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국내 은행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금융시장을 호령하던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미, 서울)’는 이젠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과거 M&A가 생존(부실자산 해소)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현재는 시장 지배력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의 주가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은행권 내에서 대장주 경쟁을 벌이는 KB금융의 경우 2018년 연초 대비 주가가 30% 이상 주저앉았고, 신한금융도 10%가량 빠졌다. 올 초 지주사로 전환한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경우 같은 기간 보합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각 지주사 산하의 은행들이 큰 폭의 실적 개선을 나타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흐름이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해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등 대외 악재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 단순히 외생 변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정부 규제+경쟁 격화…커지는 성장성 우려
국내 금융지주사의 이 같은 주가 부진은 성장성을 둘러싼 우려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우선 최근 수년간 증가세를 보여 온 은행 이자이익의 경우 주택 경기 부진과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정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주택담보대출 성장과 2번의 금리 인상으로 은행 이자이익은 2016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2017년 정부 규제 및 시장금리 하락에 따른 마진 하락 우려가 높아졌다”며 “올해부터 이자이익은 증가하겠지만 증가율은 둔화될 전망이어서 신규 이익 창출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국내 경기 악화에 따른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추가적인 순이자마진(NIM) 하락 압력을 받고 있으며,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약진도 기존 전통 은행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국내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실적 방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인데,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지름길이 M&A라는 분석이다.

최근 유진투자증권도 ‘4대 금융지주사 M&A 전략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년부터 금융권 M&A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관측의 배경도 조목조목 제시했다. 우선 국내 금융지주의 경우 대규모 영업력 및 자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신규 사업 진출 및 M&A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4대 금융지주(KB, 신한, 우리, 하나)의 경우 은행을 비롯해 카드, 손해보험 및 생명보험, 캐피털 등 금융권 전 분야에 걸쳐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은행 비중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M&A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실제 2018년 기준 4대 금융지주의 이자이익 비중은 74.9%로 금융 개방 수준이 낮은 중국(78.6%) 주요 은행 다음으로 높았으며, 일본(44%)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사들의 몸값(시장가격) 역시 인수 후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금융사의 경우 주가순자산비율(PBR) 1.0배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의 주가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사들의 낮은 PBR로 인해 인 수 가격 또한 1.0배 미만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커 인수자 입장에서는 염가 매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피인수 기업의 낮은 밸류에이션과 M&A 시장이 인수자 중심의 마켓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4대 금융지주가 M&A에 적극적일 수 있는 환경이다”라고 분석했다.

우리금융 ‘5조’ 실탄…M&A 태풍의 핵
사실 4대 금융지주는 최근 수년간 크고 작은 금융사를 인수하며 세(勢)를 불려 왔다. M&A 경쟁에 불을 붙인 곳은 KB금융인데,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리딩뱅크 탈환’을 외치며 지난 2014년 취임 직후부터 M&A에 시동을 걸어 옛 현대증권과 LIG손보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증권 헐값 매각 소송 등의 잡음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취임 3년 만에 신한금융을 제치고 리딩 금융그룹을 탈환하는 소기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전까지 M&A에 소극적이었던 신한금융이 지난해 말 2조 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오렌지라이프를 전격 인수한 것도 리딩그룹을 둘러싼 헤게모니 신경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M&A 경쟁을 주도했던 곳이 KB금융이라면 내년부터는 우리금융이 ‘태풍의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경쟁사들이 대형 M&A로 자본력을 소진해 온 것과 달리 우리금융의 실탄 동원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금융은 지난 2월 지주사 전환을 통해 자회사 출자 여력을 크게 확대했는데, 그 규모가 무려 5조 원을 상회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무리한 자본 투자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를 막기 위해 이중레버리지 비율을 130% 이하로 규제하고 있는데, 130%에 근접한 여타 금융지주와 달리 우리금융은 100.2%에 그치고 있다. NH투자증권(옛 우리투자증권)을 비롯해 삼성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의 시가총액이 4조~5조 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권사는 물론 보험사 인수 여력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별도로 우리금융은 최근 3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는 등 추가 실탄 마련에도 적극 나서고 있으며, 올해 우리은행 중간 배당(6760억 원)까지 포함하면 최대 1조 원의 자금 확충도 기대된다. 현재 우리금융의 M&A 행보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진두지휘하에 진행되고 있는데, 이미 우리금융은 동양·ABL자산운용과 국제자산신탁의 자회사 편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함께 롯데카드 인수에 성공하며 카드업계 수위권 도약의 발판도 마련했다.

손 회장은 지난 1월 지주사 전환 선포식 자리에서 “앞으로 1년 이내 규모가 작은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부동산신탁사 등부터 인수해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나가고, 2~3년 이내에는 1등 금융그룹으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김인 연구위원은 “우리금융의 경우 올해 지주사 전환에 따른 자본 비율의 일시적 하락 이후 2020년에는 재상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큰 증권사, 보험사에 대한 M&A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M&A 확대에 따른 실적 증가는 2020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점과 하반기 우리카드 자회사 전환에 따른 유상증자는 주가에 부담 요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우리금융의 공격적인 세 확장이 계속될 경우 경쟁사들 역시 견제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 지주사들의 경우 출자 여력에서는 우리금융에 못 미치지만 일부 취약 부문에 대한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내년 4대 금융지주의 M&A 출자 여력은 총 9조 원가량. 지주사별로는 우리금융이 4조6000억 원대의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는 가운데, 신한금융(2조1000억 원), KB금융(1조5000억 원), 하나금융(1조2000억 원) 순으로 추산됐다.

김 연구위원은 “4대 금융지주의 자회사별 손익 비중은 은행이 77%로 압도적인 수준”이라며 “공격적인 M&A가 필요한 우리금융 외에도 신한금융의 경우 손해보험업, KB금융은 생명보험업, 하나금융은 카드·보험업에 대한 M&A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