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소비는 곧 그 사람의 거울이다. 어떤 물건을 어떻게 구입하고, 사용하는지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은 물론 취향, 더 나아가 가치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치소비 유형은 무엇이고,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되고 있을까.
#1 회사원 박지민(40) 씨는 최근 태국 치앙마이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이유는 자녀들의 코끼리 에코투어를 위해서였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치앙마이 코끼리자연공원에서 진행되는 1일 에코투어를 선택했다. 코끼리쇼나 트레킹처럼 코끼리에게 그 어떤 인위적인 행동을 시키지 않는 이 프로그램은 1인당 9만 원대를 훌쩍 넘기지만 만족도는 그 이상이었다. 아이들과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걸어 다니는 코끼리를 바라만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동물과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이들에게 코끼리를 즐기는 대상이 아닌 아껴줘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2 “2017년 여름 경북 영주 지역에서 발생한 우박으로 인해 많은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사과농가 피해가 컸는데 사과에 우박 자국이 나 상품성을 잃게 됐죠. 고민 끝에 저희 파머스페이스와 경북 영주 농가들이 협업해 우박 맞은 사과의 모습을 보조개로 빗대 ‘보조개사과’로 홍보하고, 온라인 마켓과 지역 유통업체에 판매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고객들께서 힘든 농가에 힘이 되고 싶다는 응원과 함께 구매 후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를 인정해주셨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환경오염, 상생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못난이 농산물 전문 유통 플랫폼 ‘파머스페이스’ 관계자

우리 사회 내 가치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가치소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히 따져 소비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이미 수년 전부터 소비 트렌드의 단면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단, 과거에는 이런 소비 움직임이 특정 소수에게서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일종의 메가트렌드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는 시장의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이 크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로 국내 전체 인구 대비 밀레니얼 세대의 비율은 약 22.2%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정보 검색에 능해 ‘스마슈머(스마트+컨슈머)’로도 불린다. 또 다른 특징은 ‘개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들의 소비 패턴을 따라가거나 과시적인 소비는 지양하지만 제품의 가격, 성능 외에도 공정무역이나 환경문제까지 꼼꼼히 따져 가며 자신만의 다양한 가치소비를 즐긴다.

국내 1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본인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소비하는 편”이라며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값만 보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가치나 스토리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와디즈에서는 기타 커머스와 달리 각 ‘메이커(판매자)’들의 스토리(제작 배경이나 이유 등)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데 그 진정성에 공감하는 서포터들의 펀딩 참여가 곧 매출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크라우드펀딩에는 증권형, 대출형, 기부형 등이 있다. 국내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와디즈과 텀블벅은 후원자에게 후원에 상응하는 물품을 제공하는 보상형이다. 와디즈가 테크·가전 분야, 텀블벅이 문화예술 분야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와디즈는 매해 200~300% 이상 꾸준히 성장, 최근에는 누적 펀딩액이 2000억 원을 돌파했다. 가치소비에 대한 서포터들의 경험과 펀딩에 대한 만족감들이 선순환으로 이어져 꾸준히 새로운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고 참여하는 서포터가 늘어나고 있다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관계자도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구글링이나 소모임을 통해 빠르게 학습하고, 취향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세대”라며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뿐 아니라 스스로 이러한 브랜드를 창출하고 탄탄한 팬덤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이들이 생산과 소비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치 있는 것이 ‘힙’하다
2035세대가 가치소비를 소비하는 유형은 다양하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스스럼없이 지갑을 여는 이들은 명품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시장에서 32%에 불과했던 Y·Z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 파이 세대)의 영향력은 2025년 55%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이들이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하던 명품 브랜드들은 잇달아 온라인 매장을 열고 있다.

하지만 명품에 대한 애정보다 이들이 더욱 주목하는 것은 상생의 가치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과 사용 처분 등을 모두 고려한 책임 있는 소비를 함으로써 사회·환경적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가령,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공정무역은 물론 환경, 더 나아가 연대의식에도 손을 내민다.

그중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의 ‘필환경시대(green survival)’가 대표적이다. 환경을 고려한 소비는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 아닌 필수가 됐다. 생태계가 생태 작용, 기능, 생물 다양성, 생산을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지속가능성(sustainable)’은 현재 모든 산업군을 아우르는 주제로 패션, 뷰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학생 A(23)씨는 최근 홍대 인근에 ‘파타고니아(Patagonia)’와 ‘프라이탁(Freitag)’ 등을 판매하는 한 편집매장을 찾았다. 쉽게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후드티셔츠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A씨는 파타고니아가 재활용 소재로 의류를 제작하고, 매출의 1% 이상을 자연환경 보존에 사용된다는 점에 마음이 동했다고. 그는 “후드티셔츠 가격이 기타 SPA 브랜드들에 비해 꽤 비싼 편이지만 질도 좋고,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해당 매장의 관계자 역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가치소비가 늘면서 2, 3년 전부터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가치소비가 일종의 ‘힙’한 코드로 읽히기도 하는 것 같다. 매장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 많다. 요즘은 멋쟁이 중장년들도 종종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영국 프레시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도 윤리적 마케팅으로 가치소비자들의 구매를 자극했다. 러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이를 중단하도록 적극적인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다. 재활용된 플라스틱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어진 ‘블랙 팟’에 제품을 담고, 이를 여러 개 모아 매장에 반납할 경우 수만 원에 이르는 제품을 증정한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커지며 러쉬는 지난 4년간 국내 매장에서 연평균 26% 이상씩 성장했다.

홍대 러쉬 매장의 한 관계자는 “손님들 중 소위 ‘충성 고객층’이 많은데 러쉬가 지닌 가치를 높이 사고, (사용하다 보니) 천연 소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과 질에 매료되는 것 같다”며 “다른 제품군과 비교했을 때 ‘대체 불가능한 제품’이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연대의식을 소비로 나누다
소비를 통한 연대의식의 확산도 눈에 띄는 풍경이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가치소비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활발히 이뤄진 결과이기도 하다. 기부가 아니더라도 내가 소비하는 행위만으로도 공익에 보탬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셈이다.

(주)소셜에코 관계자는 “가치소비에 대한 중요성이 매스컴을 통해 꾸준히 논의되면서 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소비자들 중 사회적 기업 제품이나 공정무역 제품이기 때문에 꾸준히 구매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각종 크라운드펀딩이나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연대’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소비 사례가 많다. 텀블벅에서 진행된 ‘사육곰에게 더 나은 삶을! 곰 보금자리’ 펀딩이 대표적이다. 이 펀딩은 사육곰을 구조하고, 사육곰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수의사, 훈련사, 변호사, 예술가, 학생,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결성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단체에 대한 후원 펀딩이다.

이들은 웅담 채취를 위해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당하는 곰들의 비극을 끝내기 위한 ‘생추어리(santuary: 야생동물 보호시설)’를 마련하고자 반달곰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9일부터 시작된 이 펀딩은 한 달여 만에 727명의 후원자가 1575만3000원(목표 금액의 525% 달성)을 후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주변 이웃을 돕는 훈훈한 마음이 돋보였던 사례도 있다. 와디즈에서 진행된 ‘강원도 고성산불에서 살아남은 기적. 아버지의 노가리스틱’의 경우가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강원 고성 산불에서 아버지의 노가리 공장이 불에 타 희망이 없어진 상황에서 펀딩을 준비하고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재건과 희망의 의미를 담아 응원하기 위해 마치 기적처럼 창고에 남아 있는 노가리를 가지고 이를 와디즈 펀딩으로 올려 펀딩에 성공했다.

당시 모금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펀딩에 참여하는 서포터들의 단순히 구매가 아닌 이웃을 향한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크라우드펀딩의 사회적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같은 가치소비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확실한 장밋빛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미래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2035세대 가치소비
가치소비 어디서 시작할까


와디즈 Wadiz
라이프스타일 투자 플랫폼 와디즈는 2012년 5월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기업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회사로, 금융위원회로부터 2016년 1월 정식 인가를 받았다. 와디즈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투자)과 보상형 크라우드펀딩(리워드)을 운영하고 있으며, 스타트업과 문화 콘텐츠를 시작으로 식품, 여행 등 펀딩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1만2000건, 총 2100억 원 규모의 펀딩을 주관했다. 특히 올해 10월에는 ‘2019 레드헤링(Red Herring) 아시아 100대 기업’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합리적인 가격 제시로 펀딩에 성공한 국민라이더 자켓과 베이직북 14.]

텀블벅 Tumblbug
2011년 1월 설립된 텀블벅은 국내 최초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창조적인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창작자가 인터넷과 기술을 통해 손쉽게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며, 남부럽지 않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 기준 70만 명의 후원자가 모였으며, 전체 누적 모금액은 약 700억 원 이상을 기록했다.
[(위쪽부터) 사육곰에게 더 나은 삶을! ‘곰 보금자리’ 펀딩과 위안부 배지 손거울 펀딩]

파머스페이스 Farmerspace
[우박 맞은 사과의 모습을 보조개로 빗대 ‘보조개사과’]
파머스페이스는 못난이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동시에 흠이 있는 농산물을 식음료 업체나 음식점 등에 납품하는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버려질 위기에 놓인 과일로 만든 주스를 파는 가게 ‘열매가 맛있다’도 운영한다. 특히, 가공 업체가 파머스페이스 홈페이지의 ‘도와줘’ 플랫폼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과 용도를 입력하면 파머스페이스는 48시간 안에 가장 적절한 농가를 매칭해준다.

소셜에코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소셜벤처 등 사회적 경제 제품과 공정무역 상품을 전문적으로 홍보하고, 유통하는 마켓이다. 카페 형식의 오프라인 매장 스토어(store) 36.5 오이도역점 운영을 시작으로 스토어 36.5 정왕지점과 별별마켓(온라인 매장)을 확장 오픈해 사회적 경제 제품을 위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달에 한 번 청소년과 한부모 가정 아동 총 15가구에게 ‘별별꾸러미’라는 사회적 경제 제품으로 구성된 나눔박스를 제공한다.

프라이탁 Freitag
지난 1993년 설립된 ‘프라이탁’은 트럭용 방수 덮개를 ‘업사이클링’해 가방을 만들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upgrade’와 ‘recycling’의 합성어로 전혀 다른 쓰임으로 재탄생시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프라이탁은 고가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40만여 개의 굿즈를 판매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는 차별화를 둔 디자인으로 ‘희소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환경보호라는 ‘사용 가치’가 더해진 것이 인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파타고니아 Patagonia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머스트해브템’으로 불리는 등산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새로 사는 것보다 오래 입어라’는 모토를 앞세우며 의류를 소유재로서 인식하길 촉구하며 자사 브랜드 제품을 직접 수선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품의
약 70%는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지며 전 제품의 30%를 공정무역으로 생산하고 있다. 또 오는 2025년까지 공장 전력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등 환경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인정받아 최근 유엔환경계획이 주최하는 지구환경대상의 기업가 비전 부문을 수상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