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19세기 말 서양이 가장 빛나던 시기.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가 탄생했으니. 이는 바로 동양의 문화를 오랫동안 연모해 피어난 꽃이었다.
동양을 연모해 피어난 공예의 꽃 ‘아르누보’
(사진) 정찬 세트. 아르데코 시대의 크리스털 디너 접시와 티파니 수프 접시. 그리고 아르누보 시대의 살구색 와인 잔, 커트러리 영국 셰필드 정찬 커트러리 세트(빅토리안), 맞은편 식탁 끝 아르누보 시대의 스털링 오버레이 저그와 화병.

우리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꽃과 새, 나비, 나무가 있는 자연에서 미학을 찾았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같은 기조여서 동양의 문화를 ‘화조문화’로 일컫기도 한다.

이러한 동양의 문화는 아주 오래전 로마시대부터 서양인들에게 비단과 함께 흘러 들어가 그들을 매혹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의 생성 시기가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오래전부터 동양의 문화가 서양으로 전해졌는가를 알 수 있다.

도자기 열풍, 동양 문화에 매료

이렇게 오랜 기간 꾸준하게 전해졌던 동양의 문화는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이르러서 서양의 왕족과 귀족들에 의해 매우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하나의 문화를 이루게 된다.

바로 로코코 시대의 배경 문화가 됐던 동양풍의 시누아즈리(chinoiserie) 문화다. 시누아즈리는 프랑스어로 ‘중국 취미의’라는 의미로 중국 도자기와 일본 공예품이 서양에 수입되면서 야기된 동양 문화에 대한 흠모에서 비롯된 열풍이었다.

18세기 전까지 서양은 중국과 같은 도자기 선진국에서 만들고 있던 고온에서 구워낸 고급 도자기를 제작하지 못했다.

게다가 17세기에 3가지 뜨거운 음료인 차, 커피, 초콜릿이 서구에 유입되면서 그들은 단단하고 깨끗한 중국산 도자기를 더욱 열망하게 됐다. 그리하여 중국으로부터의 도자기 수입이 더욱 가속화됐고, 도자기와 함께 수입된 동양의 여러 산물들이 서양을 매료시켰다.
동양을 연모해 피어난 공예의 꽃 ‘아르누보’
(사진_왼쪽부터) 에밀 갈레의 카메오 샐러드 볼(아르누보). 르네 랄리크의 오팔레슨트 샐러드 볼(아르누보).

당시 유럽의 열악한 식수 사정은 건강한 마실 것으로서 차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고, 차 문화와 함께 일어난 도자기 열풍은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야기시켰다. 왕족과 귀족들은 저마다 비싸게 구입한 도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도자기 방을 만들었고, 이러한 사회 풍조는 귀족의 재정적 궁핍을 초래해 결국 절대왕정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정치적 결과까지 낳게 됐다.

1748년 폼페이 유적의 발굴로 인해 유럽은 서양 문화의 본류가 그리스 로마에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이러한 인식에서 신고전주의가 풍미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시누아즈리 문화는 수그러들었다.
동양을 연모해 피어난 공예의 꽃 ‘아르누보’
(사진) 아름답게 핸드페인팅된 나비 손잡이의 트리오 티 잔 세트(아르누보).

하지만 빅토리안 시대 중반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일본 문화의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다시 동양 문화에 대한 열망과 추종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포니즘 시대의 나전칠기와 도자기, 병풍에 나타난 동양의 화조문화는 서양인들에게 이국적인 새로운 미학으로 다가갔다.

아르누보 시대에 이르러서 서양 문화는 더욱더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브에 열광하며 아름다운 선과 색을 유리공예 작품과 가구, 보석 등에 표현했다. 19세기 말에 나타난 ‘아르누보(art nouveau)’라는 예술사조는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등 모든 예술사조를 두루 차용하며 일관성 없게 집 안을 장식했던 빅토리안 시대에 대한 대안이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의 이름 그대로 새롭고 일체감 있는 예술을 표방했다. 자연에서 가져온 과하지 않은 파스텔 톤의 색조를 두루 쓰며, 곡선의 문양을 건축과 공예에 폭넓게 표현했다.
동양을 연모해 피어난 공예의 꽃 ‘아르누보’
(사진_왼쪽부터) 빅토리안 핸드페인팅 머그 잔. 스털링 트리밍의 에나멜로 핸드페인팅 된 센터피스와 티 잔(빅토리안).

아르누보에서 찾는 봄의 미학

아르누보 시대의 유명한 유리 공예가로는 르네 랄리크와 에밀 갈레를 꼽을 수 있다. 갈레는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옛 로렌공국의 수도인 낭시에서 활동해 ‘낭시파’로 알려졌으며 낭시는 아르누보 공예의 발생지로 여겨진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섬세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작품에 표현했다.

식물학에 식견이 높았던 갈레가 제작한 화병에 표현된 메뚜기나 나비는 금방이라도 현실 세계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기 그지없다. 그는 우리나라의 상감청자처럼 여러 겹의 유리를 덧붙이는 ‘카메오 기법’이라는 매우 특별한 유리공예 기술을 개발해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랄리크는 아르누보 시대와 아르데코 시대를 모두 섭렵하며 위대한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한 걸출한 예술가다. 랄리크 또한 동양의 화조 문양에 깊이 매료됐고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칠보와 파스텔 톤의 색조, 그리고 꽃과 나비, 잠자리와 학과 같은 동양적인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아르누보 시대에는 보석 공예가였으며, 아르데코 시대에는 유리 공예가로 활동하며 천재적인 예술적 감각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랄리크의 보석과 화병, 샐러드 볼 등의 유리 공예품은 지금도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되며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동양을 연모해 피어난 공예의 꽃 ‘아르누보’
(사진) 조선시대 향로상 위의 크리스털 에칭 위스키 잔(빅토리안).

19세기는 서양에는 위대한 시기였고, 나머지 대륙에는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어려운 시기였다. 서양이 가장 빛나던 시기였던 19세기 말엽에 생겨난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는 동양 문화를 오랫동안 연모해 피어난 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산업화, 그리고 대량 생산이라는 물결에 밀려 직선의 예술사조인 아르데코에 다음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아르누보의 아름다운 선의 미학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이 한창인 4월이다. 선이 고운 산당화 한 가지를 예쁜 화병에 꽂아 옛 소반 위에 올려놓고 찬란히 다가와 있는 봄의 미학을 즐겨보자.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