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4 리더의 옷장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사람들은 구구절절한 성공 스토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눈을 통해 먼저 직관적으로 파악한 다음, 그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리더들이 스타일에 민감한 이유다. 자신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들의 옷장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시그니처 아이템인 블랙 터틀넥 스웨터 차림의 스티브 잡스.
시그니처 아이템인 블랙 터틀넥 스웨터 차림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와 애플의 창립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 뛰어난 개발자이자 경영인이라는 스펙을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그들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이다. 저커버그를 상징하는, 어찌 보면 후줄근해 보일 수 있는 그레이 티셔츠와 후드, 그리고 잡스와 뗄 수 없는 블랙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의 조합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대중의 인식 속에 깊이 각인됐다.

저커버그는 심지어 공식석상에서 일명 ‘삼선 슬리퍼’를 신을 정도. 이토록 자유분방한, 혹은 괴짜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나 브랜드의 창의적인 분위기를 대변한다고도 평가받는다. 역시 딱딱한 슈트를 입고 신제품을 발표하던 기존의 CEO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구축함으로써 오히려 브랜드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리더와 스타일이 민감하고도 밀접하게 연관된 이유다.
티셔츠 차림의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왼쪽). 2014년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제2회 브레이크스루 상 시상식에 참여한 슈트 차림의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티셔츠 차림의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왼쪽). 2014년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제2회 브레이크스루 상 시상식에 참여한 슈트 차림의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그렇다고 모든 리더가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구멍 난 청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커버그와 잡스 역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선 정갈한 슈트를 차려 입었다. 특히 잡스는 중요한 미팅 자리에 브리오니 슈트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공표하는 자리에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입되, 그 외에는 TPO(시간, 장소, 상황)를 지키는 패션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트위터의 공동 창립자이자 스퀘어의 CEO, 잭 도시는 반면교사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지난 9월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했을 당시 덥수룩한 수염에 코걸이, 그리고 셔츠 깃이 접히지 않고 서 있는 디자인의 리버스 칼라 셔츠를 입고 참석한 것. 관례적으로는 타이를 매거나 타이를 매지 않을 경우, 버튼다운 셔츠에 단추를 하나 푸는 것이 정석이다. 그의 차림은 곧 ‘뱀파이어 같다’, ‘목사 같다’는 등 대중의 조롱과 ‘결혼식이나 패션위크에 참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신중치 못했다’며 유수 언론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의 개인적인 위엄은 물론, 트위터의 이미지까지 깎아내린 경솔한 행동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슈트를 즐기는 그들의 반전

리더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단연 슈트다. 자신의 몸에 맞게 착 감기는 슈트는 상대방에게 호감과 믿음직스럽다는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하다. 2017년,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으로 임명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슈트빨’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함께 그의 훤칠한 외모 역시 화제였는데, 그의 인물을 더욱 살린 것은 미끈하게 빠진 슈트 핏. 여기에 폭이 좁은 타이를 매치해 트렌디한 감각을 살렸으며, 차분한 네이비와 블루 톤의 조합은 신뢰감 있는 인상을 심어준다.

하이엔드 슈트 브랜드일 줄 알았던 그의 차림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작은 양복점, ‘조나스 에 시에(Jonas & Cie)’의 것이다. 슈트 한 벌이 한화로 60만 원을 넘지 않는 450유로 정도에 맞출 수 있어 합리적인 가격대를 자랑하며, 프랑스의 고위 정치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프라다나 디올 등을 즐겨 입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행보다.
(왼쪽)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CEO. (오른쪽)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왼쪽)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CEO. (오른쪽)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지난 10월부터 골드만삭스를 이끌게 된 데이비드 솔로몬은 금융인답게 슈트의 정석을 지킨다. 네이비와 블루 계열의 색감을 조합하며, 패턴이 있는 타이로 포인트를 살린다. 하지만 그의 오프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업무 강도가 센 골드만삭스에서 여가 시간을 꼬박 챙길 만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그는 ‘디솔(D-Sol)’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두 번 클럽과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편곡한 앨범을 출시하는 등 디제잉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머리에는 캡을 푹 눌러쓰고, 편안한 티셔츠에 목에는 큼지막한 헤드폰을 두른 채 공연하는 그의 모습은 거대한 금융 기업의 CEO가 맞나 싶을 정도로 특이하다. 심지어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미팅하는 자리에는 포멀한 재킷에 그 브랜드의 스웨트 팬츠를 입고 나타나 독특한 감각과 파트너에 대한 배려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도요타를 이끄는 도요다 아키오 역시 깔끔한 슈트 스타일로 유명하다. 특히 원색의 타이로 포인트를 가미하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안경으로 지적인 면모까지 더한다. 카레이서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을 지닌 그는, 종종 카레이서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독일에서 개최되는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2007년과 2009년, 2013년 참여했으며 2013년 레이스에는 자신의 애마, 도요타 86과 함께 출전하는 등 브랜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숨통과 소통, 동시에 풀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CEO들이 선호하는 차림은 바로 타이를 매지 않는 노타이 패션. 단추를 하나 풀어헤친 스타일은 개방성과 자유로운 소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단추 두 개를 과감하게 푼 앞섶과 무심하게 말아 올린 소매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었다. 스타일이 자유로 워질수록 몸매는 탄탄해야 하는 법.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식과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금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오른쪽)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1 편안한 네이비 울 재킷 로로피아나 2 체크 패턴 버튼다운 셔츠 브룩스 브라더스
(왼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오른쪽)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1 편안한 네이비 울 재킷 로로피아나 2 체크 패턴 버튼다운 셔츠 브룩스 브라더스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슈트와 드레스셔츠의 매치를 즐기며, 타이를 매지 않은 채 공식석상에 등장하곤 한다. 타이를 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착 감기는 슈트와 빳빳하게 다려진 화이트 셔츠는 오히려 신뢰감을 형성한다. 먼지 한 톨, 주름한 점 없는 그의 차림은 그의 원칙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데, 실제로 그는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아침형 인간이며,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한 직원들을 호되게 꾸짖는 무서운 보스로도 유명하다.

느슨하지만 또렷하게
정보기술(IT)업계의 미덕은 자유로움과 창의성이다. 원활한 사고방식을 기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업계 수장들 역시 슈트로 점철된 CEO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고수 하지 않는다. 이는 잡스의 블랙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을 계기로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저커버그 역시 잡스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패션을 구축했다고 밝힐 정도.
3 브라운 니트 집업 풀오버 로로피아나 4 이지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블랙 사각 프레임 안경 칼 라거펠트 아이웨어 5 파이톤 가죽 소재의 런 어웨이 펄스 스니커즈 루이 비통 (왼쪽)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오른쪽)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3 브라운 니트 집업 풀오버 로로피아나 4 이지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블랙 사각 프레임 안경 칼 라거펠트 아이웨어 5 파이톤 가죽 소재의 런 어웨이 펄스 스니커즈 루이 비통 (왼쪽)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오른쪽)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이크로소프트(MS)의 수장인 사티아 나델라는 재킷에 이너로 피케 셔츠나 티셔츠를 매치하는 등 한층 캐주얼한 차림을 선보인다. 그의 호리호리하면서도 각 잡힌 몸매는 느슨해 보일 수있는 스타일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훨씬 더 캐주얼하다. 그는 부드러운 니트를 즐겨 입는데, 그의 이지적인 이미지와 맞물려 모범생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브이넥 니트 스웨터에 셔츠를 레이어드해 입는가 하면, 집업 니트 스웨터로 더 캐주얼한 분위기를 살리 기도 한다. 얇은 보머 재킷과 티셔츠를 매치하는 등 캐주얼의 범주 안에서 폭넓은 스타일을 보인다. 사티아 나델라와 선다 피차이 모두 공식석상에서 하이엔드 브랜드의 운동화를 즐겨 신으며 남다른 감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왼쪽)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중간 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중간 아래) 레오파드 프린트의 힐을 즐겨 신는 메이 총리.영국 정통 수제화 브랜드, 러셀 앤 브롬리 제품. (오른쪽)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왼쪽)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중간 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중간 아래) 레오파드 프린트의 힐을 즐겨 신는 메이 총리.영국 정통 수제화 브랜드, 러셀 앤 브롬리 제품. (오른쪽)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그녀들의 전략적인 아이템

여성 리더들은 스타일에 더 민감하며, 더 명민하게 패션을 전략으로 사용한다. 남성보다 훨씬 다양한 아이템과 액세서리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전문성과 감각,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빼어난 슈트와 드레스는 기본으로 스카프와 브로치, 주얼리 등의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완벽한 파워 드레싱의 본보기가 된다.

영국 보그의 2017년 4월호 표지를 장식한 테레사 메이는 마거릿 대처에 이어 26년 만에 영국 여성 총리가 됐다. 보수 진영의 그는 상당히 과감하고 개방적인 스타일을 지향해, 미국 보그가 ‘영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정치인’이라 극찬했다. 그녀는 특히 슈어홀릭으로 유명하다. 흔히 정치인의 차림이라고 상상할 수없는 레오파드 패턴의 스틸레토 힐을 즐겨 신으며 스터드가 박힌 로퍼나 큼지막한 코르사지가 달린 슈즈를 매치해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을 연상케 한다.

여성 리더들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데, 버지니아 로메티는 IBM 최초로 여성 CEO가 된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려한 패턴이나 원색의 슈트, 날렵한 스커트 슈트를 즐겨 입는다. 오히려 액세서리에는 힘을빼 전체적으로 정갈하면서도 위엄 있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그녀는 공식석상에서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에 맞춰 자신의 의상 컬러를 고를 정도로 패션에 신경 쓰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최초로 여성 총수로 임명된 크리스틴 라가르드 역시 뛰어난 패션 센스를 드러낸다. 모델처럼 늘씬한 키와 은빛 백발로 IMF 총재가 되기 전에도 눈에 띄었던 그녀는 임명후 “은빛 헤어와 샤넬 재킷, 에르메스 백 때문에 금융계에서 더욱 눈에 띌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소개된 적이 있다.

스카프는 라가르드 총재와 뗄 수 없는 아이템. 그녀가 목에 두른 스카프가 화려할수록 세계 경제가 긍정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 도로, 그녀가 공식석상에 오르면 목을 먼저 살펴보게 된다. 2015년 11월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IMF 본부에서 중국 위안화가 IMF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됐다고 발표했을 때, 중국에서는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스카프와 귀고리가 이 사실을 먼저 알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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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경제DB·각 사 제공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