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3 리더의 언어

[한경 머니 기고 =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소통을 빼놓고 리더십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많은 리더들이 조직 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탁월한 소통의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리더의 언어는 과연 어떤 말이어야 할까.
‘리더의 말’은 어렵다. 특히나 요즘은 더 그렇다. 한마디 하면 꼰대의 잔소리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리더의 직무 유기라고 뒷말을 한다. 끈끈한 관심을 표하면 ‘공과 사를 구분해달라’는 깐깐한 응답이 돌아온다. 현재의 리더들은 위로는 산업화 역군으로 칭송받았던 ‘잘된 세대’를 상사로 모시고, 아래로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의 ‘잘난 세대’를 부하, 아니 동료로 대하면서 쪼이고, 찡기고, 치인다. 현재의 리더들이 일선 직원 때 ‘모셨던’ 상사 세대는 ‘하면 된다’를 외치며 경제 기적을 일궜다.

반면 오늘날의 중장년 리더들은 ‘되면 한다’는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과거에는 ‘우리가 남이가’,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한마디로, 때로는 그마저 생략된 몸의 언어로 충분했다. 말의 근육을 단련할 필요도 없었고 배울 기회도 갖지 못했다. 단지 ‘월화수목금금금’ 일만 열심히 하면 됐고, 뻐근한 갈등이 있어도 야근 후 술 한 잔에 녹았고 전우애는 싹텄다. 지금은 어디 그런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다. ‘일의 양보다 질’이어서 야근과 특근은 성실과 충성이 아니라 비효율과 무능의 상징이다. 회식으로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쌓인다. 말은 삭이고 마음에 새기는 게 미덕이라고 배워 온 이들은 정작 어떻게 말을 섞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얼마 전 모 기업 회장과 모 대학 총장의 대학생 대상 강연회 때 있었던 일이다. 두 분 다 인품과 실력을 모두 갖춘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통과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리더들의 공통점은 역경을 경력으로 전환시킨 ‘맨땅에 헤딩’ 성공담이다. 이들은 ‘기적은 있다’며 “나 같은 열악한 처지의 사람도 맨땅에서 헤딩해 성공했다. 나처럼 해보라”고 웅변을 토했다.

강사의 열변은 뜨거웠지만 청중인 신세대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연예인 진행자가 “나도 누군가를 롤 모델로 정해서 따라하려고 하니 더 안 되더라. 내 나름의 세상 사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라는 멘트로 가까스로 수습했다. 작은 해프닝이지만 이는 오늘날 리더들이 소통에서 명심해야 할 사항을 함축하고 있다. 이제 ‘나처럼 해봐라’, ‘눈물 젖은 빵’ 같은 성공담의 열변으론 신세대와 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묵언 수행만 할 수도 없다.

갈수록 조직문화는 수평적으로 되고, 경제 사정은 팍팍해지면서 인센티브나 승진 등 미래를 담보해 리더의 권한으로 약속할 선물도 없다. 예전보다 성과는 더 내라고 조이면서, 직원은 쪼지 않아야 한다. 조직 패러다임이 바뀐 오늘날, 관리자들은 이 같은 삼중고를 뚫고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과거 자신들이 학습한 리더십은 먹히기는커녕 막히고 튕겨 나오기 일쑤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의 핵심은 소통이다. 리더의 화력(話力)은 리더십 화력(火力)이다.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려면 언(言)플루언서가 돼야 한다. 다만 언어가 달라졌다. 삭히지도 삼키지도 않고 잘 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찰의 언어로 말하라
먼저 소통의 달인,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의 현란하거나 과장된 소통 성공담에 주눅 들지 마라. 리더의 언어 하면 흔히 국내외 최고 리더들의 성공적 소통 방식부터 벤치마킹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참고하는 정도면 그만이지 모방할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해 성과에 따른 귀인적 해석인 경우가 많아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보자. 각종 일화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 그들의 소통담은 ‘신화적’이었다. 머스크는 일체의 전문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쉬운 언어 사용을 통한 목표의식 공유, 저커버그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인턴직원을 오히려 칭찬하는 개방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위기사태에 직면해 좌충우돌해 논란이 된 그들의 소통 행태를 보라. 포장이 벗겨진 그들의 민낯 소통 모습은 그리 존경할 만하지 않다. 머스크는 테슬라 상장 폐지를 트위터에 올리는 등 각종 무책임한 돌발성 발언으로 ‘사고뭉치’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 저커버그 역시 페이스북 회원 정보 노출 사태 이후 대처하는 방식에서 제왕적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리더십 소통의 진정성은 평화 시 세팅된 상태가 아니라 위기 때 대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이는 세계적 CEO가 아니라 작은 조직, 중간관리자, 가정 모두에 적용되는 말이다. 리더의 말이라 하면 청산유수 달변, 외향적 성격인 경우부터 떠올리는데 이와는 상관없다. 핵심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얼마나 지속적으로 오래 실행하느냐, 말이 행동과 일치하느냐로 가늠된다.

흔히, 리더의 언어 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느냐다. 같은 말을 쉼표 하나라도 다르게 하지 않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갈린다. 좋은 말을 하려 하기보다 좋은 리더인 것, 아니 좋은 리더가 되려고 하는 것이 리더의 언어에서 핵심이다.

인터넷에든 뭐든 좋은 말, 격언은 넘친다. 문제는 좋은 말대로 하는 리더가 드물다는 점이다. 최소한 자기가 어떤 리더인지 알라. 소통을 잘하는 리더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자기성찰 시점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리더의 말은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수양과 성찰이 먼저다. 제3자의 그럴듯한 이야기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비현실적 원칙론보다 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전달하거나 요청하라. 언어의 수위는 자신의 행동 수위에 맞출 때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야 직원들의 귀에 착착 붙는다.

불완전한 것은 흉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추는 것, 혹은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리더의 결정적 흠이다. “나도 힘들지만, 나도 노력하고 있지만, 잘 모르지만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도 노력하겠다”고 “함께 잘해보자”고 요청 형식으로 말해보라.
책임의 언어로 말하라
기업체 강의를 가면 리더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요즘 신세대와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의 대답도 한결같다. 아무리 남북 갈등보다 더 심각한 것이 세대 차이라 하지만 리더십의 핵심은 같다. 바로 책임이다. 직원에게 존댓말을 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회식을 119(1차에서 1종류의 술로 9시에 마치는 것)로 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만일 유사시에 나 몰라라 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직원의 의견을 일껏 존중한 것은 민주 절차가 아니라 책임 회피를 위한 공식 과정으로 오해받기 쉽다. 요즘 신세대는 리더가 관심 표하는 것을 꼰대라며 싫어한다고 해 직원이 도움을 요청하며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으로 생각해 섭섭했다고 토로해 깜짝 놀랐다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지시를 내리는 것을 싫어하고 코칭이 대세라고 하더라. 그래서 코칭으로 직원 의견을 일일이 물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 낭비고 에너지가 소진됐다고 해 당황스러웠다”고 이야기하는 리더도 있다. 신세대의 특성에 일껏 맞춰줬는 데도 불만이 나오더란 고백이다.

이때 필자가 해주는 말은 ‘리더는 리더다’란 점이다. 꼰대도 문제지만 무조건 직원 비위를 맞추며 아양을 떠는 광대어른도 문제다. 신세대는 ‘어른의 조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자격,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도움은커녕 ‘밤 놔라, 대추 놔라’ 방해를 놓기 때문에 꺼리는 것이다.
조직에서 상사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리더의 일은 최대한 의견수렴은 하되, 최종 결정을 하는 역할이다. 의사결정과 책임을 지는 역할을 포기하거나 방기하면 리더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리더의 말발은 전적으로 책임발과 비례한다.

리더의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은 세대 특성, 직원 능력보다 리더의 차이다. 리더가 얼마만큼 방패를 쳐줄 것인가에 대한 신뢰, 그것에 따라 반응 속도는 달라진다. 길게도, 복잡하게도, 화려하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성과를 내는 리더의 언어는 간결하다. 카리스마 리더의 날카로운 칼보다도, 서번트 리더의 딸랑이 종보다도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두꺼운 방패다. ‘리더로서 어디까지 책임지고 방패를 쳐줄 수 있나’를 말하라. “마음대로 저질러 봐. 내가 뒤처리는 해줄 테니” 하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직원들에게 보약의 힘을 발휘한다. 무조건 십자가를 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운더리, 즉 넘지 말아야 할 경계와 한계를 분명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은 한결 숨통이 트이고 어깨가 가벼워진다.
질문의 언어로 말하라
직원들로부터 불통이란 평을 듣는 리더들을 보면 개인적으론 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능력은 출중하나 리더십이 달리는 것이다. 이들은 ‘이 정도는 알겠지’ 하며 직원들을 과대평가해 소통을 건너뛴다.

또는 ‘이 정도도 몰라’ 하며 과소평가해 무시하며 ‘쇽(shock)통’을 일으켜 직원들을 질리게 한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소통(疏通)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못 알아듣는 것, 엉뚱하게 넘겨짚는 것 모두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머릿속을 읽어주긴 바라지만, 머리 위에서 노는 것은 싫어한다.

소(小)통, ‘쇽통’도 아닌 제대로 소통하는 리더의 언어는 질문이다. 단, 질문과 심문(審問), 신문(訊問)을 구별하라. 심문은 자세히 추궁해 물어보는 것이다. 신문은 알고 있는 사실을 캐어묻는 것이다.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그 기저와 결과는 천양지차다. 질문은 상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지만, 심문이나 신문은 답을 맞추고자 하는 요식 절차다.

‘내 마음을 읽어봐’ 하며 묻는 질문은 진정한 물음이 아니라 고문이다. 질문은 정답이 없는 물음이다. 폐쇄형의 ‘내 생각이 맞나 그른가’류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는 질문이 아니다. 또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과거 추적을 하는 질문은 독 안에 쥐를 포위하듯 숨 막히게 한다. 차라리 한번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보다 더 진을 빼는 신문이다.

개방형, 존중형의 질문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럴 때 질문 천재로 만들어주는 한 단어가 있다. ‘그밖에’다. ‘기세 등등’ 리더보다 ‘기타 등등’을 물어보는 리더가 소통을 부드럽게 한다. 보고가 끝나면 이렇게 말해보라.

“잘 알겠네. 내가 여기에서 그 밖에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또 그 밖에 내가 지원해줄 것은 무엇인가.”
현장을 모르더라도 현상만 알고 ‘수박 겉핥기’로 넘어가지 않을 ‘신의 한 수’ 언어다. ‘그 밖에.’ 그것이 리더의 언어에서 알파력을 만든다. 지시를 지원으로 연금시킨다. 직원의 기를 올려준다. 질문을 하는 리더가 질문을 하는 직원을 만드는 법이다. 영화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는 이런 말을 했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가 답을 주면 직원은 그 수준에서 정체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리더는 구성원을 성장시킨다.
김성회 소장은…
연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리더십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일보 최고경영자(CEO) 인터뷰 전문기자, 강남구청 공보실장을 거쳐 세계경영연구원(IGM)에서 CEO과정 주임교수를 역임했다. 대학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및 공공기관 등에서 조직관리와 리더십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CEO리더십 연구소장으로 있으며, 저서로
<준비하는 미래는 두렵지 않다>, <성공하는 CEO의 습관>, <내 사람을 만드는 CEO의 습관>, <하이터치 리더>, <용인술, 사람을 쓰는 법>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