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병에 담긴 하나의 예술작품, 위스키.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는 빈 병도 하나의 예술이 된다. 위스키 빈 병에 대한 예찬론.
값비싼 위스키, 빈 병도 골동품
글로벌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 없는 것 없이 다 판다는 이곳에서도 모두를 놀라게 할 품목이 있다. 바로 ‘위스키 빈 병’란이다.

올 3월 17일 기준으로 이베이 위스키 빈 병 게시판에 게시된 품목은 총 2537개. 이 중 가장 값비싸게 거래 중인 빈 병 가격은 놀라지 마시라. 무려 1799달러, 한화로 약 205만 원이다.

1799달러.
PIRATE CLUB HIGH GRADE BLENDED WHISKEY Bottle.
값비싼 위스키, 빈 병도 골동품
이 고가의 빈 위스키 병을 내놓은 이는 미국인. 그가 쓴 상품 설명에 따르면 위스키의 출시일은 1905년으로 추정되며, 당시 독일의 이민자인 솔로몬 클린돌린거가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구단 ‘피츠버그 파이리츠(해적들이라는 뜻)’를 기념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상품 사진은 낡은 코르크마개와 일부가 찢어진 라벨이 돋보인다. 겉모습만 보면 재활용 쓰레기통에서나 볼 법하건만 판매자는 ‘야구 기념품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상품’이라며 ‘한 세기를 돌아온 야구 골동품’이라고 위스키 빈 병을 소개한다.

빈 병에 수십만 원 희귀·단종 상품 수요 증가

위스키 빈 병에 대한 탐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니카 위스키 다케스루 35년, 더 맥캘란 30년 등 유명 위스키 빈 병이 300~750달러(34만~85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위스키 빈 병 가격은 골동품이 으레 그러하듯 판매가 중지된 상품일수록 가격이 높이 뛴다. 조니워커 최고의 몰트위스키로 불린 ‘조니워커 그린라벨’은 약 200~400달러(약 23만~45만 원) 선에서 거래되는데, 현재 국내 출고가는 약 5만 원대다.

2012년 그린라벨이 원료 부족을 이유로 판매가 중지된 이후 2016년 재출시됐지만, 위스키 애호가 사이에서 2012년 이전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빈 병’이 최대 9배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위스키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empty bottle(빈 병)’의 반란이다.

한국에도 위스키 빈 병 애호가들이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를 보면 심심찮게 위스키 빈 병 매매를 확인할 수 있다. 해외처럼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고가 상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1만~10만 원 선에서 위스키 빈 병이 거래되고 있다.
값비싼 위스키, 빈 병도 골동품

인테리어 소품, 위스키의 미학


이들이 빈 병을 사는 이유는 다양하다. 희귀 상품이어서 단종 상품을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위스키 애호가들이 ‘빈 병’을 수집하게 만든 주된 이유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위스키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위스키는 빈 병만으로도 장식용으로, 예술품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기에 때에 따라서는 원액보다 병 디자인이 더 주목을 받는다.

예컨대 로얄 샬루트의 ‘로얄 살루트 38년 스톤 오브 데스티니’는 스코틀랜드 민족의 자부심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상징물이자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스톤 오브 데스티니’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세련되고 차별화된 독특한 패키지는 최고급 위스키의 희소성과 가치를 반영하는데, 섬세한 손길로 제작된 아름다운 화강암풍의 도자기 병에는 24캐럿 도금 라벨이 장식돼 있고 중세의 스코틀랜드 칼자루에서 영감을 얻은 24캐럿 도금 마개가 장착돼 있다.

맥캘란 라리크 시리즈 완결판인 ‘맥캘란 라리크 6피어리스 스피릿’은 최고급 크리스털 병을 사용해 제품의 가치를 더했다. 맥캘란의 ‘한 방울’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아 디켄터 중앙에 표현하고, 맥캘란 병에 상징처럼 새겨 넣은 역삼각형을 새겼다. 출고가는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최고가인 병당 4200만 원(700mL)을 자랑한다.

세계 3대 디자인 대회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통과한 위스키 병도 있다. 프리미엄 위스키 임페리얼은 ‘2014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연도별 차별화된 디자인 혁신으로 커뮤니케이션 부문 위너로 선정됐다. 다이아몬드 커팅 앵글의 보틀로 세련미를 더한 것뿐 아니라 캡을 열면 캡 상단에 노란 띠가 보이도록 디자인해 위조주를 방지한 것이 특징이다.

업계 관계자는 “위스키에서 오는 분위기 때문에 인테리어나 디자인 용도로만 공병을 따로 수집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위스키 제조사 역시 위스키 수집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할 수 있도록 제품 출시 전 기획단계에서부터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제품부터 스페셜 에디션,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까지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