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도 않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뉴스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새로운 일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가. 혹시 당신이 어제 올린 글에 누가 무슨 댓글이라도 달았는지 확인한 적은 없는가.
휴대전화는 애초에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개발됐다. 큰 가방에서 벽돌만 한 전화기를 꺼내서 무선으로 통화를 하는 사업가들은 부와 첨단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2007년 1월 출시된 애플사의 작은 휴대전화는 말 그대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목소리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결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그 작은 기계는 발달하는 인터넷 기술을 흡수하더니 우리의 일정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디지털 기술은 불과 10여 년 짧은 기간 동안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게 됐다. 이제 스마트폰은 일정관리,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은행 및 카드의 기능도 모두 탑재했다. 카메라와 앨범, 지도, 녹음기, 일기장도 가능하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클라우드’라는 곳에 내 자료가 모두 저장돼 있어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도 있다.
문서 작성이나 엑셀, 파워포인트 기능도 가능해져서 어릴 적 386·486·팬티엄 컴퓨터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폴로 우주선 발사 때 사용했던 컴퓨터보다도 기능과 용량이 뛰어난 기계를 손에 들고 다닌다. 전 세계 어디에 여행을 가더라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 수백 권의 책을 저장해서 들고 다니는 것도 가능해졌고, 필요한 정보는 언제라도 검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휴대전화가 없을 때보다 행복해졌나. 일과가 끝난 한가한 저녁에 직장상사가 업무 추진 상황을 묻거나 일을 지시하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짜증난 적은 없는가. 인터넷 화면과 페이스북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한번 마음에 둔 적이 있는 물건을 구매하라는 쇼핑몰 화면이 두둥 떠오르기도 한다.
식구가 마주앉은 식사 시간에는 각자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모습에 황당해하고, 가족들과의 대화에 집중할 것을 이야기해보지만, 정작 당신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출근길에도 혹시 울릴지 모르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액정화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길을 나선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제공하는 ‘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표’를 보자. 만약 아래 다섯 문항 모두에 해당한다면 디지털 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
❶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더 즐겁다.
❷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려고 해봤지만 실패했다.
❸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진다.
❹ 수시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적받은 적이 있다.
❺ 스마트폰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방해가 된다.
인간은 왜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는 걸까
디지털 중독이라는 말은 주로 스마트폰 중독을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 게임 중독 증상으로 인해 스마트폰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2014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500여 명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청소년상담연구’, 2014년 22호, 여지영 등)에 따르면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 즉 애착 불안이 높을수록 충동성이 높고 외로움도 크며, 스마트폰 중독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SNS 중독군은 게임 집단보다 애착 불안이 높을수록 스마트폰 중독이 더 크다고 한다. 또한 게임 중독군에서 SNS 집단보다 외로움이 스마트폰 중독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즉,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안정된 애착관계가 적고, 그 관계가 불안할수록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경향이 더 높다는 것이다. 불안정하고 결핍을 느끼는 현실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애착을 대신해 스마트폰을 통한 다수와의 연결성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는 그의 책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중년 남자들이 마음을 달랠 곳도 없고, 애정을 줄 곳이 없어서 스마트폰을 대신 만지작거리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 뇌의 반응 때문이다. 아기가 블록 장난감으로 뭔가를 만들어 놓고 엄마를 돌아볼 때, 엄마가 칭찬을 해주면 뇌 속에서 기쁨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느낌을 받기 위해 인간은 평생 동안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학생, 직장인, 정치인까지 누군가의 칭찬에 목말라 한다. 이것이 심리학적으로 말하는 ‘인정 욕구’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에 뭔가를 올리고서 ‘좋아요’ 표시에 집착하는 것은 왜일까? 현실에서 받지 못했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뇌 속에서 마치 엄마의 칭찬을 받은 것처럼 도파민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뭇해지고 약간 들뜨는 기분이 든다. 행복해지는 느낌이 드는 셈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이 쇼핑센터를 가로질러 도망치는 장면이 기억하는가.
잠깐 스쳐 가는 상점들 중에 한 중년 남자가 가상현실(VR) 속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박수와 찬사를 받고 흐뭇해하면서 “땡큐”를 연발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은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뇌도 건강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다.
인간관계 연결성의 결핍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건 왜일까. 인간은 누군가와 애착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영장류로 진화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전두엽이 발달한 것도 가족 혹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해 공감하고 눈치를 보는 것도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다. 현대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인간관계의 연결성(connectedness)’이라고 한다.
사람들과의 연결성이 희미해지거나 끊어지면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진행된다. 외로움은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뿐만이 아니라 신경염증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도 일으키기 때문에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나 심장질환, 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고독’을 다루는 장관이 따로 만들어져서 사회 문제로 다룰 정도다.
스마트폰은 실제 인간관계를 대신해서 아쉬운 대로 ‘연결성’의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도구다. 세상을 향한 연결 허브라고도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 전에도 신문이나 편지, 전화 같은 것들이 인간 사회의 연결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도구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생기고 나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성을 확인하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 없게 됐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라도 몇 초 사이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얼굴도 모르는,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라는 반응을 보낼 수가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보다 빠른 관계의 확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몇 날, 몇 달씩 답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누군가가 내 모습을 봐주기 바라는, 혹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올린 글을 누가 읽었는지를 알고 싶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바야흐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마음건강에 필요한 시대가 됐다. 아주 드물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엔 전화와 문자메시지 기능만 있는 전화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해도 일정관리 정도만 사용하고, 카카오톡이나 밴드, 페이스북 같은 SNS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은 불편할지언정 자신만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일정관리나 업무 진행을 위한 연락을 24시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업무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과 일의 효율 측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손해가 될 수 있다. 뭔가에 집중해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메시지의 알림음이 반복된다면 산만함과 집중력 저하 상태를 지나 인지적 피로감을 유발한다. 짜증과 참을성 저하에 따른 분노 조절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도대체 창의적이 될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주변의 디지털 기기와 단절을 선언할 수 있을까.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는 집 안을 정리하면 마음도 정리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집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듯이 스마트폰을 포함한 내 주변의 디지털 환경을 단순화하는 작업이다. 산만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명상을 하듯이 디지털 영역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책상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직접 실행에 옮겨보자. 전화와 메시지 프로그램, 일정관리 프로그램은 기본 프로그램이라 지울 수가 없다. 음악 듣기 프로그램은 일단 놔두고 신문보기 앱과 페이스북 앱을 지워보자. 생활에 도움이 된다 해서 설치했던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지난 6개월간 사용하지 않았던 앱들은 모두 삭제한다.
카카오톡이나 밴드 같은 메시지 앱도 지울 수 있을까. 이건 아마 사람에 따라 다를 터다. 혹시 일 때문에 지울 수 없다면 설정 화면으로 들어가서 알림이 울리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필요할 때만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이다. 회사와 일 때문에 도저히 메시지 앱을 삭제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주말이나 저녁시간에는 알림이 오지 않도록 설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알람을 끄고, 앱을 삭제하고 난 이후에는 한동안 연락과 알람이 없음에 대해 스스로 참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익숙해진 잦은 자극에 이미 적응된 상태이기 때문에 늘 들리던 알람이 오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마치 중독에 빠진 뇌가 술과 담배, 또는 도박을 갈구하듯이 인간은 다시 붐비는 스마트폰의 알람을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1~2주 정도의 참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적인 인간관계 연결을 위한 디지털 기술은 필수적이다. 가족 간에도 서로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현대사회에서 메시지와 SNS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필수적일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을 잘만 사용하면 고령화 사회의 외로움과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아주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린 디지털 기술을 다 거부하고 자연인으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공간이 온 세상에 겹쳐 있어서 굳이 손에 스마트폰 같은 도구를 들고 있지 않아도 늘 연결돼 있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으로 마음을 정리한 이후에 심심해진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기 이전에 당신이 하던 일들을 하는 습관을 다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행동이 당신과 당신의 뇌가 원래 하던 일이다. 당신이 원래 익숙했던 덜 바쁜 삶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배우자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는 것에 다시 익숙해지기를 권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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