 원고들의 계약자 지위 승계를 부인하는 피고 보험사에 보조 참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의 ‘연금보험금’이라는 문언을 보험 계약자의 지위 자체로 새기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④ 즉, 망인이 이 사건의 유언공증증서를 통해 원고들에게 유증한 재산은 제1·2연금보험에 기초한 연금보험금청구권이지, 제1·2연금보험상의 계약자 지위로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했는데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생명보험은 피보험자의 사망, 생존 또는 사망과 생존을 보험 사고로 하는 보험으로(상법 제730조), 오랜 기간 지속되는 생명보험 계약에서는 보험 계약자의 사정에 따라 계약 내용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생명보험 계약에서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변경하는 데 보험자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 계약자가 보험자의 승낙이 없는데도 일방적인 의사 표시만으로 보험 계약상의 지위를 이전할 수는 없다. 보험 계약자의 신용도나 채무 이행 능력은 계약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보험 계약자는 보험 수익자를 지정·변경할 수 있다(상법 제733조). 보험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일치하지 않는 타인의 생명보험에 대해서는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상법 제731조 제1항, 제734조 제2항).
따라서 보험 계약자의 지위 변경은 피보험자, 보험 수익자 사이의 이해관계나 보험 사고 위험의 재평가, 보험 계약의 유지 여부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생명보험의 보험 계약자 지위 변경에 보험자의 승낙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증은 유언으로 수증자에게 일정한 재산을 무상으로 주기로 하는 단독 행위로서 유증에 따라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하는 데에도 보험자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보험 계약자가 보험 계약에 따른 보험료를 전액 지급해 보험료 지급이 문제 되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유언 집행자는 유증의 목적인 재산의 관리 기타 유언의 집행에 필요한 행위를 할 권리·의무가 있다. 유언 집행자가 유증의 내용에 따라 보험자의 승낙을 받아서 보험 계약상의 지위를 이전할 의무가 있는 경우에도 보험자가 승낙하기 전까지는 보험 계약자의 지위가 변경되지 않는다.”
이 사건 유언공정증서의 ‘유증자산 및 부동산 목록’에는 ‘즉시연금보험금’이 기재돼 있었다. 이 의미가 수익자 지정 변경인지 아니면 계약자의 지위 이전인지 다툼이 됐는데, 이 사건의 항소심과 대법원은 보험 수익자의 지정으로 새긴 것이다. 보험 계약자로 인정되면 보험 수익자를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고, 보험 계약을 해지해 해지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이 피고 보험사로부터 매월 연금보험금을 지급받았음에도 보험 계약자의 지위 확인을 구한 것은 어쩌면 보험 계약을 해지하고 해지환급금을 일시금으로 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초 보험 계약자는 망인이고 이 사건 유증으로 원고들은 보험 수익자로서 연금보험금을 유증받았을 뿐이며, 보험 계약자의 지위는 원고들을 포함한 망인의 상속인들에게 공동으로 상속됐다.
만약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변경하는 유증을 했다고 하더라도 보험자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망인이 진정으로 원고들에게 보험 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하고 싶었다면, 생전에 보험사에 보험 계약자 변경을 요구했어야 하고, 유언으로 계약에서 정한 보험자의 승낙 요건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고 보험 계약자의 지위 그 자체를 유증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사건 판결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한편 대법원은 “보험 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상속인을 보험 수익자로 해 맺은 생명보험 계약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상속인은 피보험자의 사망이라는 보험 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보험 수익자의 지위에서 보험자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이 권리는 보험 계약의 효력으로 당연히 생기는 것으로서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 재산이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례에서 원고들이 수령하는 연금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므로, 만약 원고들이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해 수리가 됐다고 하더라도 이와 별개로 수령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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