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새로운 터전에 대한 갈망, 그 바탕에는 ‘행복지수’가 깊게 깔려 있다.
전 세계 부자들의 해외 이민이 가속화되고 있다. 자산리서치 업체 뉴월드웰스(New World Wealth, 이하 NWW)와 아프라시아(Afrasia)은행이 지난 4월 90개 국가와 150개 도시를 포함해 부와 부의 이동 추이를 연구·발표한 ‘2019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타국으로 이주한 백만장자는 약 10만8000명으로, 2017년 9만5000명보다 1만3000명 증가했다. 1년 새 14%나 증가한 것이다.
여기서 백만장자의 기준은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0만 달러(약 12억 원) 이상인 사람들로, 고액순자산보유자(high net worth individuals)를 의미한다.
호주, 미국 제치고 4년간 1위
백만장자가 가장 사랑한 국가는 어디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고액순자산보유자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국가는 호주다. 1만2000명이 호주 내 시드니와 멜버른, 골드코스트와 선샤인 코스트, 퍼스와 브리즈번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호주를 선택한 까닭은 지난 10년 동안 호주 경제가 꾸준하게 발전했고 치안이 안전하며 교육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또 기후도 좋고 인구 밀도도 낮아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호주에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이민 2세들이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할 수 있어 부자들이 전통적으로 이민국으로 선호한다.
2위에는 최근 불법이민자와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이 올랐다. 호주와 미국의 왕위 싸움은 오래됐는데 현재 4년 연속 호주가 1위다. 이 밖에 백만장자가 선택한 나라로 캐나다(4000명), 스위스(3000명)와 아랍에미리트(2000명), 카리브제도(2000명), 뉴질랜드(이하 1000명), 싱가포르, 이스라엘,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이 순위권에 올랐다.
이들 국가 역시 범죄율이 낮아 치안이 좋고 상속세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캐나다는 1970년대에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스위스, 뉴질랜드, 그리고 싱가포르도 상속세가 없어 부의 대물림이 가능하다.
10위권 내에서 아시아는 7위인 싱가포르가 유일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000명의 부유층을 맞이해 백만장자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사랑한 나라로 손꼽혔다.
그러나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아시아 지역의 강력한 성장에 힘입어 전 세계 부가 43% 증가한 2조1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모리셔스와 중국의 성장을 예고했다. 백만장자들이 더 많은 아시아 국가로 이주하는 것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들 국가가 백만장자의 선택을 받았다면 백만장자가 이탈한 나라도 있다. 고액순자산보유자들이 영주권을 박차고 나온 국가 불명예 1위에는 중국이 올랐다. 중국 내 백만장자 중 2%(1만5000명)가 지난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선택했다. 러시아와 인도가 2위, 3위로 뒤를 이었으며 터키와 프랑스, 영국, 브라질, 인도네시아의 갑부들 역시 이민을 결심해 고국을 떠났다.
자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를 결심한 데 치안과 세금이 전통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최근 이민 트렌드에는 ‘행복지수’도 있다. 부자들의 유입이 많았던 상위권의 국가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 보고서’의 10위권 내 4개국이 백만장자의 선택을 받은 나라와 동일했다.
스위스(6위), 뉴질랜드(8위), 캐나다(9위), 호주(11위) 등이다. 미국(19위), 스페인(30위), 싱가포르(34위)는 비교적 상위권에 랭크됐다. SDSN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등을 측정해 행복지수를 산출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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