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개인 취향 시대 힙하게 핫하게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유어마인드·과자전 제공] ‘힙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이 도처에서 열리는데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작지만 확실한 시장, ‘페어(fair)’의 현장이다. 지인들이 참여하는 동네잔치에서 시작해 수만 명의 팬층을 거느리며 전국구 페어로 성장해 언더의 역습이라 할 만한 ‘과자전’과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들여다봤다.과자전
소상공인·아마추어 베이커들의 개성 열전 “와우~ 천국 같은 콜라보!”
지난 6월 7일부터 4일간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열린 ‘과자백화점’을 찾은 소비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디저트 페스티벌 ‘과자전’이 현대백화점과 함께 선보인 행사다. 소상공인, 아마추어 베이커들의 개성 있는 과자들이 관람객들을 매혹시키고, 아티스트와 현대미술가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열기를 돋운다.
2012년부터 매년 열리는 ‘과자전’은 국내 최대 디저트 페스티벌이라는 수식어가 꼭 들어맞을 만큼 성황리에 개최된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참가 과자 소개와 굿즈 소개 등에 수천 개의 리트윗(RT)이 달린다. 과자전 관계자는 “지난해 코엑스에서 열린 과자전에서는 5일 7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이때 매출액만 4억 원. 144개 팀이 과자의 향연을 벌인 결과였다.
현재 과자전은 규모도, 열기도 후끈한 대형 행사이지만, 시작은 소박했다. 5명의 셀러들이 이태원의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과자를 가져와 팔았다. 과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개성 넘치는 과자를 만날 수 있는 행사로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과자전은 하반기 또 하나의 실험을 계획 중이다. 미니 인터뷰
이하림·이연정·박지성 디자이너
“과자전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
“오타쿠 문화 중에 ‘온리전(only+展)’이 있는데, 과자라는 소재를 가지고 디자인적으로 잘 풀어내면 문화적 파급력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움직일 것이라고 봤습니다.”
과자백화점, 과자전을 만든 세 명의 디자이너(이하림, 이연정, 박지성)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름에서부터 뚜렷한 정체성이 엿보이는 과자전. 국내 최대 과자 플리마켓으로 성장한 과자전은 탄생 배경부터 남다르다. 대학 동기로 만나 대학교 4학년 때 실험적으로 연 작은 프로젝트가 과자전의 시작이었으며 “그렇게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매해 터져서 더 큰 곳으로, 더 큰 곳으로 옮겼다”는 대답이 과자전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준다.
과자전의 특징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가 만든 행사라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와 ‘햇빛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그래픽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가 발전된 형태다. 즉, 접근법이 ‘관객’이 아닌 ‘우리’에 있었고 자신들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소재로 ‘과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행사의 성공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활동에 집중했을 뿐이라는 설명.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방식으로 보여줬다. 소위 과자 덕후도, 디저트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매력적인 콘텐츠’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취향은 소재라기보다는 ‘귀여운 것들’에 가깝다. 과자의 맛을 좋아한다기보다 과자의 달달함과 달콤한 이미지가 좋았고, 이를 최대한 귀엽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순이(과자에 팔다리가 달린 형태)’라는 캐릭터와 다양한 굿즈가 탄생했다.
“디저트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쉽게 접근했고 쉽게 풀어냈다”며 “디자인적으로 귀엽고 예쁘게, 또 사랑스럽게 덧입힌 게 매력적으로 어필된 게 아닌가 싶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약간은 서툴고, 부족해 보이는 지점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들이 얘기한 ‘힙’의 조건은 이와 같은데, 대답이 꽤 힙하게 다가온다.
“노하우는 별 게 없다. 그냥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자전을 꾸준히 지켜본 이들이라면 2015년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겠다. 그 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행사를 우리가 디자인하고 프로모션해서, 흥하기도 하고 망해보기도 했다는 그 경험치 자체가 과자전의 가장 큰 성과인 것 같다. 1회부터 기대 이상으로 몰려들었고 매해 터져서 계속 큰 장소로 옮겼는데 올림픽경기장에서 예상 외로 너무 관객들이 몰려 2시간 만에 종료하는 실패 또는 아픔을 겪었다. 곧바로 모든 참가자에게 환불 조치를 하면서 진화에 나섰고 그전까지 행사를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듯이 만든 게 있다면 그 이후로는 절치부심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자체 기획전을 선보였는데 올해는 현대백화점과 컬래버레이션을 했다. 어떤 의미인가.
“1년 동안 섭외 제안이 왔고, 우리로서도 새로운 시도라고 봤다. 프리미엄 과자 브랜드로 백화점에서 선보였는데 공간을 백화점 측에서 제공했고, 참가자 섭외는 기업 쪽 바이어와 공동으로 했다. 우리로서는 비교적 공을 덜 들이고 행사를 열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백화점 쪽은 모객에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비슷한 취향 공유하는 새로운 시장”
‘유어마인드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1세대 독립출판으로 업계의 맏형 역할을 하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가 힙스터들의 놀이터로 꼽힌다면, 유어마인드의 진짜 공로는 공간이 아닌 플랫폼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플랫폼이자,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문화를 소비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소자본·비주류 페어들이 기능한다면 그 시작점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있었다. 2009년 시작된 독립출판 창작자들의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제 세계적인 아트북페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를 대표하는 도서전이 됐다.
올해로 10년째 지속되는 이 행사는 놀랍게도 매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9회 행사에는 이틀간 1만8000명이 운집하며 성황을 이뤘다. 독립출판이라는 비주류 영역에서 소수의 취향을 공략하는 이 행사는 ‘언더의 역습’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인 셈이다.
나름의 진화 과정은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공간의 변천에 따라 설명해볼 수도 있겠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네모(Nemo)에서 8000명이 함께 했던 제6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참석자들의 에너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면 7회 행사부터는 미술관에 들어감으로써 독립출판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가 있다. 화이트 큐브와 독립출판의 조합은 묘하게 어우러져 아트북페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최사, 제작사, 방문객의 문화적 욕구가 각자의 열기를 뿜어내는 중이다. 미니 인터뷰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
“참가자들의 자발적 홍보·진행이 열기 이끌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기획하고 이끌어 온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에게서 비주류 페어의 힘에 대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매력으로 “참가자들이 각자 자발적인 홍보와 진행, 그리고 이 행사만을 위해 굉장한 공을 들여 준비한다는 점”을 꼽았다. 주최사, 제작사, 방문객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회전해 가면서 참여하고 활동하기에 열기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늬만 축제가 아닌,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며 ‘모두의 축제’로 만든 비결이 더욱 궁금해졌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출판이라는 비주류 장르로 시작했는데 그 성장세나 열기가 유럽이나 일본의 북페어 못지않다고 들었습니다.
“서구권에서 접근하기 쉬운 거리는 아니라서 위상이 높다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참가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다고 봅니다. 해외 아트북페어의 경우 사고파는 장이라기보다 하나의 ‘커뮤니티’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책과 콘텐츠가 즉흥적으로 회전되는 마켓의 기능이 강합니다. 그래서 참여한 제작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다른 페어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방문객 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실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는 장이라는 건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든 계기는 독립출판물 특유의 불친절한 코드와 독자와의 괴리를 해결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유지하는 마케팅 장치(작가 프로필, 책의 추천사 등)들을 독립출판 제작자들은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제가 만나본 모든 제작자들은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독자 또한 누가 왜 책을 만들었는지 힌트가 없기 때문에 답답함이 있었고요. 그래서 그 모순과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페어의 형태를 생각했는데, 이러한 축제의 자리를 통해 서로 간의 갈증이 예상보다 폭발력 있게 만난 것 같습니다. ‘의도된 거품’이라고 표현하는데, 공간을 무리해서 확장하지 않고 서로의 북적거림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너무 크지 않은 공간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적인 접근입니다. 부정적인 거품이 아니라면 저희와 같이 평소에 열기가 없는 신(scene)에서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서로의 존재와 온기를 느끼는 것도 다음 한 해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페어 비즈니스’라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성과나 효과는 어떻습니까.
“시작을 가늠해보면 엄밀하게 북페어나 도서전의 개념을 작게 응용했다기보다 벼룩시장의 형태를 책에 맞춘 것에 가깝습니다. 벼룩시장은 중고품을 가지고 판매한다면 이곳은 100% 본인이 만든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작가 입장에서도 이미 본인의 작업을 알고 계정을 팔로어하는 독자들이 다가오니 서로 간의 밀도가 높아서 흥미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던지는 말이 ‘팬이에요’라고 할 때 서로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다르겠죠. 처음부터 사업적인 노선과 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일종의 프로토타입의 소규모로 시작해 심리적인 확신을 가지면서 매년 조금씩 키우고,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기에 그 과정 자체가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그것이 다른 기업들이 이런 행사를 차용한다고 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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