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수익률 곡선 평준화, 경기 둔화 논쟁 가열되나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미·중 간 통상마찰이 쉽게 타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의 경우
수익률 곡선의 평준화 현상이 두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경기 둔화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들어 미국과 한국의 수익률 곡선이 빠르게 평준화(yield curve flattening)되고 있다. 미국 국채 2년물과 10년물 간 차이가 0.3%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두 금리 차가 0.6%포인트 밑으로 떨어지면 예의 주시한다. 그만큼 미국 경기를 파악하고 예측할 때 수익률 곡선을 주목한다는 의미다. 한국도 3년물과 10년물 간 수익률 차가 올 들어 최저치인 0.4%포인트로 떨어졌다.

‘기대 가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短低長高)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어 경기가 회복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수익률이 역전(短高長低)돼 음(-)의 기울기를 나타내면 차입비용 증가로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Fed의 아투로 에스트렐라와 프레디릭 미시킨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가 가장 성공적인 경기예측모형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단기 금리 차의 ‘수준’이 ‘변화’보다 예측력이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 연방은행도 장단기 금리 차는 실물경기의 선행성을 판단하는 유용한 지표로 4∼6분기를 선행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차가 마이너스, 즉 단고장저(短高長低)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 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같은 투자의 구루(guru)는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모델을 이용해 발표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각종 투자 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률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 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같은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 차가 경기 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1981∼1982년 침체기의 경우 98%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확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자주 목격됐다.
한·미 수익률 곡선 평준화, 경기 둔화 논쟁 가열되나
◆수익률 곡선 놓고 갑론을박 논쟁

수익률 곡선의 유용성을 믿는 Fed 위원은 금리 인상과 보유자산 매각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처럼 수익률 곡선이 평준화되는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간 지난 10년간 어렵게 회복시켜 놓은 경기를 다시 망치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 전 Fed 의장, 그리고 현재 Fed 위원 중 일부는 ‘과잉 저축’ 때문에 수익률 곡선이 왜곡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처럼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유동성이 많이 풀렸을 때 수익률 곡선의 형태로 경기를 판단해 통화정책을 추진하다간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겪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한때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저지른 주범으로 몰리면서 붙여진 이 용어의 뿌리는 ‘그린스펀 독트린’에 있다. 통화정책 관할 범위로 자산시장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과 달리 그린스펀은 실물경제만 감안해 통화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그린스펀 독트린대로 2004년 초까지 정책금리를 1%까지 내렸다가 그 후 인상 국면에 들어갔으나 오히려 중국의 국채 매입 등으로 시장금리는 더 떨어졌다. 그 결과 물가와 자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당시 자산시장 붕괴를 촉진시켰던 것이 유가였다. 2008년 초 70달러대였던 유가가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차단돼 자산 가격이 급락하자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에 봉착한 투자은행(IB)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과잉 저축과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 정책으로 풀린 과다한 유동성으로 왜곡된 수익률 곡선을 맹신해 출구전략 추진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을 때 출구전략을 정상대로 추진해야 이후에 닥칠 침체 국면에 Fed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수익률 곡선 평준화 현상을 놓고 벌이는 논쟁의 핵심이다. 판단은 쉽지 않지만 때맞춰 지난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세계 경기의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이 시각대로 간다면 수익률 곡선의 평준화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미 수익률 곡선 평준화, 경기 둔화 논쟁 가열되나
세계 경제 양대 국가인 미국과 중국 간 통상마찰이 1년 반 이상(1차 환율 전쟁, 2차 관세 전쟁, 3차 첨단기술 전쟁) 지속됨에 따라 세계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이 약화되고 있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 교역 증가율과 GVC 간 상관계수를 추정해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온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탄성치(세계 교역 증가율÷세계 경제 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GVC가 약화되면 한국을 비롯한 수출 주도형 국가일수록 타격을 많이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를 앞두고 수정 전망치를 발표했던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세계 3대 예측기관은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조만간 국제통화기금(IMF)도 같은 내용을 담은 3분기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때마다 상향 조정을 해 오던 추세가 10년 만에 종료되는 셈이다.

국제 금융시장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성향(flight to quality)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미·중 간 마찰이 표면화됐던 지난 3월 이후 세계 주가는 평균 10% 내린 반면 달러인덱스는 같은 폭으로 올랐다.

앞으로 미·중 간 통상마찰이 쉽게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인 데다 경제 발전 단계의 차이가 워낙 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쉽게 줄어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롱맨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밀리면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우려 또한 장애요인이다.

보호주의는 스트롱맨이 추구하는 이익 달성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보호주의 지수(1-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자유무역지수)와 국익 상징지표(무역수지)를 회귀 분석한 결과를 보면 ‘무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롱맨일수록 ‘갈등과 대립’보다 ‘협력과 공존’을 추구해야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하면서 정치적 생명까지 연장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수익률 곡선의 평준화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때맞춰 우리 내부에서도 경기 둔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각료 사이에 벌어지고 있어, 정책 수용층인 기업과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종전에는 경기 둔화 논쟁이 있을 때 민간이 제기하고 정책당국이 반박하는 모습이 관행이었다.

현재 한국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는 나라 밖에서 먼저 제기됐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진단과 예측지표로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OECD의 복합선행지수(CLI)를 보면 한국은 지난 4월 99.5로 5년 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 때는 ‘경기 둔화’ 혹은 ‘침체’를 의미한다.
한·미 수익률 곡선 평준화, 경기 둔화 논쟁 가열되나
◆한국 경제 성장의 변수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놓인 변수도 녹록지 않다. 대외적으로 각국의 보호주의 물결이 누그러지지 않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 성장세도 한풀 꺾였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터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은 금융위기 재연 조짐도 감지된다.

채산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제금리와 유가, 달러 가치가 동시에 올라가는 ‘신3고’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우리 수출과 경기에 긍정적인 변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수반되는 달러 강세는 자금 이탈, 달러 부채 부담 증가 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우려된다.

가계부채 부담도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됐다. 거시(성장률과 고용)와 미시(상장기업 실적) 차원에서 삼성전자 쏠림 현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기업 정책도 우호적이지 않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테일 리스크(tail risk: 꼬리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가 둔화(혹은 침체)될 경우 이를 살릴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재정정책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으나 재정수지가 너무 빨리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외환정책은 외화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돼 실질적으로 ‘개입’이 어려워졌다.

미·중 간 통상마찰, 신3고, 위험 수위를 넘은 가계부채, 가용 정책 수단 제한 등은 워낙 큰 변수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퍼펙트 스톰이란 거대한 태풍이 충돌해 막대한 자연재해를 가져다주는 현상을 말한다. 대외 환경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이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대내외 예측기관도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낮추기 시작했다. 정부의 목표치 3% 달성은 어렵다는 시각이다. 미·중 간 무역마찰이 지속될 경우 2.5%까지 내려잡는 비관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는 유독 위기설에 민감하다. 최근처럼 대내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이 곧바로 판치는 것은 ‘통계 수치상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 시스템상의 위기’에 연유된다는 점이다. 정책 책임자는 경기 논쟁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하고 증세와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