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대리와 90년대생 사원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에 속하는 이들이다. 밀레니얼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인구통계학자인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발행한 저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Generations: The History of America’s Future)>에 처음 등장했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들을 통틀어 지칭하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전환점에 태어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가장 인기 있는 경영 컨설턴트인 캐나다 출신의 돈 탭스콧은 밀레니얼 세대를 두고 ‘천년의 끝에 태어나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 갈 세대’라고도 불렀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다. 더불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누렸던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번째 세대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의 경제는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에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부유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수축될 시기에 밀레니얼 세대가 태어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만이 지닌 경제적인 관념은 이에 기인한다. 부모 세대만큼 열심히 일해도 그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한국만 하더라도, 평생 뼈 빠지게 일해 봐야 서울에 집 한 채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자 밀레니얼 세대는 ‘가심비’나 ‘소확행’ 같은 소비 트렌드를 보인다. 당장의 궁핍함은 참기 힘들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준치는 높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절약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 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이자 디지털 네이티브
미국의 정통한 세대 전문가인 린 랭카스터와 데이비드 스틸먼은 그들의 저서 <밀레니얼 제너레이션(Millennial Generation)>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7가지를 ‘M팩터(M-factor)’로 정의했다. 이는 부모(parenting), 권능감(entitlement), 의미(meaning), 높은 기대치(great expectations), 빠른 속도(the need for speed), 소셜네트워킹(social networking), 그리고 협력(collaboration)이다. 간추리자면,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와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상의하고,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었기에 권리에 대한 요구가 당당하며, 삶에서 의미를 찾고 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또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에 능숙해 빠른 속도를 당연시하며 차원이 다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수평적인 정보 공유와 협력을 당연시하고 팀워크에 익숙하다.
미국의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는 그의 논문에서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 칭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청소년기부터 디지털 환경과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디지털 기술이나 언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랭카스터와 스틸먼이 제시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적용되는 이유는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정보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미디어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2001년 발생한 9·11테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 2008년 세계 경제위기 등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좋아하는 우상들을 찬양한다.
탭스콧은 그의 저서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이 세대들의 특징을 정의했다. 그들은 자유를 중시하며, 개성에 맞게 맞춤 제작하고, 무엇이든 철저하게 조사하며, 약속과 성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협업에 익숙하고, 일도 놀이처럼 즐기려 하며, 빠른 속도를 좋아하고, 혁신을 사랑한다. 랭카스터와 스틸먼이 제시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다 같은 밀레니얼인가
밀레니얼 세대를 한데 묶고 그들이 같은 가치관과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한다고 정의한다면, 80년대생 대리와 90년대생 사원의 마찰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80년대생과 90년대생을 같은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그 사이에 정보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90년대생 사이에서도 9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들과 후반에 출생한 이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정도. 미국의 퓨(Pew)리서치센터 역시 밀레니얼 세대를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로 정의했다. 현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던 9·11테러에 대한 기억이 있고,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는 시기에 성장해 이에 적응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임홍택 작가의 저서 <90년생이 온다>에 따르면 80년대생과 90년대생의 공통점은 낮아진 출생률밖에 없다. 1981년 인구증가억제 종합시책이 채택된 이후 1983년에 합계 출산율 2.06 이후로 한번도 2.0명을 넘은 적이 없다. 80년대생들은 보통 둘 이상의 형제자매가 있는 반면, 90년대생은 그런 경우가 훨씬 드물다는 것이다.
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을 구분 지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80년대생과 90년대생의 차이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낮아진 취업률과 경력 위주로 뽑는 채용 형태, 상시 구조조정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이뤄지는 사회적 현상들은 90년대생들에게 진학과 취업, 진로와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이며 정시 출근과 퇴근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며, 워라밸을 실천하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와 같은 책에 열광한다.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의 저자인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본격화되는 세대가 바로 90년대생이라고 설명한다. “80년대생만 해도 기존 선배 세대의 가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면이 있었지만 90년대생부터는 뚜렷한 밀레니얼 특징을 가집니다. 심지어 80년대생 직속 선배를 '젊은 꼰대'라고 부르며 자신들과 분리하려는 경향까지 보여요. 80년대생이 대놓고 ‘개인주의’, ‘재미 추구’, ‘워라밸 중시’ 등을 내세우기 어려워했다면 90년대생은 거침없이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릅니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80년대생 김영 씨는 자신이 일했던 로펌의 90년대생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제가 일했던 로펌에서 변호사들은 70년대생, 80년대생이었는데 직원들은 90년대생이었어요. 80년대생 어쏘 변호사들은 군말 없이 야근과 주말 출근을 감당했지만, 90년대생 직원들은 본인이 왜 힘든지에 대해 1번, 2번, 3번 목차를 달고 4번 결론으로 끝맺어 서면으로 파트너 변호사에게 제출하더라고요. 90년대생은 불편한 점을 인지하고, 향후 개선책을 찾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인 것 같아요.”
방송계 프리랜서 작가인 호사 씨는 8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그는 90년대생들에게 인내심이라는 키워드를 접목했다. “개인적으로 90년대생들의 인내의 기준이 이전 세대보다 현저히 낮다고 봅니다. 때로는 미래를 위해, 조직을 위해 물러서고 삭히는 게 미덕이라고 배우며 사회생활을 할 때 어느 정도 참지만, 90년대생은 절대 참지 않는 것 같아요. 나름 참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기성세대의 기준에서는 한없이 모자라죠.”
80년대생들은 ‘낀 세대’라는 나름의 고충을 지닌다. 자신도 윗세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90년대생이 부럽고도 신기한 반면, 나쁘게 보면 건방져 보일 수 있는 그들의 자유로운 태도가 불편하기도 하다. 동시에 자신도 ‘젊은 꼰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후배들을 대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미 꼰대가 됐음을 인정한다.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90년대생이 생각하는 90년대생은 어떨까. 대기업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90년대생 김웅(가명) 씨는 90년대생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브랜드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소속된 조직에 따라 본인의 가치가 결정됐다면, 최근에는 ‘개인의 가치’가 가장 우선시되고 있죠. 이러한 개인의 브랜딩을 가장 먼저 맞이하고, 적응할 세대가 90년대생들로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여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세대나 그렇듯 자신의 세대가 제일 불쌍하고 힘든 세대다. 김웅 씨도 90년대생을 인력시장의 공급이 수요를 아득히 추월해 버린 비참한 세대라 표현한다.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90년대생 이하윤 씨 역시 동의한다. “90년대생은 버디버디나 싸이월드, 네이트온을 거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SNS에 완전히 노출된 세대입니다. 이 때문에 서로 비교하면서 상대방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남들이 평가하는 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결국엔 니 멋도 내 멋도 아닌 게 돼 버리는 것 같아요.”
갈수록 심화되는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 세대의 특징을 좌우한다. 90년대생을 직원으로 두고 있는 배 모 씨는 70년대생으로, 그 역시 직장 내에서 90년대생들과 일하며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일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6시에 ‘칼퇴’를 하는 모습이 솔직히 적응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기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0대 때부터 무한 경쟁 사회에 살아오면서 그들은 ‘내 것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졌다고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칼퇴는 당연한 것이고 또 권리이기도 하니,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을까요?”
사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의 특징을 숙지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80년대생도, 90년대생도 언젠간 자신이 꼰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세대로부터 오는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자 한다. 이 교수 또한 유연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지금 2000년대생이 대학에 입학합니다. 빠르면 4년 후에 조직으로 진입하겠죠. Z세대라고 불리는 다음 세대가 조직으로 들어온다면 조직문화는 또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직문화가 포용적이고, 그 안의 구성원들이 포용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어요. 차이를 갈등으로 만들지 않고 성장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선배 세대의 유연하고 포용적 자세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하기도 하고, 고용노동부가 저자인 임홍택 작가를 초청해 ‘공직사회 세대 간 소통’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린 후 20대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해 세트업 슈트를 선보였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편집숍과 국내 온라인 편집숍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기성세대가 실행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조직문화를 바꿀 힘이 있는 것은 선배 세대입니다. 더구나 앞으로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그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기존의 조직문화에 적응하라고 압력을 가한다면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선배 세대가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90년대생이 어려운 상사들에게
이제 막 들어온 신입사원과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 아래의 항목들을 잘 살펴보시길. 한 90년대생 사원이 선배와 상사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 전하는 몇 가지 말말말.
- 지시 전에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그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알아서 야근도 합니다.
- 업무가 틀렸다면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부드럽게 이야기해주세요. 90년대생은 자존감이 제일 높은 세대니까요.
-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면 그냥 답을 이야기하세요. 듣고 싶은 답이 나올 때까지 유도하지 마세요.
- 경험이 일천해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괜히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닙니다.
- 퇴근이나 휴가 등 행동에 대해 묻지 말아주세요. 별 이유는 없어요. 그냥 프라이버시입니다.
이동찬 기자 | 참고 서적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이은형 지음)·<90년생이 온다>(임홍택 지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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